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부
1. 개요
유응부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처형되었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했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북변 방비를 담당했다.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조에게 단종 복위 의사를 밝히고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 숙종 때 병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민절서원과 노운서원에 배향되었다.
| 한글 이름 | 유응부 |
|---|---|
| 한자 이름 | 兪應孚 |
| 로마자 표기 | Yu Eungbu |
| 자 | 신지(信之) |
| 호 | 벽량(碧梁) |
| 시호 | 충목(忠穆) |
| 출생 | 미상 |
|---|---|
| 사망 | 1456년 |
| 사망 장소 | 미상 |
| 본관 | 기계 |
|---|---|
| 아버지 | 미상 |
| 어머니 | 미상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 친인척 | 미상 |
| 분야 | 미상 |
|---|---|
| 스승 | 미상 |
| 주요 제자 | 미상 |
| 주요 저작 | 미상 |
| 추증 | 병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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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문 피해자 -
유관순
유관순은 3·1 운동 당시 서울과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이끌었으며, 옥중에서도 독립 만세를 외치다 순국하여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삶과 업적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
한국의 고문 피해자 -
김익훈
김익훈은 광산 김씨 가문 출신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어영대장, 전라도병마절도사 등 요직을 지냈지만, 숙종 시대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남인 제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경신대출척을 주도하여 보사공신에 책록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인해 역모 혐의를 받고 사망 후 복권과 추탈을 거듭, 충헌공 시호를 받았으며, 그의 생애는 숙종 시대 당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나 사회 혼란에 기여했다는 비판도 있다. -
사육신 -
사육신공원
사육신공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조성된 공원이며, 사육신 묘, 의절사, 사육신역사관 등의 시설이 있다. -
사육신 -
하위지
하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3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으며, 세조 즉위 후 육조 직계제를 반대하다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처형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유응부는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재상급인 종2품에 이르러서도 끼니를 거를 정도로 청렴했다. 집이 가난했으나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벼슬이 높았음에도 거적자리로 방문을 가리고 고기반찬 없는 밥을 먹었다. 양식이 떨어질 때도 있어 처자가 원망하기도 했다.
그가 죽던 날, 아내는 "살아서도 남에게 의지함이 없었는데 죽을 때는 큰 화를 입었구나."라며 슬퍼했다.
무신이면서도 학문에 뛰어나 절의파 학자로도 알려졌으며, 시조 3수가 전해진다. 숙종 때 병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과천의 민절서원, 홍주의 노운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2.1. 관직 생활
무과에 급제하여 북변 방비 임무를 맡았다. 1448년에 첨지중추원사, 1449년에 경원도호부사 겸 경원절제사를 거쳐 1452년에는 의주목사로 임명되었다. 1453년에는 평안좌도도절제사가 되었다. 1455년 4월에 판강계도호부사를 거쳤고, 같은 해 6월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무신 최고위직인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학식 또한 깊어 세종과 문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2.2. 단종 복위 운동과 최후
세조가 국문하자 유응부는 "명나라 사신을 초청해 연회하는 날, 칼로 족하(足下)를 죽이고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 했으나, 김질에게 고발당했으니 빨리 나를 죽여라."라고 답했다.
고문을 받으면서 유응부는 성삼문 등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서생과는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지난번 사신을 초청해 연회하던 날, 내가 칼을 쓰려 했는데 그대들이 굳이 말리면서 '만전의 계책이 아니오' 하더니, 오늘 화를 불렀구나. 그대들처럼 꾀와 수단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라며 한탄하였다.
세조에게 "이 사실 외에 다른 것을 묻겠다면 저 쓸모없는 선비에게 물어보라" 하고는 입을 닫았다. 세조가 달군 쇠로 배 밑을 지지게 하자, 기름과 불이 타올랐으나 유응부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달군 쇠가 식기를 기다려 쇠를 집어 땅에 던지면서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 하고는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
3. 성품 및 평가
효성이 지극하여 집이 가난했으나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사생활은 매우 청렴하여 재상급의 종2품 관직에 있으면서도 거적자리로 방문을 가렸고 고기반찬 없는 밥을 먹었다. 때로는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여 처자가 이를 원망하기도 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재상급인 종2품에 이르러서도 끼니를 거를 정도로 청렴결백하였다. 키가 남보다 크고 얼굴 모양은 엄숙했으며, 씩씩하고 용감해 활을 잘 쏘아 세종과 문종이 아꼈다. 또한 학문에 뛰어나 절의파 학자로 알려졌으며, 무신이면서도 학문에 뛰어나 시조 3수가 전해진다. 숙종에 의해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과천의 민절서원, 홍주의 노운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5. 박팽년을 다룬 작품
* KBS 드라마 《사육신》 (2007년, 배우: 방성근)
*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2011년, 배우: 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