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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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럽 정치 협력(EPC)은 1970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 연합 회원국들이 외교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시행한 정부 간 협력 체제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외교 정책 통합 시도가 실패한 후, 1969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정치 통합을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룩셈부르크/다비뇽 보고서를 통해 비공식적인 정부 간 자문 제도가 마련되었다. EPC는 푸셰 플랜의 정부 간 조직 성격을 도입하고, 영국의 참여로 대서양주의적 성격을 띠었으며, 1973년 코펜하겐 보고서, 1981년 런던 보고서, 1986년 단일 유럽 의정서를 통해 강화되었다. EPC는 중동 분쟁 대응과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창설에 기여했으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공동 외교 안보 정책(CFSP)으로 대체되었다.

유럽 정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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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1950년대1960년대유럽 공동체(EC) 회원국들은 역내 시장에 외교 정책 차원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두 차례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1960년대 초부터 유럽 정치 협력(EPC) 구상이 검토되었으나 샤를 드 골 대통령과 다른 회원국 간의 의견 차이로 실행이 지연되었다. 샤를 드 골 대통령의 정계 은퇴 이후, 유럽 외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은 회원국들이 대외 정책을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3. 창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유럽 공동체 회원국들은 역내 시장에 외교 정책 차원을 추가하려 했으나 두 차례 실패했다. 1969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외무장관들에게 초국가적인 유럽 방위 공동체 구상을 참고하여, 확대라는 흐름 속에서 정치적 통합을 실현하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각 장관들은 1970년 룩셈부르크/다비뇽 보고서를 작성하여 회원국들이 "규모의 정치"를 달성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정부 간 협의 제도를 제안했다.

이후 유럽 정치 협력은 1973년 코펜하겐 보고서, 1981년 런던 보고서를 통해 개정 및 강화되었고, 1986년 단일 유럽 의정서에서 공식적인 틀로서 기본 조약에 추가되었다.

3.1. 유럽 정치 협력(EPC)의 특징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유럽 공동체 회원국들은 역내 시장에 외교 정책 차원을 통합하려 했으나 두 차례 실패했다. 1969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각국 수뇌들은 외무장관들에게 초국가적인 유럽 방위 공동체 구상을 참고하여 정치적 통합 실현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외무장관들은 1970년 룩셈부르크/다비뇽 보고서를 작성하여 비공식적인 정부 간 협의 제도 설치를 통해 "규모의 정치"를 실현할 것을 천명했다.

유럽 정치 협력(EPC)은 푸셰 계획의 정부 간 기구 성격을 채택했지만, 샤를 드 골 시대의 '프랑스의 위대함'은 경시되었다. 영국의 참여는 EPC의 대서양주의적 성격을 강화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관련 권한이 있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었다. EPC는 푸셰 제안의 파리에 기반을 둔 강력한 사무국을 갖추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유럽 집행위원회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4. 발전 과정

1973년 코펜하겐 보고서와 1981년 런던 보고서를 통해 유럽 정치 협력(EPC)은 개정 및 강화되었다. 1986년 단일 유럽 의정서를 통해 EPC는 공식화되었다. 1981년 1월 6일,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연설에서 EPC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 평가

유럽 정치 협력(EPC)은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된다. 1970년대에는 중동 분쟁 대응과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의 전신인 유럽 안보 협력 회의(CSCE)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는 유럽 정치 협력의 약점이 드러났다.

6. 공동 외교 안보 정책(CFSP)으로의 전환

1993년 11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유럽 정치 협력(EPC)은 공동 외교 및 안보 정책(CFSP)으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