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피전은 캐나다 출신의 배우로, 1897년에 태어나 1984년에 사망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계에 진출했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고, 특히 《미니버 부인》, 《퀴리 부인》 등의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피전은 1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도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캐나다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레스터 B. 피어슨 레스터 B. 피어슨은 캐나다의 총리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외무장관으로서 NATO 가입 및 한국 전쟁 참전 등 주요 외교 정책 결정에 참여했으며, 총리 재임 시절에는 캐나다-미국 자동차 협정 체결, 캐나다 국기 제정, 캐나다 연금 제도 도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캐나다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로버트 E. 셔우드 로버트 에멧 셔우드는 미국의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 평론가로서 퓰리처상 4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 작가로 활동했고, 대표작으로는 《바보들의 즐거움》, 《일리노이의 에이브 링컨》, 《레베카》,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등이 있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동문 - 양인모 양인모는 서울예고 수석 입학 후 여러 음악대학을 거쳐 다양한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NDR 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하며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을 가진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동문 - 코레타 스콧 킹 코레타 스콧 킹은 미국의 인권 운동가이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배우자로, 남편과 함께 민권 운동에 참여했으며, 남편 사후에는 인권, 평화, 여성 및 성소수자 권리 옹호 활동을 펼쳤다.
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야코프 그림 야코프 그림은 그림 동화 편찬, 독일어 사전 편찬 참여, 그림의 법칙 정립 등 언어학과 문헌학에 큰 업적을 남긴 독일의 학자이자, 법학자, 민속학자, 자유주의 운동가였다.
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최재욱 (정치인) 최재욱은 경향신문 사장,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환경부 장관, 국회의원,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세인트존에서 태어난 피전은 가정주부였던 한나(옛 성씨 샌본)와 양복점 주인이었던 캘럽 버피 피전의 아들이었다.[3]
피전은 지역 학교와 뉴브런즈윅 대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법률과 연극을 공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캐나다 왕립 포병 연대 중위로 제65포대에 자원 입대하면서 그의 대학 교육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는 두 대포 마차 사이에 끼이는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 17개월 동안 군 병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하지는 못했다.[4] 그의 장교 임관 기록에는 1895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추가적인 의료 기록에는 1896년생으로 되어 있다.
전쟁 후 그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이주하여 은행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보스턴 컨서바토리에서 성악을 공부했다.[5]뉴브런즈윅주 세인트존 출신으로,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15]
3. 경력
피전은 뉴브런즈윅주 세인트존 출신으로,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15] 바리톤 가수였으나 배우로 전향하여 1925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이듬해 영화에 데뷔하였고, 1942년 영화 《미니버 부인》(Mrs. Miniver)과 1943년 영화 《퀴리 부인》(Madame Curie)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일생 동안 1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첫 번째 영화 역할은 무성 영화 ''마네킹''(Mannequin) (1925)이었다. 유성 영화 시대에 피전은 뮤지컬 ''연대의 신부''(Bride of the Regiment) (1930), ''스윗 키티 벨레어스''(Sweet Kitty Bellairs) (1930), ''빈의 밤''(Viennese Nights) (1930), ''키스 미 어게인''(Kiss Me Again) (1931)에 출연했다.
1937년 ''사라토가''(Saratoga) (1937)로 영화에 복귀한 후, ''황금 서부의 소녀''(The Girl of the Golden West) (1938)과 ''다크 커맨드''(Dark Command) (1940)에 출연했다.[4]
1941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내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1941)에 출연했다. 그리어 가르손과 함께 ''티끌 속의 꽃''(Blossoms in the Dust) (1941), ''미니버 부인''(Mrs. Miniver) (1942)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름), 속편 ''미니버 이야기''(The Miniver Story) (1950)에 출연했다. ''마담 퀴리''(Madame Curie) (1943)로도 후보에 올랐다. 가르손과의 파트너십은 ''파킹턴 부인''(Mrs. Parkington) (1944), ''줄리아는 장난을 친다''(Julia Misbehaves) (1948), ''포사이트 부인''(That Forsyte Woman) (1949), ''스쿠리의 스캔들''(Scandal at Scourie) (1953)로 이어졌다. 코미디 ''월도프에서의 주말''(Week-End at the Waldorf) (1945)에서 칩 콜리어 역, 2차 세계 대전 후 빈에서 러시아인 송환 임무를 맡은 마이클 S. '후키' 니코바 대령 역(''붉은 다뉴브''(The Red Danube) (1949))으로 출연했다.
1961년 ''바다 밑으로의 여행''(Voyage to the Bottom of the Sea)에서 해리먼 넬슨 제독 역, 월트 디즈니의 ''큰 빨간색''(Big Red) (1962)에서 제임스 해긴 역, 오토 프레밍거의 ''자문과 동의''(Advise & Consent)에서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 역을 맡았다. ''재미있는 여자''(Funny Girl) (1968)에서 플로렌츠 지그펠드 역은 호평을 받았다. ''당신 주머니의 해리''(Harry in Your Pocket) (1973)에서 제임스 코번의 조수 케이시 역을 맡았다.
1977년 연기 활동에서 은퇴했다.
3. 1. 연극
보스턴에서 아마추어 연극에 출연하던 중 피전은 프로듀서이자 배우 겸 가수인 엘시 재니스에게 고용되었다. 1923년 뉴욕시로 이주하여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영국 프로듀서 E. E. 클라이브와 면담을 가졌다. 피전은 재니스의 1925년 리뷰인 ''퍼즐스 오브 1925''(Puzzles of 1925)에서 브로드웨이에 처음으로 주연으로 데뷔했다.[4] 클라이브는 ''너는 결코 알 수 없다''(You Never Can Tell)를 제작하고 있었고, 피전의 연극 경험 부족에도 불구하고 조연으로 그를 캐스팅했다.
피전의 성공은 재니스와 그 사이에 불화를 야기하여 피전은 해고되었고 할리우드로 이주하게 되었다.[4] 자신이 맡는 역할의 질에 실망한 피전은 1928년 뉴욕으로 돌아와 연극 경력을 재개했다.[4] 1935년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Something Gay'', ''1월 16일의 밤''(Night of January 16th), 그리고 ''여성에게는 지혜가 있다''(There's Wisdom in Women)에 출연했다.
''나쁜 것과 아름다운 것''(The Bad and the Beautiful) (1952), ''경영진 스위트''(Executive Suite) (1954), 그리고 ''금단의 행성''(Forbidden Planet) (1956)을 포함한 영화 제작을 계속했지만, 피전은 20년 만에 1950년대 중반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그는 재키 글리슨과 함께 ''데려가줘''(Take Me Along)에 출연했고 뮤지컬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피전은 1959년 11월 26일 ''딕 파월의 제인 그레이 극장''(Dick Powell's Zane Grey Theatre)의 에피소드 "킹 오브 더 밸리"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은행가와 10000USD 대출을 놓고 다투는 부유한 목장주 데이브 킹 역을 맡았다.[4]
그는 ''로하이드''("The Reunion", 1962), ''브레이킹 포인트'', ''FBI'', ''마커스 웰비, M.D.'', ''깁스빌'' 등에 출연했다. 1963년에는 레이먼드 버가 수술에서 회복하는 동안 ''페리 메이슨''의 특별 에피소드 4편 중 4번째 에피소드에서 기업 변호사 셔먼 해틀필드 역으로 게스트 출연했다. 1965년에는 레슬리 앤 워렌이 주연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CBS 텔레비전 제작 ''신데렐라''에서 왕 역을 맡았다.[4]
4. 정치 활동
월터 피전은 미국 공화당원으로, 1944년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로스앤젤레스 콜로세움에서 개최한 토머스 E. 디위-존 W. 브리커 후보 조합 지지 집회에 참석했다. 이 집회에는 세실 B. 드밀이 사회를 맡고 헤다 호퍼와 월트 디즈니가 짧은 연설을 하는 등 9만 3천 명이 모였다. 피전은 1948년 디위의 러닝메이트였던 얼 워렌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지했다.[6]
5. 사생활
피전은 1919년에 에드나 머리얼 피클스와 결혼했으나, 1921년 딸 에드나를 출산하던 중 부인이 사망했다.[7] 1931년, 피전은 자신의 비서였던 루스 워커와 재혼하여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