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승상)
1. 개요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유양(劉襄)의 아들로, 도안후(桃安侯)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연간에 태복, 어사대부를 거쳐 기원전 147년 주아부를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으나, 지진과 일식 발생 후 면직되었다. 유사의 후임 승상으로 위관이 임명되면서 고조의 개국공신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이 깨졌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
전한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2. 생애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유양(劉襄) 곧 항양의 아들이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되었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되었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1. 초기 생애
2.2. 관직 생활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항양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고,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3. 면직과 죽음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유양(劉襄)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