본관
1. 개요
본관은 한국에서 성씨와 함께 사용되는, 같은 조상을 가진 씨족 집단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발상지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유래하여 한국에 정착되었으며, 신라 말 고려 초에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가족 제도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본관은 단순히 출신지를 넘어 혈통과 신분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으며, 같은 본관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등 사회적 규범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법적 규정이 있으며,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등이 주요 본관에 속한다.
| 한자 | 本貫 |
|---|---|
| 로마자 표기 | bongwan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pon'gwan |
| 뜻 | 본적 |
| 본관 | 한국의 성씨 제도에서, 성씨를 가진 사람의 조상이 처음으로 정착한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
| 중요성 | 본관은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 기원 | 고려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초기 사회 | 본관은 그 지역의 토착 귀족이나 호족의 후손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다. |
| 조선시대 | 본관 제도는 더욱 강화되어,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
| 현대 | 현대 사회에서는 법적 의미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가족 관계와 혈통을 나타내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
| 성과 본관 | 한국의 성씨는 일반적으로 한 글자로 되어 있으며, 본관은 성씨와 함께 사람의 가계와 출신지를 나타낸다. |
|---|---|
| 중요성 | 동성동본이라도 본관이 다르면 서로 다른 가문으로 간주한다. |
| 다양한 본관 | 김해 김씨, 김해 허씨처럼 지명을 딴 본관이 많다. |
|---|---|
| 2000년 통계 |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약 4,000개의 본관이 존재한다고 한다. |
| 2015년 통계 |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5,582개의 본관이 조사되었다. |
| 관련 내용 | 2000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 |
|---|---|
| 관련 도서 | 존 B. 던컨, 조선 왕조의 기원 |
| 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본관 |
| 관련 기사 |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성씨와 본관 |
-
한국의 사회 제도 -
적서 제도
적서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적자와 서자의 신분을 차별하는 제도로, 조선 시대에 강화되었으며, 정조 때 완화 시도가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고, 갑오경장 이후에도 사회적 차별이 잔존했다. -
중국의 사회 제도 -
종족 (혈연 집단)
종족은 중국에서 기원한 혈연 기반의 친족 조직으로, 족보를 통해 혈통을 기록하고 공동 재산을 관리하며 조상 숭배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는 특징을 보인다. -
중국의 사회 제도 -
적서 제도
적서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적자와 서자의 신분을 차별하는 제도로, 조선 시대에 강화되었으며, 정조 때 완화 시도가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고, 갑오경장 이후에도 사회적 차별이 잔존했다. -
한국의 성씨 -
진 (성씨)
진(陳)씨는 중국에서 기원한 성씨로, 한국에는 베풀 진(陳), 나라 진(秦), 나아갈 진(晉), 참 진(眞) 등의 한자를 사용하는 성씨들이 있으며, 각 진씨는 다양한 역사 속 인물과 현대 인물들을 배출하며 활동하고 있다. -
한국의 성씨 -
대성팔족
대성팔족은 백제를 건국한 여덟 개의 주요 가문으로, 백제의 정치, 경제,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를 이끌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왕족 부여씨의 영향력 확대로 쇠퇴한 가문이다.
2. 유래
본관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하였다. 주나라 시대에 봉토를 제후에게 하사하고 사성정책을 시행하면서 "○○지역 ○○○"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 이는 시대에 따라 변천했지만, 사람이 태어난 곳을 나타내는 "○○지역 ○○○"이라는 표현 방식은 당나라 시대에도 유지되었으며, 한국의 한자 성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사람의 출신지를 뜻하던 본관이 씨족의 발상지로 변화하였다. 이렇게 정착된 본관 제도는 성씨보다 더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의 성씨가 많은 인구를 가진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성씨는 수식어에 불과한 반면, 본관은 혈통과 신분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성씨 제도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본관 제도이다.
한반도에서 봉환(Bongwan) 제도는 신라의 토착화 정책의 결과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이었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특징
본관 제도는 처음에는 그 사람의 출신지를 나타냈는데, 예를 들어 안동 김씨 ○○이라고 하면 안동 출신의 김○○였다. 처음에는 출신지를 나타내던 본관이 점차 사람의 신분 및 집안을 나타내는 이름이 되었다. 즉, 본관이 씨족의 발상지뿐 아니라, 그 씨족(동본)의 집단적 신분까지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같은 성씨가 너무 많고, 또 같은 성씨에서도 시조나 성씨의 탄생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하나의 성씨(金氏)가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나 되고, 몇 개의 성씨(金, 李, 朴, 崔, 鄭 등)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니, 성씨와 이름만으로는 각각의 개인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혈통 관계와 신분 질서의 징표로 성씨보다는 본관이나 족보의 중요성이 커져 갔다.
이러한 이유로 유래지인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본관이 한국에서는 널리 쓰이게 되었다.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졌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같은 본관의 남녀는 결혼할 수 없었으므로, 남편의 본관과 성씨는 아내의 본관과 성씨와 달라야 했다. 1997년까지 이는 법으로 규정되었으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입양의 경우, 양부와 입양자는 본관과 성씨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입양아의 복리를 위해 양부모는 입양아의 성씨를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양부모는 가정법원에 성씨 변경 허가를 요청해야 한다.
4. 성립
본관 제도는 씨족의 발상지뿐 아니라 고려 초의 통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고려 태조는 고려 건국을 위해 지방 호족을 회유하고 연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태조 23년(940년)경에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군현제 개편과 토성분정(土姓分定) 사업을 시행하였고, 광종 때 호족 정비책, 성종 때 지방제도 정비책을 시행하였다. 이처럼 태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본관제도가 정착되었다고 여겨진다. 지방 유력 토성(土姓)의 수장에게 행정 실무를 맡겼으며, 일부 군현은 지방의 토성이 '호장' 직을 세습하며 징세와 지방 행정 관리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그리고 본관의 양민(백성)은 국가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는 거주지를 이전할 수 없었고, 이전했다가 발각되면 본관으로 되돌려졌다.
이처럼 본관의 정착 시기가 주로 신라 말 고려 초이다 보니, 대부분의 본관이 신라와 고려의 국경(평양과 원산만) 이남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평양과 원산(영흥) 이북에 발상지를 둔 본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 태조가 940년 군현을 개편하면서 토성분정(土姓分定)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은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개인 학설이므로, 이를 한국 성씨의 기원으로 삼는 것은 무리이다. 이 설은 이수건(李樹健, 1935 ~ 2006)이 1984년에 펴낸 저서 "한국중세사회사연구(韓國中世社會史硏究)"에서 처음 제기한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각 지방의 토성이 "옛 문적과 지금의 본도(本道) 관록(關錄)에 의거한 것"이라 한 말을 빌미로 옛 문적이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단정하고 이런 주장을 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토성분정이 실제로 있었다면 대다수 성본이 940년에 일시에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다수 토성의 시조의 시대는 실제로는 고려 초부터 고려 말까지 긴 기간에 걸쳐있으므로, 토성분정이란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어 대다수 성본이 고려 태조 때 생겨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토성분정이 정말로 있었던 정책이라면 고려사에 한 귀절도 나오지 않을 리가 없고, 실제 성씨의 역사적 사례들과 맞지도 않으므로, 이런 정책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토성(土姓)이라는 말 자체도 고려사 등 고려시대 문헌에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경상도지리지 (1425년, 세종 7)와 세종실록지리지 (1454 단종 2년)에서만 일시적으로 쓰이다 그 후 간행된 지리지들에서는 사라졌는데, 1984년에 이수건이 되살려낸 것이다.
봉환(Bongwan)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신라의 토착화 정책의 결과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졌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변화
본관제도는 고려의 지방행정 통치제도와 결합하였고, 중앙으로 진출한 상경귀족도 출신 지역과 연결되었으며, 출신 지역의 ‘토성’층은 중앙관료의 공급원 구실을 함으로써 거대 문벌귀족으로 지위를 굳혀갔다. 상경귀족이 몰락하더라도 토성은 유지되어 씨족 전체의 생명력이 지속되었고, 씨족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 전기까지는 족외혼보다는 족내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컨대, 선산 김씨 김종직의 선대를 보면 선산 김씨끼리 족내혼이 70%나 이뤄졌을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같은 씨족끼리 결혼하는 족내혼과 다른 씨족과 결혼하는 족외혼이 병존했다. 예맥이나 고구려는 족외혼이 주종을 이뤘고, 신라는 족내혼이 대부분이었다. 고려가 신라를 계승하게 됨으로써 족내혼이 일반화되었고, 족외혼은 예외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족내혼보다는 족외혼으로 관습이 바뀌게 되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가문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경우(정략혼)를 제외하면 족내혼을 했다.
하지만 고려 중기의 무신정권 시대와 몽골 침략 이후로 본관제도의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중앙정권의 변화 및 몽골의 침략으로 상경귀족과 토성층의 몰락이 비일비재하자 문벌의 기반도 약해졌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본관제도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변화하게 된다. 하나는 조선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며 지방 토성의 분정을 허락지 않거나 격하시켰고, 그에 따라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중인계급(6방)으로 격하되거나 몰락하였다. 다른 하나는 족내혼보다는 족외혼이 강화되고, 또 거주지 이전이 쉬워졌다. 이에 따라 본관제도는 현실적 통치제도가 아닌 관념적인 혈연의식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족보의 발간으로 성관 통합이 이뤄지고, 또 군소 성관은 유력 본관을 따라 개관을 함으로써 집단적 신분질서로서의 본관제도가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본관은 다른 씨족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그가 속한 부계친족 집단의 신분적 상징이 되었으며, 성씨만 가지고 신분을 구별할 수 없게 되자 본관을 중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조선 후기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은 “풍속이 문벌을 중시하여 사족(士族)들은 반드시 원조(遠祖)의 출신지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비록 자손들이 흩어져 살면서 100대가 지나도 본관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영향
본관 제도는 사람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신분과 집안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같은 성씨가 많고, 성씨의 기원이 다양하여 개인을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혈통과 신분을 나타내는 데 성씨보다 본관이나 족보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본관이 널리 쓰였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행정 제도와 결합하여 문벌 귀족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씨족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 초기까지 족외혼보다 족내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산 김씨 김종직의 선대는 족내혼 비율이 70%에 달했다.
삼국시대에는 족내혼과 족외혼이 함께 존재했다. 고구려는 족외혼이, 신라는 족내혼이 주를 이루었다. 고려는 신라를 계승하여 족내혼이 일반화되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족외혼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가문의 고유성을 위해 족내혼을 하기도 했다.
고려 중기 무신정권과 몽골 침략 이후, 본관 제도는 변화를 겪었다. 중앙정권 변화와 몽골 침략으로 문벌 기반이 약화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집권 강화로 지방 토성의 분정이 제한되거나 격하되었고, 족외혼 강화와 거주지 이전으로 본관 제도는 관념적인 혈연 의식으로 바뀌었다. 족보 발간으로 성관 통합이 이루어지고, 유력 본관을 따라 개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본관은 다른 씨족과의 구별 기준이자 부계 친족 집단의 신분적 상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은 사족들이 출신지를 본관으로 삼고, 100대가 지나도 바꾸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본관은 성씨보다 더 강력한 혈연 의식의 뿌리가 되었다.
본관 제도는 한국의 성씨 제도와 관습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호주제 폐지 이전까지 지속된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한, 부계 친족 중심의 혈연 의식은 장자승계와 남존여비 풍조를 강화시켰다. 1909년 일제의 민적법 시행 이후 변화를 겪었지만, 2008년 호주제 폐지까지 본관 제도의 영향은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성씨에 따른 제도적, 관념적 신분 질서가 약화되면서 유력 성관에 가계를 이어붙이거나 독자적인 성과 본을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2008년 호주제 폐지로 모계 성씨 승계도 가능해져 부계 중심의 친족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장자 승계와 남존여비 의식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본관 제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같은 본관의 남녀는 결혼할 수 없었으나, 1997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입양의 경우 양부와 입양자는 본관과 성씨가 같아야 하지만, 입양아의 복리를 위해 성씨 변경이 가능하다.
7. 일본의 본관
일본에서는 대보령 제정과 함께 본관제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은 본관지의 호적·계장에 기록되었고, 함부로 본관지를 떠나는 것은 유랑으로 간주되어 금지되었다.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겐지, 헤이케, 후지와라씨, 타치바나씨 등 동성끼리 번영하였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는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성 대신 점차 각자가 일소전력으로 지키는 소령지의 지명(명田)을 가명(미요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의 주요 본관지는 다음과 같다. 아래 괄호 안에 제시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통폐합을 거친 현재의 유칭지(遺稱地)이며, 당시 제시된 범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 무쓰국(陸奥国)
안다씨(安達氏): 무쓰국(陸奥国) 안다군(安達郡)(후쿠시마현(福島県) 안다군(安達郡))
이나와시로씨(猪苗代氏): 무쓰국(陸奥国) 야마군(耶麻郡) 이나와시로(猪苗代)(후쿠시마현(福島県) 야마군(耶麻郡) 이나와시로정(猪苗代町))
다테씨(伊達氏): 무쓰국(陸奥国) 다테군(伊達郡)(후쿠시마현(福島県) 다테시(伊達市))
카오리씨(鹿折氏): 무쓰국(陸奥国) 모토요시군(本吉郡) 카오리(鹿折)(미야기현(宮城県) 기센누마시(気仙沼市) 카오리 지역(鹿折地区))
마스부치씨(鱒淵氏): 무쓰국(陸奥国) 토메군(登米郡) 마스부치(鱒淵)(미야기현(宮城県) 토메시(登米市) 토와정(東和町) 마스부치 지역(鱒淵地区))
* 데와국(出羽国)
나가이씨(長井氏): 데와국(出羽国) 치시군(置賜郡) 나가이쇼(長井荘)(야마가타현(山形県) 나가이시(長井市))
모가미씨(最上氏): 데와국(出羽国) 모가미군(最上郡)(야마가타현(山形県) 모가미군(最上郡))
* 코즈케국(上野国)
니타씨(新田氏): 코즈케국(上野国) 니타군(新田郡) 니타쇼(新田荘)(군마현(群馬県) 오타시(太田市) 니타(新田))(미나모토 요시쿠니(源義国)의 장남, 니타 요시시게(新田義重)를 시조로 함)
이와마쓰씨(岩松氏): 코즈케국(上野国) 니타군(新田郡) 이와마쓰향(岩松郷)(군마현(群馬県) 오타시(太田市) 이와마쓰정(岩松町))
토쿠가와씨(得川氏)/도쿠가와씨(徳川氏): 코즈케국(上野国) 니타군(新田郡) 토쿠가와향(得川郷)(군마현(群馬県) 오타시(太田市) 토쿠가와정(徳川町))(니타 요시시게(新田義重)의 사남, 토쿠가와 요시스에(得川義季)를 시조로 함)
타나카씨(田中氏): 코즈케국(上野国) 니타군(新田郡) 타나카향(田中郷)(군마현(群馬県) 오타시(太田市) 니타카미타나카정(新田上田中町)·시모타나카정(下田中町))(사토미 요시토시(里見義俊)의 이남, 타나카 요시키요(田中義清)를 시조로 함)
오다테씨(大舘氏): 코즈케국(上野国) 니타군(新田郡) 오다테향(大舘郷)(군마현(群馬県) 오타시(太田市) 오다테정(大館町))
야마나씨(山名氏): 코즈케국(上野国) 타고군(多胡郡) 야마나향(山名郷)(군마현(群馬県) 타카사키시(高崎市) 야마나정(山名町))(니타 요시시게(新田義重)의 서자, 야마나 요시노리(山名義範)를 시조로 함)
오고씨(大胡氏): 코즈케국(上野国) 세타군(勢多郡) 오고향(大胡郷)(군마현(群馬県) 마에바시시(前橋市) 오고정(大胡町))
이소베씨(磯部氏): 코즈케국(上野国) 우스이군(碓氷郡) 이소베(磯部)(군마현(群馬県) 안나카시(安中市) 이소베(磯部))
오바타씨(小幡氏): 코즈케국(上野国) 아마가키군(甘楽郡) 오바타(小幡)(군마현(群馬県) 아마가키군(甘楽郡) 아마가키정(甘楽町) 오바타(小幡))
사토미씨(里見氏): 코즈케국(上野国) 우스이군(碓氷郡)(하치만쇼(八幡荘)) 사토미향(里見郷)(군마현(群馬県) 타카사키시(高崎市) 카미사토미정(上里見町)·나카사토미정(中里見町)·시모사토미정(下里見町))
* 시모쓰케국(下野国)
아시카가씨(足利氏): 시모쓰케국(下野国) 아시카가군(足利郡) 아시카가쇼(足利荘)(도치기현(栃木県) 아시카가시(足利市))(미나모토 요시쿠니(源義国)의 이남, 아시카가 요시야스(足利義康)를 시조로 함)
이타쿠라씨(板倉氏): 시모쓰케국(下野国) 아시카가군(足利郡) 아시카가쇼(足利荘) 이타쿠라(板倉)(도치기현(栃木県) 아시카가시(足利市) 이타쿠라정(板倉町))
우지이에씨(氏家氏): 시모쓰케국(下野国) 시오야군(塩谷郡) 우지이에향(氏家郷)(도치기현(栃木県) 사쿠라시(さくら市) 우지이에(氏家))
우쓰노미야씨(宇都宮氏): 시모쓰케국(下野国) 카와치군(河内郡) 우쓰노미야(宇都宮)(도치기현(栃木県) 우쓰노미야시(宇都宮市))
오야마씨(小山氏): 시모쓰케국(下野国) 토가군(都賀郡) 오야마쇼(小山荘)(도치기현(栃木県) 오야마시(小山市))
오노데라씨(小野寺氏): 시모쓰케국(下野国) 토가군(都賀郡) 오노데라(小野寺)(도치기현(栃木県) 토치기시(栃木市) 이와후네정(岩舟町) 오노데라(小野寺))
* 히타치국(常陸国)
카시마씨(鹿島氏): 히타치국(常陸国) 카시마군(鹿島郡)(이바라키현(茨城県) 카시마시(鹿嶋市))
이사씨(伊佐氏)(히타치): 히타치국(常陸国) 이사군(伊佐郡)
오구리씨(小栗氏): 히타치국(常陸国) 오구리구치야(小栗御厨)(이바라키현(茨城県) 치쿠세이시(筑西市) 오구리(小栗))
오다씨(小田氏): 히타치국(常陸国) 치쿠바군(筑波郡) 오다손(小田邑)(이바라키현(茨城県) 츠쿠바시(つくば市) 오다(小田))
오누키씨(小貫氏): 히타치국(常陸国) 쿠지군(久慈郡) 오누키손(小貫邑)(이바라키현(茨城県) 히타치오오미야시(常陸大宮市) 오누키(小貫))
* 카즈사국(上総国)
아키모토씨(秋元氏): 카즈사국(上総国) 슈와이군(周淮郡) 아키모토쇼(秋元荘)(치바현(千葉県) 키미츠시(君津市) 아키모토 지역(秋元地区))
이이토미씨(飯富氏): 카즈사국(上総国) 보우다군(望陀郡) 이이토미쇼(飯富荘)(치바현(千葉県) 소데가우라시(袖ケ浦市) 이이토미(飯富))
* 소마국(下総国)
코미씨(小見氏): 소마국(下総国) 카토리군(香取郡) 코미향(小見郷)(치바현(千葉県) 카토리시(香取市) 코미(小見))
카사이씨(葛西氏): 소마국(下総国) 카츠시키군(葛飾郡) 카사이구치야(葛西御厨)
치바씨(千葉氏): 소마국(下総国) 치바군(千葉郡) 치바향(千葉郷)(치바현(千葉県) 치바시(千葉市))
소마씨(相馬氏): 소마국(下総国) 소마군(相馬郡) 소마구치야(相馬御厨)(이바라키현(茨城県) 키타소마군(北相馬郡))
* 무사시국(武蔵国)
아오키씨(青木氏): 무사시국(武蔵国) 이루마군(入間郡) 아오키(青木)(사이타마현(埼玉県) 한노시(飯能市) 아오키(青木))
카지씨(加治氏): 무사시국(武蔵国) 고려군(高麗郡) 카지(加治)(사이타마현(埼玉県) 한노시(飯能市) 카지 지역(加治地区))
아다치씨(足立氏): 무사시국(武蔵国) 아다치군(足立郡)(키타아다치군(北足立郡)·도쿄도(東京都) 아다치구(足立区))
이나자와씨(稲澤氏): 무사시국(武蔵国) 코다마군(児玉郡) 이나자와(稲澤)(사이타마현(埼玉県) 혼죠시(本庄市) 코다마정(児玉町) 이나자와(稲澤))
오오세키씨(大関氏): 무사시국(武蔵国) 코다마군(児玉郡) 오오세키촌(大関村)(사이타마현(埼玉県) 코다마군(児玉郡) 미사토정(美里町) 아나시 아오세키(阿那志字大関))
카네코씨(金子氏): 무사시국(武蔵国) 이루마군(入間郡) 카네코(金子)(사이타마현(埼玉県) 이루마시(入間市) 카네코 지역(金子地区))
쿠마가야씨(熊谷氏): 무사시국(武蔵国) 오오사토군(大里郡) 쿠마가야향(熊谷郷)(사이타마현(埼玉県) 쿠마가야시(熊谷市))
고려씨(高麗氏): 무사시국(武蔵国) 고려군(高麗郡)
에도씨(江戸氏): 무사시국(武蔵国) 도요시마군(豊島郡) 에도향(江戸郷)
코야마다씨(小山田氏): 무사시국(武蔵国) 다마군(多摩郡) 코야마다쇼(小山田荘)(도쿄도(東京都) 마치다시(町田市) 카미코야마다정(上小山田町)·시모코야마다정(下小山田町)·다마시(多摩市) 카미코야마다정(上小山田町)·시모코야마다정(下小山田町))
요시미씨(吉見氏): 무사시국(武蔵国) 요코미군(横見郡) 요시미향(吉見郷)(사이타마현(埼玉県) 히키군(比企郡) 요시미정(吉見町))
* 사가미국(相模国)
이시이씨(石井氏): 사가미국(相模国) 미우라군(三浦郡) 이시이쇼(石井荘)(가나가와현(神奈川県) 요코스카시(横須賀市) 히라사쿠 이시이(平作字石井))
오타와씨(大多和氏): 사가미국(相模国) 미우라군(三浦郡) 오타와촌(大多和村)(가나가와현(神奈川県) 요코스카시(横須賀市) 오타와(太田和))
오토모씨(大友氏): 사가미국(相模国) 아시가라카미군(足柄上郡) 오토모향(大友郷)(가나가와현(神奈川県) 오다와라시(小田原市) 히가시오토모(東大友)·니시오토모(西大友))
오니와씨(大庭氏): 사가미국(相模国) 코자군(高座郡) 오니와구치야(大庭御厨)(가나가와현(神奈川県) 후지사와시(藤沢市) 오니와(大庭))
카가와씨(香川氏): 사가미국(相模国) 코자군(高座郡) 카가와(香川)(가나가와현(神奈川県) 치가사키시(茅ヶ崎市) 카가와(香川))
카지와라씨(梶原氏): 사가미국(相模国) 가마쿠라군(鎌倉郡) 카지와라향(梶原郷)(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마쿠라시(鎌倉市) 카지와라(梶原))
가마쿠라씨(鎌倉氏): 사가미국(相模国) 가마쿠라군(鎌倉郡)(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마쿠라시(鎌倉市))
코바야카와씨(小早川氏): 사가미국(相模国) 아시가라시모군(足柄下郡) 코바야카와손(小早川邑)(가나가와현(神奈川県) 오다와라시(小田原市) 하야카와(早川))
시부야씨(渋谷氏): 사가미국(相模国) 코자군(高座郡) 시부야쇼(渋谷荘)(가나가와현(神奈川県) 야마토시(大和市) 시부야(渋谷))(가와사키 시게이에(河崎重家)의 아들, 시부야 시게쿠니(渋谷重国)를 시조로 함)
도히씨(土肥氏): 사가미국(相模国) 아시가라시모군(足柄下郡) 도히향(土肥郷)(가나가와현(神奈川県) 아시가라시모군(足柄下郡) 유가와라정(湯河原町) 도히(土肥))
니카이도씨(二階堂氏): 사가미국(相模国) 가마쿠라군(鎌倉郡)(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마쿠라시(鎌倉市))
하다노씨(波多野氏): 사가미국(相模国) 하다노쇼(波多野荘)(가나가와현(神奈川県) 하다노시(秦野市))
미우라씨(三浦氏): 사가미국(相模国) 미우라군(三浦郡)(가나가와현(神奈川県) 미우라시(三浦市))
모리씨(毛利氏)/모리씨(毛利氏)(미나모토)/모리씨(森氏): 사가미국(相模国) 아이코군(愛甲郡) 모리쇼(毛利荘)(가나가와현(神奈川県) 아쓰기시(厚木市) 미나미모리 지역(南毛利地区))(오에 히로모토(大江広元)의 사남, 모리 스에미쓰(毛利季光)를 시조로 함. 그리고, 미나모토 요시이에(源義家)의 칠남, 미나모토 요시타카(源義隆)를 시조로 함)
* 아와국(安房国)
안도씨(安藤氏): 아와국(安房国) 히라군군(平群郡) 미요시촌(三芳村)(치바현(千葉県) 미나미보소시(南房総市) 미요시 지역(三芳地区))
* 이즈국(伊豆国)
이토씨(伊東氏): 이즈국(伊豆国) 타가타군(田方郡) 이토쇼(伊東荘)(시즈오카현(静岡県) 이토시(伊東市))
쿠스미씨(久須見氏): 이즈국(伊豆国) 타가타군(田方郡) 쿠스미쇼(久須見荘)(시즈오카현(静岡県) 이토시(伊東市) 쿠스미모토와다(玖須美元和田))
우사미씨(宇佐美氏): 이즈국(伊豆国) 타가타군(田方郡) 우사미쇼(宇佐美荘)(시즈오카현(静岡県) 이토시(伊東市) 우사미(宇佐美))
아카자와씨(赤沢氏): 이즈국(伊豆国) 카모군(賀茂郡) 아카자와향(赤沢郷)(시즈오카현(静岡県) 이토시(伊東市) 아카자와(赤沢))(오가사와라 나가키요(小笠原長清)의 적남 오가사와라 나가쓰네(小笠原長経)의 이남 아카자와 키요쓰네(赤沢清経)를 시조로 함. 오가사와라류(小笠原流) 궁마술례법종가(弓馬術礼法宗家))
가와즈씨(河津氏): 이즈국(伊豆国) 카모군(賀茂郡) 가와즈쇼(河津荘)(시즈오카현(静岡県) 카모군(賀茂郡) 가와즈정(河津町))
* 카이국(甲斐国)
다케다씨(武田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다케다향(武田郷)(야마나시현(山梨県) 니라사키시(韮崎市) 신잔정(神山町) 다케다(武田))(미나모토 키요미쓰(源清光)의 아들, 다케다 신기(武田信義)를 시조로 함)
아키야마씨(秋山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아키야마(秋山)(야마나시현(山梨県) 미나미알프스시(南アルプス市) 아키야마(秋山))(카가미 토오미쓰(加賀美遠光)의 적남, 아키야마 미쓰토모(秋山光朝)를 시조로 함)
아나야마씨(穴山氏): 카이국(甲斐국) 고마군(巨摩郡) 이츠미향(逸見郷) 아나야마촌(穴山村)(야마나시현(山梨県) 니라사키시(韮崎市) 아나야마정(穴山町))(다케다 신무(武田信武)의 아들, 아나야마 요시타케(穴山義武)를 시조로 함)
아마리씨(甘利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아마리쇼(甘利荘)(야마나시현(山梨県) 니라사키시(韮崎市) 아마리 지역(甘利地区))
이치카와씨(市河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이치카와쇼(市河荘)(야마나시현(山梨県) 니시야시로군(西八代郡) 이치카와미사토정(市川三郷町))
오가사와라씨(小笠原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오가사와라쇼(小笠原荘)(야마나시현(山梨県) 키타토시시(北杜市) 아케노정(明野町) 오가사와라(小笠原)·미나미알프스시(南アルプス市) 오가사와라(小笠原))(카가미 토오미쓰(加賀美遠光)의 차남, 오가사와라 나가키요(小笠原長清)를 시조로 함)
카가미씨(加賀美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카가미향(加賀美郷)(야마나시현(山梨県) 미나미알프스시(南アルプス市) 카가미(加賀美))
난부씨(南部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난부향(南部郷)(야마나시현(山梨県) 미나미고마군(南巨摩郡) 난부정(南部町))(카가미 토오미쓰(加賀美遠光)의 삼남, 난부 미쓰유키(南部光行)를 시조로 함)
이타가키씨(板垣氏): 카이국(甲斐国) 야마나시군(山梨郡) 이타가키향(板垣郷)(야마나시현(山梨県) 코우후시(甲府市) 사토가키 지역(里垣地区))(다케다 신기(武田信義)의 삼남, 이타가키 카네노부(板垣兼信)를 시조로 함)
카와니시씨(河西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카가미나카죠(鏡中条)(야마나시현(山梨県) 미나미알프스시(南アルプス市) 카가미나카죠(鏡中條))(난부 소슈(南部宗秀)의 아들, 카와니시 만슈(河西満秀)를 시조로 함)
오소씨(於曾氏): 카이국(甲斐国) 야마나시군(山梨郡) 오소향(於曾郷)(야마나시현(山梨県) 코우슈시(甲州市) 시오카미오소(塩山上於曾)·시오시모오소(塩山下於曾))
이시바시씨(石橋氏): 카이국(甲斐国) 야시로군(八代郡) 이시바시손(石橋邑)(야마나시현(山梨県) 후에후키시(笛吹市) 사카이가와정(境川町) 이시바시(石橋))
센도우다씨(仙洞田氏): 카이국(甲斐国) 고마군(巨摩郡) 타카시모촌(高下村)(야마나시현(山梨県) 미나미고마군(南巨摩郡) 후지카와정(富士川町) 타카시모(高下))(난부 타메시게(南部為重)의 손자, 센도우다 시게키요(仙洞田重清)를 시조로 함)
* 시나노국(信濃国)
아토베씨(跡部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아토베(跡部)(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아토베(跡部))
오이씨(大井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오이쇼(大井荘)(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반노씨(伴野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반노쇼(伴野荘)(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코우사카씨(香坂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코우사카(香坂)(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코우사카(香坂))
모치즈키씨(望月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모치즈키(望月)(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모치즈키(望月))
히라가씨(平賀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히라가향(平賀郷)(나가노현(長野県) 사쿠시(佐久市) 히라가(平賀))
오오이시씨(大石氏): 시나노국(信濃国) 사쿠군(佐久郡) 오오이시향(大石郷)(나가노현(長野県) 미나미사쿠군(南佐久郡) 사쿠호정(佐久穂町) 하치군오오이시(八郡大石))
우미노씨(海野氏): 시나노국(信濃国) 오가타군(小県郡) 우미노쇼(海野荘)(나가노현(長野県) 히가시미시(東御市) 혼우미노(本海野))
이다씨(依田氏): 시나노국(信濃国) 오가타군(小県郡) 이다쇼(依田荘)(나가노현(長野県) 우에다시(上田市))
네즈씨(根津氏): 시나노국(信濃国) 오가타군(小県郡) 네즈(祢津)(나가노현(長野県) 히가시미시(東御市) 네즈(祢津))
이나씨(伊那氏): 시나노국(信濃国) 이나군(伊那郡)(나가노현(長野県) 이나시(伊那市)·카미이나군(上伊那郡)·시모이나군(下伊那郡))
코이데씨(小出氏): 시나노국(信濃国) 이나군(伊那郡) 코이데(小井弖)(나가노현(長野県) 이나시(伊那市) 니시하루치카 코이데 일구(西春近字小出一区)·코이데 이구(字小出二区)·코이데 삼구(字小出三区))
카타기리씨(片切氏): 시나노국(信濃国) 이나군(伊那郡) 카타기리향(片切郷)(나가노현(長野県) 카미이나군(上伊那郡) 나카가와무라(中川村) 카타기리(片桐)·시모이나군(下伊那郡) 마쓰카와정(松川町) 카미카타기리(上片桐))
아사마씨(麻績氏): 시나노국(信濃国) 치쿠마군(筑摩郡) 아사마구치야(麻績御厨)(나가노현(長野県) 히가시치쿠마군(東筑摩郡) 아사마무라(麻績村) 아사마(麻績))
키소씨(木曾氏): 시나노국(信濃国) 치쿠마군(筑摩郡) 키소다니(木曽谷)(나가노현(長野県) 키소군(木曽郡))
니나카씨(仁科氏): 시나노국(信濃国) 아즈미군(安曇郡) 니나카쇼(仁科荘)(나가노현(長野県) 오오마치시(大町市))
무라카미씨(村上氏): 시나노국(信濃国) 코리야스군(更級郡) 무라카미향(村上郷)(나가노현(長野県) 하니와군(埴科郡) 사카기정(坂城町) 카미다이라(上平))
야시로씨(屋代氏): 시나노국(信濃国) 하니와군(埴科郡) 야시로향(屋代郷)(나가노현(長野県) 센바쿠시(千曲市) 야시로(屋代))
이누에씨(井上氏): 시나노국(信濃国) 타카이군(高井郡) 이누에(井上)(나가노현(長野県) 스즈카시(須坂市) 이누에(井上))
호시카씨(保科氏): 시나노국(信濃国) 타카이군(高井郡) 호시카(保科)(나가노현(長野県) 나가노시(長野市) 와카호호시카(若穂保科))
카자마씨(風間氏): 시나노국(信濃国) 미즈우치군(水内郡) 카자마손(風間邑)(나가노현(長野県) 나가노시(長野市) 카자마(風間))
쿠리타씨(栗田氏): 시나노국(信濃国
7.1. 율령제에서의 본관
일본에서는 대보령 제정과 함께 본관제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은 본관지의 호적·계장에 기록되어 함부로 본관지를 떠나는 것은 유랑으로 금지되었다. 도망친 호는 3년, 호구는 6년이 지나면 호적·계장에서 제외되어 절관(본관을 가지지 않은 자)이 되었다. 그 후, 도망자가 발견되면 도망친 곳의 호적에 편입시키는 '당소편부' 또는 원래의 본관지로 강제송환시키는 '본관환부' 조치가 취해졌다. 무쓰국·데와국의 본관자에게는 '본관환부'가 정해져 있었다. 양로 4년(720년) 이후에는 도망자의 자발적 귀환('주환')을 촉구하기 위해 주환한 자의 과역을 1년간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학료의 학생이 제적된 경우에는 본관에 통고(학령)하고, 징발된 노역자가 귀환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본관에 통고(부역령)하며, 본주가 사망한 장내·자인은 본관으로 송환(선서령)하고, 병이 나서 쓰러진 방인은 본관으로 송환(군방령)하는 등의 규정이 존재했다.
7.2. 가마쿠라 시대 이후의 본관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겐지, 헤이케, 후지와라씨, 타치바나씨 등 동성끼리 번영하였기 때문에, 가마쿠라 시대 이후 서로를 구별할 때 성 대신 점차 각자가 「일소전력」으로 지키는 소령지의 지명(명田)을 가명(미요지・묘지)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미요지를 관(冠)하는 것은 소령의 상속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요지의 발상지인 「일소전력」의 땅을 「혼칸(本貫)」、「혼칸의 땅」이라 칭하고, 혼칸지에서 모시는 신을 「우부스나가미」라 칭하며, 본관(本貫)이라고 쓰고 (우부스나)라고 읽으며, 점차 「우지가미」와 동의어가 되어 혼합되어 신성시되었다.
7.3. 주요 본관지 목록
| 본관 | 인구수 | 성씨 | 동성 인구의 과반수 | 비고 |
|---|---|---|---|---|
| 김해 김씨 | 4,456,700 | 김 | 금관가야(가락국)의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가야 초대왕 수로왕의 자손이라고 칭한다. 같은 이름의 본관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항복 장수 사가(金忠善)를 시조로 하는 것이 있지만 별본관으로 취급한다. 구분할 경우 전자를 가락, 후자를 우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 |
| 밀양 박씨 | 3,103,942 | 박 | ○ |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박언심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를 시조라고 칭한다. 밀성 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전주 이씨 | 2,631,643 | 이 | 신라의 고관 이한을 시조라고 칭한다. 공식적으로 조선의 초대왕 이성계는 이 성씨 출신으로 여겨진다. | |
| 경주 김씨 | 1,800,853 | 김 | 신라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김씨 신라왕의 조상인 김알지를 시조라고 칭한다. | |
| 경주 이씨 | 1,391,867 | 이 | 신라 초기의 호족을 뿌리로 한다. 시조를 이열평이라고 칭하며, 신라 건국 당시 6촌(신라 육부) 중 하나인 급량부의 촌장이었다. | |
| 진주 강씨 | 968,109 | 강 | ○ | 고구려 계열. 진양 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경주 최씨 | 945,005 | 최 | 경주 이씨와 마찬가지로,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사량부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崔淵源)를 시조라고 칭한다. | |
| 광산 김씨 | 926,316 | 김 | ||
| 파평 윤씨 | 770,932 | 윤 | ○ | 파주 윤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청주 한씨 | 752,689 | 한 | ○ | 시조는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의 세 아들 중 하나인 한란이다. |
| 안동 권씨 | 696,317 | 권 | ○ | |
| 인동 장씨 | 666,652 | 장 | ○ | |
| 평산 신씨 | 563,375 | 신 | ○ | |
| 순흥 안씨 | 520,384 | 안 | ○ | |
| 안동 김씨 | 519,719 | 김 | ||
| 남양 홍씨 | 487,488 | 홍 | ○ | 고려의 공신 홍유(洪殷悅)가 시조이다. 신라의 선덕여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왔다. |
| 동래 정씨 | 474,506 | 정 | 지백호의 자손으로, 고려의 안의호장인 정회문이 시조이다(정회문의 선계는 옛날 탈해왕 때 고구려 계열의 다파나국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 |
| 해주 오씨 | 462,704 | 오 | ○ | 시조는 고려에 송나라에서 건너온 오인유이다. |
| 전주 최씨 | 458,191 | 최 | ||
| 남평 문씨 | 445,946 | 문 | ○ | |
| 달성 서씨 | 407,431 | 서 | ○ | |
| 창녕 조씨 | 366,798 | 조 | ○ | "창녕조씨"로 표기. |
| 수원 백씨 | 354,428 | 백 | ○ | 신라 무열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온 백우경을 조상으로 한다. |
| 경주 정씨 | 350,587 | 정 |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본피부의 촌장이었던 지백호를 시조라고 칭한다. 유리 이사금 때 정씨 성을 사성 받았다고 한다. 42대손인 정진후를 중조로 하여 본관을 경주 정씨로 했다. 지백호를 조상으로 하는 정씨의 본가 격이다. | |
| 한양 조씨 | 332,580 | 조 | 시조는 고려 시대의 조지수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조광조 등을 배출했다. | |
| 제주 고씨 | 310,542 | 고 | ○ | |
| 남원 양씨 | 307,724 | 양 | ○ | |
| 밀양 손씨 | 306,895 | 손 | ○ | |
| 여산 송씨 | 294,788 | 송 | ||
| 김녕 김씨 | 290,092 | 김 | "김녕김씨"로 표기. | |
| 금녕 김씨 | 287,701 | 김 | "금녕김씨"로 표기. | |
| 의성 김씨 | 287,469 | 김 | ||
| 연일 정씨 | 284,290 | 정 | 지백호의 자손으로, 신라의 간의대부인 정종은이 시조이다. 영일 정씨, 오천 정씨라고도 한다. 지주사공파, 감무공파, 양숙공파로 나뉜다. | |
| 함안 조씨 | 282,890 | 조 | 시조는 조정이다. 오대십국의 후당에서 신라로 건너왔다. | |
| 나주 임씨 | 277,699 | 임 | ||
| 창원 황씨 | 271,986 | 황 | 시조는 황석기, 황충준, 황량충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 청송 심씨 | 240,768 | 심 | ○ | |
| 문화 유씨 | 237,314 | 유 | "문화유씨"로 표기. 시조는 고려 건국의 공신 유차달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 |
| 강릉 유씨 | 236,871 | 유 | ○ | 시조는 유승비이다. 유방을 조상으로 한다. 송나라에서 고려 문종 36년에 망명했다. 한양 유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은진 송씨 | 226,050 | 송 | ||
| 평택 임씨 | 225,872 | 임 | 시조는 임언수, 임세춘이다. 은나라 주왕 시대의 비간을 기원으로 한다. 팽성 임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성주 이씨 | 203,703 | 이 | ||
| 해주 최씨 | 201,625 | 최 | ||
| 이천 서씨 | 199,792 | 서 | 시조는 서신일이다. 신라의 효공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왔다. | |
| 진주 정씨 | 197,242 | 정 | 진양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진양 강씨 | 193,217 | 강 | 고구려 계열. 진주 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단양 우씨 | 191,287 | 우 | ○ | 시조는 우현이다.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와 1014년의 과거에 합격했다. |
| 하동 정씨 | 187,152 | 정 | 같은 본관이지만, 지백호의 자손인 정도정을 시조로 하는 파와, 정손위를 시조로 하는 파, 정응을 시조로 하는 파가 있다. | |
| 연안 차씨 | 184,731 | 차 | ○ | |
| 창녕 성씨 | 182,377 | 성 | ○ | |
| 광주 이씨 | 181,377 | 이 | ||
| 강릉 김씨 | 179,593 | 김 | ||
| 천안 전씨 | 176,239 | 전 | ||
| 월성 이씨 | 173,127 | 이 | ||
| 장수 황씨 | 170,988 | 황 | 시조는 황경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 평해 황씨 | 168,374 | 황 | 시조는 황온인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 정선 전씨 | 166,965 | 전 | ||
| 현풍 곽씨 | 166,608 | 곽 | ○ | 시조는 곽경이다. 송나라 홍농군 출신이다. 1133년에 고려로 건너왔다. |
| 전의 이씨 | 164,189 | 이 | ||
| 연안 이씨 | 164,036 | 이 | 시조는 이무이다. 당나라 고종 시대 백제 침략 당시 당나라 장군이었다. 후에 신라에 귀화했다. | |
| 함양 박씨 | 163,610 | 박 | ||
| 의령 남씨 | 162,729 | 남 | ○ | |
| 반남 박씨 | 160,964 | 박 | ||
| 진주 하씨 | 160,307 | 하 | ○ | |
| 여흥 민씨 | 159,522 | 민 | ○ | 시조는 민칭도이다.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의 후손이다. 경기도 여주에 토착하여 조선의 왕후를 여러 명 배출했다. |
| 한산 이씨 | 156,861 | 이 | ||
| 담양 전씨 | 155,018 | 전 | ○ | |
| 양천 허씨 | 149,505 | 허 | ||
| 신안 주씨 | 148,207 | 주 | ○ | 시조는 주잠이다. 주희의 후손이다. 남송의 주잠이 몽골 침입 당시 고려로 망명했다. |
| 강릉 최씨 | 145,335 | 최 | ||
| 풍천 임씨 | 143,881 | 임 | ○ | 시조는 임온이다.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이다. 1275년 충렬왕비가 입비하면서 건너왔다. |
| 충주 지씨 | 148,144 | 지 | ○ | 시조는 지경이다. 960년 송나라에서 고려로 건너왔다. |
| 제주 양씨 | 142,211 | 양 | ||
| 영월 엄씨 | 139,681 | 엄 | ○ | 시조 엄림의. 신라 경덕왕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영산 신씨, 영월 신씨 시조와 함께 건너왔다. |
| 기계 유씨 | 139,073 | 유 | ○ | |
| 선산 김씨 | 138,819 | 김 | 신라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왕족 김선궁을 시조로 한다. 일선 김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함평 이씨 | 138,550 | 이 | ||
| 영천 이씨 | 135,612 | 이 | ||
| 김해 허씨 | 134,068 | 허 | 금관가야의 수로왕의 자손으로, 김해 김씨와 동본관으로 취급한다. 이는 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사이에 10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 2명에게 허씨 성을 갖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 |
| 고령 신씨 | 129,718 | 신 | ||
| 진양 정씨 | 127,279 | 정 | 진주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원주 원씨 | 126,677 | 원 | ○ | |
| 나주 정씨 | 125,088 | 정 | ○ | |
| 풍양 조씨 | 124,262 | 조 | ||
| 합천 이씨 | 121,416 | 이 | ||
| 성산 이씨 | 113,087 | 이 | ||
| 청풍 김씨 | 110,815 | 김 | ||
| 여양 진씨 | 110,403 | 진 | ○ | 시조는 진첨후이다. 고려시대 관료이다. 송나라 휘종 시대의 귀화인 진수를 조상으로 한다. |
| 벽진 이씨 | 109,267 | 이 | ||
| 양성 구씨 | 108,209 | 구 | ○ | |
| 순천 박씨 | 105,208 | 박 | ||
| 초계 정씨 | 104,155 | 정 | ||
| 영양 천씨 | 100,014 | 천 | ○ | |
| 영산 신씨 | 98,759 | 신 | ○ | 시조는 신라 경덕왕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신경이다. 영월 엄씨 시조와 함께 건너왔다. |
| 대구 서씨 | 97,866 | 서 | ||
| 나주 나씨 | 96,018 | 나 | ○ | "나주나씨"로 표기. 시조는 나부이다. 중국 예장군에서 고려로 건너왔다. 정의대부, 감문위상장군을 역임하고 나주에 살았다. |
| 연안 김씨 | 93,382 | 김 | ||
| 삼척 김씨 | 92,671 | 김 | ||
| 상산 김씨 | 91,558 | 김 | ||
| 청도 김씨 | 91,293 | 김 | ||
| 무안 박씨 | 90,785 | 박 | ||
| 문화 류씨 | 90,313 | 유 | ○ | "문화류씨"로 표기. 시조는 고려 건국의 공신 유차달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
| 탐진 최씨 | 89,943 | 최 | ||
| 곡부 공씨 | 89,331 | 공 | ○ | |
| 고성 이씨 | 88,587 | 이 | ||
| 월성 김씨 | 87,268 | 김 | ||
| 원주 이씨 | 85,562 | 이 | ||
| 영월 신씨 | 84,905 | 신 | ||
| 평강 채씨 | 84,877 | 채 | ○ | |
| 여주 이씨 | 84,389 | 이 | ||
| 인천 이씨 | 83,855 | 이 | ||
| 성주 배씨 | 83,620 | 배 | ||
| 경주 최씨 | 82,843 | 최 | ||
| 영양 남씨 | 82,272 | 남 | ||
| 평창 이씨 | 80,607 | 이 | ||
| 온양 방씨 | 80,445 | 방 | ○ | |
| 죽산 안씨 | 77,026 | 안 | ||
| 부안 임씨 | 76,154 | 임 | ||
| 백천 조씨 | 75,978 | 조 | ||
| 장흥 고씨 | 75,517 | 고 | ||
| 동복 오씨 | 72,394 | 오 | ||
| 보성 오씨 | 71,162 | 오 | ||
| 진주 유씨 | 68,901 | 유 | "진주유씨"로 표기. | |
| 경주 손씨 | 68,486 | 손 |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점량부의 촌장이었던 구례마를 시조라고 칭한다. | |
| 예천 임씨 | 66,492 | 임 | ||
| 해남 윤씨 | 66,394 | 윤 | ||
| 영일 정씨 | 65,991 | 정 | 연일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진양 하씨 | 65,836 | 하 | ||
| 칠원 윤씨 | 65,098 | 윤 | ||
| 성산 배씨 | 65,052 | 배 | ||
| 밀성 박씨 | 64,142 | 박 |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박언심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를 시조라고 칭한다. 밀양 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죽산 박씨 | 63,179 | 박 | ||
| 순천 김씨 | 62,916 | 김 | ||
| 능주 구씨 | 62,574 | 구 | ||
| 전주 유씨 | 62,189 | 유 | "전주유씨"로 표기. | |
| 광주 노씨 | 61,809 | 노 |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노개의 아들 노수가 광산백에 봉해진 것을 조상으로 한다. 광산 노씨와 같은 계열이다. | |
| 교하 노씨 | 61,747 | 노 | 당나라의 한림학사 노수가 신라로 건너왔다. 그의 차남 노우가 신라의 교하백에 봉해진 것을 조상으로 한다. | |
| 수성 최씨 | 61,231 | 최 | ||
| 강릉 함씨 | 59,705 | 함 | ○ | |
| 덕수 이씨 | 58,513 | 이 | ||
| 파주 염씨 | 57,531 | 염 | ○ | |
| 전주 김씨 | 56,989 | 김 | 신라 말기 제56대 경순왕의 제4왕자 김은설의 8세손인 김태서가 몽골의 침략으로 전주로 이주하여 시조가 된다. | |
| 연주 현씨 | 56,047 | 현 | ○ | |
| 양성 이씨 | 55,246 | 이 | ||
| 재령 이씨 | 54,166 | 이 | ||
| 초계 변씨 | 53,860 | 변 | ○ | |
| 옥천 조씨 | 53,406 | 조 | ||
| 김해 배씨 | 53,222 | 배 | ||
| 성주 도씨 | 53,066 | 도 | ○ | |
| 신천 강씨 | 52,945 | 강 | ○ | |
| 언양 김씨 | 52,652 | 김 | ||
| 진성 이씨 | 52,538 | 이 | ||
| 고흥 유씨 | 52,221 | 유 | "고흥유씨"로 표기. | |
| 금성 나씨 | 51,966 | 나 | ||
| 삭녕 최씨 | 51,525 | 최 | ||
| 거창 신씨 | 51,153 | 신 | ○ | |
| 나주 김씨 | 51,060 | 김 | ||
| 평양 조씨 | 50,480 | 조 | ||
| 부안 김씨 | 48,961 | 김 | ||
| 진주 소씨 | 48,836 | 소 | ○ | |
| 분성 배씨 | 48,427 | 배 | ||
| 광주 안씨 | 48,033 | 안 | ||
| 원주 변씨 | 47,804 | 변 | ○ | |
| 옥천 전씨 | 47,681 | 전 |
8. 중국의 본관
주나라 시대에 봉토를 제후에게 하사하고 사성정책을 쓰면서 “○○지역 ○○○”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태어난 곳에 따라 “○○지역 ○○○”이라는 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당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나라는 한국의 한자 성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서진 시대에 혼란을 겪은 이후, 본관은 그 인물의 출신지와는 달라져 시조의 출신을 보이는 계보상의 의미가 되었고, 귀족 사회에서 동일한 종족 집단에 속함을 나타냈다.
* 여남 원씨
* 랑야 왕씨
* 영천 진씨
* 홍농 양씨
* 태원 왕씨
* 진군 사씨
화교·화인 사이에서는 중국에서의 조상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관이라는 말이 사용된다(본적·원적).
9. 조선의 주요 본관
| 성씨 | 문장 | 영어 | 한글 | 한자 | 시조 | 대한민국 인구 (2015) | 참고자료 |
|---|---|---|---|---|---|---|---|
| 김 | 김해 김씨 | 김해 김씨 | 金海 金氏 | 수로왕 | 4,456,700 | ||
| 경주 김씨 | 경주 김씨 | 慶州 金氏 | 김알지 | 1,800,853 | |||
| 광산 김씨 | 광산 김씨 | 光山 金氏 | 김흥광 | 926,316 | |||
| 안동 김씨 | 안동 김씨 | 安東 金氏 | 김숙성, 김선평 | 519,719 | |||
| 김녕 김씨한국어 | 김녕 김씨 | 金寧 金氏 | 김시흥 | 577,793 | |||
| 의성 김씨한국어 | 의성 김씨 | 義城 金氏 | 김석 | 287,469 | |||
| 강릉 김씨 | 강릉 김씨 | 江陵 金氏 | 김주원 | 179,593 | |||
| 선산 김씨한국어 | 선산 김씨 | 善山 金氏 | 김선궁한국어 | 138,819 | |||
| 청풍 김씨한국어 | 청풍 김씨 | 淸風金氏 | 김태유 | 110,815 | |||
| 연안 김씨한국어 | 연안 김씨 | 延安 金氏 | 김섬한 | 93,382 | |||
| 삼척 김씨한국어 | 삼척 김씨 | 三陟 金氏 | 김추 | 92,671 | |||
| 상산 김씨한국어 | 상산 김씨 | 商山 金氏 | 김수 | 91,558 | |||
| 청도 김씨한국어 | 청도 김씨 | 淸道 金氏 | 김지대한국어 | 91,293 | |||
| 이 | 전주 이씨 | 전주 이씨 | 全州 李氏 | 이한한국어 | 2,631,643 | ||
| 경주 이씨한국어 | 경주 이씨 | 慶州 李氏 | 알평한국어 | 1,391,867 | |||
| 성주 이씨한국어 | 성주 이씨 | 星州 李氏 | 이순유 | 203,703 | |||
| 광주 이씨한국어 | 광주 이씨 | 廣州 李氏 | 이차성 | 181,377 | |||
| 전의 이씨한국어 | 전의 이씨 | 全義 李氏 | 이도 | 164,189 | |||
| 연안 이씨한국어 | 연안 이씨 | 延安 李氏 | 이무 | 164,036 | |||
| 한산 이씨한국어 | 한산 이씨 | 韓山 李氏 | 이윤경 | 156,861 | |||
| 함평 이씨한국어 | 함평 이씨 | 咸平 李氏 | 이언 | 138,550 | |||
| 영천 이씨한국어 | 영천 이씨 | 寧川 李氏 | 이문한 | 135,612 | |||
| 합천 이씨한국어 | 합천 이씨 | 陜川 李氏 | 이개 | 121,416 | |||
| 성산 이씨한국어 | 성산 이씨 | 星山 李氏 | 이능일 | 113,087 | |||
| 벽진 이씨한국어 | 벽진 이씨 | 碧珍 李氏 | 이총언한국어 | 109,267 | |||
| 덕수 이씨한국어 | 덕수 이씨 | 德水 李氏 | 이돈수 | 58,513 | |||
| 박 | 밀양 박씨 | 밀양 박씨 | 密陽 朴氏 | 박언침 | 3,103,942 | ||
| 함양 박씨한국어 | 함양 박씨 | 咸陽 朴氏 | 박언신 | 163,610 | |||
| 반남 박씨한국어 | 반남 박씨 | 潘南 朴氏 | 박응추 | 160,964 | |||
| 순천 박씨한국어 | 순천 박씨 | 順天 朴氏 | 박영규 | 105,208 | |||
| 최 | 경주 최씨 | 경주 최씨 | 慶州 崔氏 | 최치원 | 945,005 | ||
| 전주 최씨한국어 | 전주 최씨 | 全州 崔氏 | 최순작, 최균, 최군옥, 최아 | 458,191 | |||
| 해주 최씨한국어 | 해주 최씨 | 海州 崔氏 | 최온 | 201,625 | |||
| 강릉 최씨 | 강릉 최씨 | 江陵 崔氏 | 최흔봉, 최필달, 최문한 | 145,335 | |||
| 정 | 동래 정씨한국어 | 동래 정씨 | 東萊 鄭氏 | 정회문 | 474,506 | ||
| 경주 정씨한국어 | 경주 정씨 | 慶州 鄭氏 | 지백호한국어 | 350,587 | |||
| 연일 정씨한국어 | 연일 정씨 | 延日 鄭氏 | 정종운 | 284,290 | |||
| 진주 정씨한국어 | 진주 정씨 | 晉州 鄭氏 | 정예, 정자우, 정장, 정헌 | 324,521 | |||
| 하동 정씨한국어 | 하동 정씨 | 河東 鄭氏 | 정도정 | 187,152 | |||
| 초계 정씨한국어 | 초계 정씨 | 草溪 鄭氏 | 정백걸 | 104,155 | |||
| 해주 정씨한국어 | 해주 정씨 | 海州 鄭氏 | 정석 | 45,101 | |||
| 강 | 진주 강씨한국어 | 진주 강씨 | 晉州 姜氏 | 강이식 | 1,161,326 | ||
| 조 | 창녕 조씨한국어 | 창녕 조씨 | 昌寧 曺氏 | 조계룡 | 366,798 | ||
| 한양 조씨한국어 | 한양 조씨 | 漢陽 趙氏 | 조지수 | 332,580 | |||
| 함안 조씨 | 함안 조씨 | 咸安 趙氏 | 조정 | 282,890 | |||
| 풍양 조씨 | 풍양 조씨 | 豐壤 趙氏 | 조맹 | 124,262 | |||
| 윤 | 파평 윤씨한국어 | 파평 윤씨 | 坡平 尹氏 | 윤신달 | 770,932 | ||
| 장 | 인동 장씨 | 인동 장씨 | 仁同 張氏 | 장금용 | 666,652 | ||
| 임 | 나주 임씨한국어 | 나주 임씨 | 羅州 林氏 | 임비한국어 | 277,699 | ||
| 평택 임씨 | 평택 임씨 | 平澤 林氏 | 임팔급 | 225,872 | |||
| 풍천 임씨 | 풍천 임씨 | 豊川 任氏 | 임온 | 143,881 | |||
| 한 | 청주 한씨 | 청주 한씨 | 淸州 韓氏 | 한란 | 752,689 | ||
| 오 | 해주 오씨 | 해주 오씨 | 海州 吳氏 | 오인유 | 462,704 | ||
| 서 | 달성 서씨한국어 | 달성 서씨 | 達城 徐氏 | 서진 | 407,431 | ||
| 이천 서씨 | 이천 서씨 | 利川 徐氏 | 서신일 | 199,792 | |||
| 대구 서씨한국어 | 대구 서씨 | 大丘 徐氏 | 서한 | 97,866 | |||
| 신 | 평산 신씨 | 평산 신씨 | 平山申氏 | 신숭겸 | 563,375 | ||
| 고령 신씨한국어 | 고령 신씨 | 高靈 申氏 | 신성용 | 129,718 | |||
| 영산 신씨 | 영산 신씨 | 靈山 辛氏 | 신경 | 98,759 | |||
| 권 | 안동 권씨한국어 | 안동 권씨 | 安東 權氏 | 권행한국어 | 696,317 | ||
| 황 | 창원 황씨 | 창원 황씨 | 昌原 黃氏 | 황석주 | 271,986 | ||
| 장수 황씨 | 장수 황씨 | 長水 黃氏 | 황경 | 170,988 | |||
| 평해 황씨 | 평해 황씨 | 平海 黃氏 | 황온인 | 168,374 | |||
| 안 | 순흥 안씨 | 순흥 안씨 | 順興 安氏 | 안자미 | 520,384 | ||
| 송 | 여산 송씨 | 여산 송씨 | 礪山 宋氏 | 송유익 | 294,788 | ||
| 은진 송씨 | 은진 송씨 | 恩津 宋氏 | 송대원 | 226,050 | |||
| 전 | 천안 전씨한국어 | 천안 전씨 | 天安 全氏 | 전섭, 전낙 | 176,239 | ||
| 정선 전씨한국어 | 정선 전씨 | 旌善 全氏 | 전섭, 전선 | 166,965 | |||
| 담양 전씨한국어 | 담양 전씨 | 潭陽 田氏 | 전득시 | 155,018 | |||
| 홍 | 남양 홍씨 | 남양 홍씨 | 南陽 洪氏 | 홍천하, 홍선행 | 487,488 | ||
| 고 | 제주 고씨한국어 | 제주 고씨 | 濟州 髙氏 | 고을나한국어 | 310,542 | ||
| 문 | 남평 문씨한국어 | 남평 문씨 | 南平 文氏 | 문다성 | 445,946 | ||
| 양 | 남원 양씨한국어 | 남원 양씨 | 南原 梁氏 | 양우량 | 307,724 | ||
| 제주 양씨한국어 | 제주 양씨 | 濟州 梁氏 | 양을나한국어 | 142,211 | |||
| 청주 양씨 | 청주 양씨 | 淸州 楊氏 | 양기 | 38,161 | |||
| 손 | 밀양 손씨한국어 | 밀양 손씨 | 密陽 孫氏 | 손순 | 306,895 | ||
| 경주 손씨한국어 | 경주 손씨 | 慶州 孫氏 | 손순 | 68,486 | |||
| 배 | 성주 배씨한국어 | 성주 배씨 | 星州 裵氏 | 배위준 | 148,672 | ||
| 백 | 수원 백씨 | 수원 백씨 | 水原 白氏 | 백우경 | 354,428 | ||
| 허 | 양천 허씨 | 양천 허씨 | 陽川 許氏 | 허선문 | 149,505 | ||
| 남 | 영양 남씨 | 영양 남씨 | 英陽 南氏 | 김충 | 82,272 | ||
| 곽 | 현풍 곽씨 | 현풍 곽씨 | 玄風 郭氏 | 곽경 | 166,608 | ||
| 민 | 여흥 민씨 | 여흥 민씨 | 驪興 閔氏 | 민칭도 | 139,073 | ||
| 유/류 | 문화 류씨 | 문화 류씨 | 文化 柳氏 | 유차달 | 237,314 | ||
| 강릉 유씨 | 강릉 유씨 | 江陵 劉氏 | 유전, 유승비 | 236,871 | |||
| 기계 유씨한국어 | 기계 유씨 | 杞溪 兪氏 | 유삼재 | 139,073 | |||
| 진 | 여양 진씨 | 여양 진씨 | 驪陽 陳氏 | 진총후 | 110,403 | ||
| 모 | 함평 모씨 | 함평 모씨 | 咸平 牟氏 | 모경 | 20,644 | ||
| 경 | 청주 경씨한국어 | 청주 경씨 | 淸州 慶氏 | 경진한국어 | 12,474 | ||
| 복 | 면천 복씨한국어 | 면천 복씨 | 沔川 卜氏 | 복지겸 | 9,538 | ||
| 견 | 황간 견씨한국어 | 황간 견씨 | 黃澗 甄氏 | 아자개 | 1,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