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여
1. 개요
위수여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로, 강화 위씨 출신이며 국왕의 측근 세력으로 관료가 되었다. 광종 때 사선을 시작으로 경종 원년에 원보, 지어주사를 거쳐 목종 이후 승진하여 1009년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었다. 1012년 문하시중으로 봉해졌으나 같은 해 사망했으며, 내사령에 추증되고 시호는 안공이다.
| 한자 | 韋寿餘 |
|---|---|
| 한국어 (음독) | 위수여 |
| 문화관광부 2000년식 표기 | Wisuyeo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Wisuyŏ |
-
강화 위씨 -
위혜덕
-
고려의 자작 -
최항 (972년)
최항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최언위의 손자이며 991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목종 때 김치양의 음모를 막고 현종을 옹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현종의 명으로 태조 이하 7대조의 실록을 편찬하고 팔관회를 부활시켰다. -
고려의 자작 -
채충순
채충순은 고려 목종 때 중추원부사를 거쳐 현종 옹립에 기여하고 거란 침입 시 왕을 호종했으며, 이부상서와 참지정사를 지내고 정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1012년 사망 -
긴타로
긴타로는 일본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강인함과 용기의 상징이며, 곰과 씨름하며 성장하여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의 부하로 활약했고,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소재로 활용되어 현대 일본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1012년 사망 -
교황 세르지오 4세
교황 세르지오 4세는 11세기 초에 재임한 교황으로, 로마 귀족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근 구제와 수도원 보호에 힘썼으며, 예루살렘 성묘 교회 파괴 후 무슬림 축출을 촉구하는 칙서가 유포되었으나 진위 논란이 있다.
2. 생애
위수여는 광종 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목종, 현종 대에 이르기까지 고위 관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광종(재위 949~975년) 때 사선(司膳)으로 오래 있었고, 976년(경종 원년) 원보(元甫)를 거쳐 지어주사(知御廚事)로 임명되었다. 1012년(현종 3년) 2월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강화현개국자(江華縣開國子)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26일(양력 5월 19일) 사망했으며, 사후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안공(安恭)이다.
2.1. 가문 및 성장 배경
위수여는 신라 말 고려 초 혈구진(穴口鎭 : 오늘날 인천광역시 강화군) 지역의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강화 위씨(江華韋氏)로, 국왕의 측근 세력으로 출세한 관료이다. 성품이 단아하고 성실해 법도를 잘 지켰다.
2.2. 관직 생활
신라 말 고려 초 인천광역시 강화군 혈구진(穴口鎭) 지역의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강화 위씨(江華韋氏) 출신으로, 국왕의 측근 세력으로 출세한 관료이다. 성품이 단아하고 성실하여 법도를 잘 지켰다.
광종(재위 949~975년) 때부터 사선(司膳)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였고, 976년(경종 원년)에는 원보(元甫)를 거쳐 지어주사(知御廚事)에 임명되었다.
목종 이후 계속 승진하여 1009년(현종 즉위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1011년(현종 2년) 고령으로 은퇴하려 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조정 신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1012년(현종 3년) 2월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강화현개국자(江華縣開國子)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2.3. 최고위 관직 임명 및 사망
광종(재위 949~975년) 때부터 사선(司膳)으로 오래 있다가 976년(경종 원년)에는 원보(元甫)로 있었고, 지어주사(知御廚事)로 임명되었다. 목종 이후 계속 승진해 1009년(현종 즉위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1011년(현종 2년)에 나이가 많아 물러나고자 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크게 등용하고자 해 1012년(현종 3년) 2월에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강화현개국자(江華縣開國子)로 봉하고 식읍 5백 호를 주었다. 같은 해 4월 26일(양력 5월 19일)에 사망했다.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안공(安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