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승상)
1. 개요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유양(劉襄)의 아들로, 도안후(桃安侯)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연간에 태복, 어사대부를 거쳐 기원전 147년 주아부를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으나, 지진과 일식 발생 후 면직되었다. 유사의 후임 승상으로 위관이 임명되면서 고조의 개국공신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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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관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유양(劉襄) 곧 항양의 아들이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되었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되었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1. 초기 생애
2.2. 관직 생활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항양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고,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3. 면직과 죽음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유양(劉襄)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