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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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유양(劉襄)의 아들로, 도안후(桃安侯)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연간에 태복, 어사대부를 거쳐 기원전 147년 주아부를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으나, 지진과 일식 발생 후 면직되었다. 유사의 후임 승상으로 위관이 임명되면서 고조의 개국공신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이 깨졌다.

유사 (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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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사(劉舍)는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후(桃安侯) 유양(劉襄) 곧 항양의 아들이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되었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되었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1. 초기 생애

2.2. 관직 생활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桃安侯) 항양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고,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2.3. 면직과 죽음

전한의 개국공신 135위인 도안(桃安侯) 유양(劉襄)의 아들로,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했다. 경제 5년(기원전 152년)에 태복이 됐으며,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는 어사대부가 됐다. 경제 중3년(기원전 147년)에는 경제의 눈밖에 나 면직된 주아부를 대신해 승상이 됐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에 지진과 일식이 일어났고, 일식이 일어난 지 이틀 후에 면직됐다.

도후로는 30년 만에 죽어 아들 유신 혹 유유가 작위를 세습했으며, 시호는 도애후(桃哀侯) 혹은 도의후(桃懿侯)다. 고조의 개국공신과 그 아들들이 승상을 지내는 관습은 유사까지 지켜졌고, 유사의 후임 승상이 경제의 측근인 위관으로 정해지면서 깨졌으나 이후에도 허창·설택 등의 사례가 있었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위관과 함께 태형에 대한 세부사항을 청해 올렸다.

3. 평가

4.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