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교동강왕)
1. 개요
유기(교동강왕)는 전한 경제의 아들로, 기원전 148년에 교동나라의 왕으로 봉해졌다. 회남왕 유안의 모반을 대비하여 사적으로 무기를 준비했으며, 이 일로 인해 무제에게 상처를 입고 병으로 사망했다. 유기는 왕후 정씨에게서 아들이 없어, 다른 부인에게서 낳은 유현을 태자로 세웠으나, 막내 아들 유경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했다. 결국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무제는 유현을 교동왕으로, 유경을 육안왕으로 봉했다. 유기의 아들로는 유현, 유건, 유창, 유연년, 유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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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1년 사망 -
가이우스 그라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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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1년 사망 -
공손홍
공손홍은 전한 무제 시대의 정치가로, 40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승상에 올랐으나, 검소한 생활과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며 사마천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전한 경제의 황자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경제의 황자 -
유승 (중산정왕)
유승은 경제의 아들로 중산국의 초대 왕이며, 오초칠국의 난 이후 제후왕으로 봉해졌고, 영토 삭감 정책에 협조하는 한편 제후왕 탄압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주색을 즐기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그의 묘에서 금루옥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촉한의 유비가 그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경제 중2년(기원전 148년), 유기(劉寄)는 제후왕으로 봉해졌다. 회남왕 유안의 모반 준비 소식을 듣고 대비했으나, 이후 모반 사건 조사 과정에서 연루 의혹을 받았다. 무제와 친밀했던 유기는 이 일로 상심하여 병을 얻어 교동강왕 28년(기원전 121년)에 사망했다. 왕후 정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고, 후사 문제로 고민하다 결국 정하지 못하고 죽었다. 무제는 유기를 불쌍히 여겨 유현을 교동왕으로, 유경을 육안왕으로 삼았다.
2.1. 초기 생애 및 봉작
경제 중2년(기원전 148년) 4월 을사일, 동복 형 유월과 함께 제후왕으로 봉해졌다. 봉국은 교동나라로, 원래 이복형 유철의 봉국이었는데 유철이 태자가 되면서 폐지되었었다.
2.2. 회남왕 모반 연루 의혹
회남왕 유안이 모반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사로이 무기를 갖추어 유안이 반란을 일으킬 때를 대비했다. 나중에 회남왕의 모반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기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유기는 무제와 가장 친했으므로 마음에 상처를 입어 병이 나 끝내 죽었다.
2.3. 사망과 후계
교동강왕은 교동강왕 28년(기원전 121년)에 죽었다.
유기는 왕후 정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다. 다른 부인에게서 낳은 유현을 태자로 세웠으나, 유현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유기는 막내아들 유경의 어머니를 사랑했기에 유경을 후사로 세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는 계승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었다. 또한 유기는 이전에 회남왕 유안의 모반 때 사사로이 무장한 잘못이 있었다. 그래서 황제에게 이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죽었다. 무제는 이를 듣고 유기를 불쌍히 여겨, 유현은 교동왕으로 삼아 교동강왕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유경에게는 옛 형산나라 땅을 주어 육안왕으로 삼았다.
3. 가계
| 부 | 전한 경제 |
|---|---|
| 본인 | 교동강왕 유기 |
| 아들 |
3.1. 가계 관련 추가 설명
교동애왕 유현의 아들들인 고우양후(臯虞煬侯) 유건(劉建), 위기양후(魏其煬侯) 또는 위기창후(魏其暢侯) 유창(劉昌), 사자후(祀玆侯) 또는 축자후(祝茲侯) 유연년(劉延年)은 모두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5월 병오일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