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 (상산헌왕)
1. 개요
유순(상산헌왕)은 전한 경제의 아들로, 기원전 145년에 상산왕에 봉해졌다. 그는 교만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여러 첩에게서 자식을 얻었으나, 왕후와 적장자를 소홀히 했다. 유순은 병으로 죽었고, 이후 서장자와 적장자 간의 분쟁으로 봉국이 폐지되었다. 그의 몰년은 기록에 따라 기원전 113년 또는 114년으로 전해진다. 자녀로는 유탈, 유발, 유평, 유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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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4년 사망 -
장건
장건은 한나라의 외교관이자 탐험가로, 한무제의 명을 받아 흉노 견제를 위한 대월지 동맹을 추진하며 서역에 파견되어 실크로드 개척의 계기를 마련하고 중국과 서역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
기원전 114년 사망 -
유기 (하간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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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경제의 황자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경제의 황자 -
유승 (중산정왕)
유승은 경제의 아들로 중산국의 초대 왕이며, 오초칠국의 난 이후 제후왕으로 봉해졌고, 영토 삭감 정책에 협조하는 한편 제후왕 탄압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주색을 즐기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그의 묘에서 금루옥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촉한의 유비가 그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경제 중5년(기원전 145년)에 상산왕으로 봉해졌다. 유순은 교만하고 황음하여 금령을 자주 범했으나 항상 황제의 용서를 받았다. 서장자 유탈(劉梲)의 어머니를 총애하지 않아 유탈을 아들로 여기지도 않았고, 왕후 수씨(脩氏)도 거의 가까이하지 않아 적장자인 태자 유발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한편 많은 부인들 중에서도 사랑하는 첩이 유평과 유상을 낳았다.
병들었을 때 왕후와 태자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죽었고, 나중에 유탈과 유발 모자 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아 봉국은 폐지되었다. 몰년은 한서 경십삼왕전에서는 상산헌왕 33년(기원전 113년), 사기 한흥이래제후왕표, 오종세가, 한서 무제기, 제후왕표에서는 상산헌왕 32년 = 전한 무제 원정 3년(기원전 11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2.1. 봉작과 통치
경제 중5년(기원전 145년)에 상산왕으로 봉해졌다. 유순은 교만하고 황음하여 금령을 자주 범했으나, 항상 황제의 용서를 받았다. 서장자 유탈(劉梲)의 어머니를 총애하지 않아 유탈을 아들로 여기지도 않았고, 왕후 수씨(脩氏)도 거의 가까이하지 않아 적장자인 태자 유발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한편, 많은 부인들 중에서도 사랑하는 첩이 유평과 유상을 낳았다. 그 때문에 유순이 병들었을 때 왕후와 태자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죽었다. 나중에 유탈과 유발 모자 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아 봉국은 폐지되었다.
2.2. 가족 관계와 갈등
유순은 기원전 145년에 상산왕으로 봉해졌다. 그는 교만하고 황음하여 금령을 자주 범했으나, 황제의 용서를 받았다.
유순은 서장자 유탈(劉梲)의 어머니를 총애하지 않아 유탈을 아들로 여기지도 않았고, 왕후 수씨(脩氏)도 거의 가까이하지 않아 적장자인 태자 유발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반면 많은 부인들 중에서 사랑하는 첩이 낳은 유평과 유상을 총애하였다. 그 때문에 유순이 병들었을 때 왕후와 태자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죽었다. 이러한 가족 간의 불화는 나중에 유탈과 유발 모자 간의 분쟁을 일으켜 봉국이 폐지되는 원인이 되었다.
2.3. 죽음과 봉국 폐지
劉順중국어은 교만하고 음란하여 자주 금령을 어겼으나, 항상 황제의 용서를 받았다. 서장자 劉梲중국어의 어머니를 총애하지 않아 劉梲중국어을 아들로 여기지도 않았고, 왕후 수씨(脩氏)도 거의 가까이하지 않아 적장자인 태자 유발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반면 많은 부인들 중에서도 사랑하는 첩이 유평과 유상을 낳았다. 그 때문에 병들었을 때 왕후와 태자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죽었다.
이후 劉梲중국어과 유발 모자 간의 분쟁으로 봉국이 폐지되었다.
몰년은 한서 경십삼왕전에서는 상산헌왕 33년(기원전 113년)으로, 사기 한흥이래제후왕표, 오종세가, 한서 무제기, 제후왕표에서는 상산헌왕 32년 = 전한 무제 원정 3년(기원전 11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