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조선)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문종은 조선의 제5대 왕으로, 세종의 장남으로 태어나 29년간 세자 자리에 있었다. 세종의 섭정을 수행하며 측우기 발명에 기여하고 훈민정음 창제에도 관여했다. 1450년 즉위 후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며, 언론 활성화, 역사 편찬, 병법 정비 등의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재위 2년 3개월 만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치세는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무너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슬하에 경혜공주, 단종 등을 두었으며, 현덕왕후, 휘빈 김씨, 순빈 봉씨 등 여러 왕비와 후궁을 두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14년 출생 - 김담
김담은 조선 세종, 문종, 세조 시대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월력 연구가로, 이순지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천문학과 역법 발전에 기여했으며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 편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청렴하고 근신한 성품으로 칭송받아 사후 문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1414년 출생 - 조석문
조석문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성종실록의 사신에게 천성이 요사스럽고 아첨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조효문, 조계문 형제와 민설의 딸을 어머니로 두고 안숭선과 채하정의 딸과 혼인했다. - 1452년 사망 - 황희
황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재상으로, 세종 시대에 영의정을 지내며 태평성대를 이끌었으나, 친인척 비리 옹호 논란도 있는 인물이다. - 1452년 사망 - 게미스토스 플레톤
게미스토스 플레톤은 동로마 제국의 철학자, 학자, 정치 사상가로서 플라톤 철학 부흥을 주도하며 르네상스 시대 서유럽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피렌체 공의회에서 플라톤 철학을 서구에 재소개했으며, 미스트라스에서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비잔티움 제국 개혁 사상을 제시했다. - 15세기 한국의 군주 - 성종 (조선)
성종은 조선의 제9대 국왕으로,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아들이며 예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친정 후 홍문관 설치, 경국대전 반포 등 조선의 통치 체제 확립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폐비 윤씨 사사 사건과 서얼 차별 강화는 비판받기도 한다. - 15세기 한국의 군주 - 세조 (조선)
세조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했다.
문종 (조선)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문종 (文宗) |
휘 | 이향 (李珦) |
자 | 휘지 (輝之) |
묘호 | 문종 (文宗) |
시호 | 공순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 (恭順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 |
능호 | 현릉 |
출생일 | 1414년 11월 15일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충녕대군 사저 |
사망일 | 1452년 6월 10일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
아버지 | 세종 |
어머니 | 소헌왕후 심씨 |
종교 | 유교 ( 성리학) |
재위 | |
즉위일 | 1450년 4월 8일 |
퇴위일 | 1452년 6월 10일 |
왕위 계승 | 조선 5대 국왕 |
이전 국왕 | 세종 |
다음 국왕 | 단종 |
왕세자 | |
책봉일 | 1421년 10월 27일 |
해제일 | 1450년 2월 22일 |
이전 왕세자 | 왕세자 도 (세종) |
다음 왕세자 | 왕세자 홍위 (단종) |
가족 | |
배우자 | 휘빈 김씨 (1427년 결혼, 1429년 폐위) 순빈 봉씨 (1429년 결혼, 1436년 폐위) 현덕왕후 권씨 (1437년 결혼, 1441년 사망) |
자녀 | 경혜공주 단종 경숙옹주 |
기타 정보 | |
묘 | 현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
연호 | 경태 (景泰) (1450년-1452년) |
존호 | 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 (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 |
명나라 시호 | 공순 (恭順) |
가문 | 전주 이씨 |
국왕 | 조선 |
재위 기간 | 1450년 4월 8일 - 1452년 6월 10일 |
즉위 장소 | 한성 동별궁 휘덕전 |
로마자 표기 | Munjong |
한자 표기 | 文宗 |
일본어 표기 | 문종 |
한국어 표기 | 문종 |
훈민정음 관련 정보 | |
훈민정음언해 | 훈민정음언해 |
2. 생애
이향(李珦)은 조선 시대 가장 오랫동안 세자 자리에 있었던 인물로, 무려 29년 동안 세자로 있었다.
1421년 1월, 세종은 여덟 살 된 아들 이향에게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교육을 받도록 명령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왕세자로 책봉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1442년부터 1450년 즉위할 때까지 이향은 세종이 여러 질병과 질환을 앓는 동안 섭정으로서 국정을 돌보았다.
그의 업적 대부분은 세자 시절 이루어졌다. 수표 발명의 공로는 주로 장영실에게 돌아가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지하수위 측정 방법을 찾아낸 것이 세자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향은 또한 한국의 토착 문자(오늘날의 훈민정음) 개발에도 기여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천문, 역학, 산술, 서도에 능했고, 순종적이며 판단이 신중했다. 왕세자 시절부터 진법을 편찬하는 등 군정에 관심을 가졌다.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자로 출생하여 1421년 7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14] 1429년(세종 11년) 가례를 올렸으나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는 폐위되었고,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도 폐위되었다. 이후 후궁이었던 승휘 권씨가 세자빈이 되었으나 1441년 단종을 낳은 지 하루만에 산후병으로 죽고 말았다.[14]
문종은 세자 시절 세자사(世子師) 하연을 스승으로 삼고 학문을 닦았으며,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15]할 정도로 천문학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16] 또한 한국의 토착 문자(오늘날의 Hangul) 개발에도 기여하였다.
1421년부터 1450년까지 29년간 왕세자로 지내는 동안, 아버지 세종의 정치를 보필하였다. 문신과 무신을 골고루 등용하였으며, 언관의 언론에 대해 관대한 정치를 폄으로써 언론을 활성화해 민심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1442년(세종 24년) 세종이 병상에 누워 국정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세종을 대신하여 8년간 대리청정을 하였다.[14] 1450년 음력 2월에 세종이 승하하자 왕으로 즉위하였다.
1450년 3월에 즉위하여 바로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냈고, 그해 음력 5월 명나라로부터 책봉 고명을 받아 정식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언론을 활성화하고 역사책을 편찬하였으며, 병법을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유연함과 강함을 병행하는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6품 이상까지 윤대를 허락하는 등 하급 관리들의 말도 빠짐없이 경청하는 열린 정책을 폈으며,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2] 문종은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 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왕세자 시절에 진법을 편찬했을 만큼 국방에도 관심이 많아서 병력 증대를 통해 병법의 정비와 국방의 안정을 꾀하려 하였다. 태종 때 만들었던 화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혹시나 있을 전쟁과 국방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또한 군대를 이전 12개에서 5개의 사(司)로 개편하였다.[2]
그러나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으로 치르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가 잠시 섭정을 맡았다. 결국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7세를 일기로 경복궁 천추전에서 승하하였다.
1450년, 이향(李珦)은 문종(文宗)으로 즉위하였고, 그의 치세는 조선 조정의 권력 불균형의 시작을 알렸다. 김비환은 문종 이전의 "왕권, 행정권, 간쟁권, 그리고 관외 유생들의 집단적 권위의 상호작용"이 헌법적으로 국가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종 재위 기간 동안 그 균형은 무너졌고, 이는 1452년 문종의 아들에 대한 쿠데타를 주도한 그의 동생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문종 재위 시대에는 경복궁 내 건물인 계조당이 철거되었다.[1] 이 건물은 문종이 세종의 아들 시절 국정을 처리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데 사용되었던 곳이다.[1]
2. 1. 세자 시절 및 즉위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자로 출생하여 1421년 7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14] 1429년(세종 11년) 가례를 올렸으나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는 폐위되었고,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도 폐위되었다. 이후 후궁이었던 승휘 권씨가 세자빈이 되었으나 1441년 단종을 낳은 지 하루만에 산후병으로 죽고 말았다.[14]문종은 세자 시절 세자사(世子師) 하연을 스승으로 삼고 학문을 닦았으며,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15]할 정도로 천문학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16] 또한 한국의 토착 문자(오늘날의 Hangul) 개발에도 기여하였다.
1421년부터 1450년까지 29년간 왕세자로 지내는 동안, 아버지 세종의 정치를 보필하였다. 문신과 무신을 골고루 등용하였으며, 언관의 언론에 대해 관대한 정치를 폄으로써 언론을 활성화해 민심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1442년(세종 24년) 세종이 병상에 누워 국정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세종을 대신하여 8년간 대리청정을 하였다.[14] 1450년 음력 2월에 세종이 승하하자 왕으로 즉위하였다.
2. 2. 재위 기간
1450년 3월에 즉위하여 바로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냈고, 그해 음력 5월 명나라로부터 책봉 고명을 받아 정식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언론을 활성화하고 역사책을 편찬하였으며, 병법을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유연함과 강함을 병행하는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6품 이상까지 윤대를 허락하는 등 하급 관리들의 말도 빠짐없이 경청하는 열린 정책을 폈으며,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2] 문종은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 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왕세자 시절에 진법을 편찬했을 만큼 국방에도 관심이 많아서 병력 증대를 통해 병법의 정비와 국방의 안정을 꾀하려 하였다. 태종 때 만들었던 화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혹시나 있을 전쟁과 국방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또한 군대를 이전 12개에서 5개의 사(司)로 개편하였다.[2]
그러나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으로 치르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가 잠시 섭정을 맡았다. 결국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7세를 일기로 경복궁 천추전에서 승하하였다.
1450년, 이향(李珦)은 문종(文宗)으로 즉위하였고, 그의 치세는 조선 조정의 권력 불균형의 시작을 알렸다. 김비환은 문종 이전의 "왕권, 행정권, 간쟁권, 그리고 관외 유생들의 집단적 권위의 상호작용"이 헌법적으로 국가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종 재위 기간 동안 그 균형은 무너졌고, 이는 1452년 문종의 아들에 대한 쿠데타를 주도한 그의 동생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문종 재위 시대에는 경복궁 내 건물인 계조당이 철거되었다.[1] 이 건물은 문종이 세종의 아들 시절 국정을 처리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데 사용되었던 곳이다.[1]
3. 능묘
문종은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한 현릉(顯陵)에 능이 조성되었다. 현덕왕후 권씨는 원래 소릉에 안장되었다가 계유정난 이후 1457년 추폐되어 재궁이 바닷가에 버려졌었고, 1512년 (중종 7년)에 현릉에 같이 묻히게 된다.
4. 가족 관계
구분 | 이름 | 본관 | 생몰년 | 부모 | 비고 | ||
---|---|---|---|---|---|---|---|
부 | 세종대왕 世宗大王 | 전주 | 1397년 - 1450년 | 태종대왕 太宗大王 원경왕후 민씨 元敬王后 閔氏 | 제4대 국왕 | ||
모 | 소헌왕후 심씨 昭憲王后 沈氏 | 청송 | 1395년 - 1446년 | 청천부원군 심온 靑川府院君 沈溫 삼한국대부인 안씨 三韓國大夫人 安氏 | |||
왕비 | 현덕왕후 권씨 顯德王后 權氏 | 안동 | 1418년 - 1441년 | 권전 權專 최씨 崔氏 | 경혜공주, 단종의 모친. 왕세자빈 시절 사망, 왕후로 추존. | ||
폐세자빈 | 휘빈 김씨 徽嬪 金氏 | 안동 | 1410년 - 1429년 | 김오문 金五文 정씨 鄭氏 | 세종의 명으로 폐출 | ||
폐세자빈 | 순빈 봉씨 純嬪 奉氏 | 하음 | 1414년 - 1436년 | 봉려 奉礪 이씨 慶州 李氏 | 세종의 명으로 폐출 | ||
빈 | 숙빈 홍씨 肅嬪 洪氏 | 남양 | 미상 | 홍심 洪深 파평 윤씨 坡平 尹氏 | 세종 13년(1431년) 간택 | ||
숙의 | 숙의 문씨 淑儀 文氏 | 남평 | 1426년 - 1508년 | 문민 文敏 안동 권씨 安東 權氏 | |||
소용 | 소용 유씨 昭容 柳氏 | 문화 | 미상 | 유상영 柳尚榮 안동 김씨 安東 金氏 | |||
소용 | 소용 권씨 昭容 權氏 | 안동 | 미상 | 권격 權格 경주 김씨 慶州 金氏 | |||
소용 | 소용 정씨 昭容 鄭氏 | 동래 | 미상 | 정갑손 鄭甲孫 강릉 김씨 江陵 金氏 | |||
소용 | 소용 윤씨 昭容 尹氏 | 파평 | 미상 | 윤희 尹熺 평산 신씨 平山 申氏 | 숙빈 홍씨의 외사촌 | ||
사칙 | 사칙 양씨 司則 楊氏 | 미상 | 미상 | 미상 | |||
궁인 | 상궁 장씨 尙宮 張氏 | 미상 | 미상 | 미상 | |||
자녀 | |||||||
이름 | 생몰년 | 생모 | 배우자 | ||||
첫째 딸(요절) | 1432년 - 1433년 | 현덕왕후 | 없음 | ||||
경혜공주 敬惠公主 | 1436년 - 1473년 | 현덕왕후 | 영양위 정종 寧陽尉 鄭悰 | ||||
단종 端宗 | 1441년 - 1457년 | 현덕왕후 | 정순왕후 송씨 定順王后 宋氏 | ||||
넷째 딸(요절) | 1441년 - 1444년 | 숙빈 홍씨 | 없음 | ||||
경숙옹주 敬淑翁主 | 1439년 - 미상 | 사칙 양씨 | 반성위 강자순 班城尉 姜子順 | ||||
다섯째 딸(요절) | 1450년 - 1451년 | 사칙 양씨 | 없음 | ||||
둘째 아들(요절) | 미상 | 소용 정씨 | 없음 | ||||
셋째 아들(요절) | 미상 | 상궁 장씨 | 없음 |
4. 1. 왕비
문종은 세 번 혼인하였다. 첫 번째 부인은 휘빈 김씨로, 김오문의 딸이었으나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1429년 폐출되었다. 두 번째 부인은 순빈 봉씨로, 봉려의 딸이었으나 궁녀 소쌍과의 동성애 스캔들로 인해 1436년 폐출되었다.세 번째 부인은 현덕왕후 권씨로,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이다. 본래 후궁이었으나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다. 1441년 단종을 낳은 직후 산후병으로 사망하였고, 문종 즉위 후 왕후로 추존되었다. 현덕왕후는 안동 권씨이다.
이외에도 문종에게는 여러 후궁이 있었다. 숙빈 홍씨는 홍심의 딸로, 1444년에 옹주를 낳았으나 옹주는 곧 사망하였다.[4] 사칙 양씨는 경숙옹주 (문종)와 또 다른 옹주를 낳았는데, 이 옹주는 1451년에 사망하였다.[5] 숙의 문씨 (문종)는 문민의 딸로, 1426년에 태어나 1508년까지 살았다.[6] 승휘 정씨는 왕자를 낳았으나 요절하였고[7][8], 궁인 장씨 역시 왕자를 낳았으나 일찍 사망하였다.[8]
4. 2. 폐세자빈
문종은 세 번 혼인하였다. 세자빈 휘빈 김씨는 1427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1429년에 폐출되었다.[17] 휘빈 김씨는 김오문의 딸로, 1410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문종 후궁의 신발을 태워 재를 술에 타서 먹게 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폐출하였다.[17]순빈 봉씨는 1429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1436년에 폐출되었다.[18] 순빈 봉씨는 봉려의 딸로, 1414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궁녀 소쌍과 동성애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폐출되었다.
1437년, 안동 권씨 가문의 권씨 부인이 세 번째 세자빈이 되었다. 그녀는 현덕왕후로, 본래 후궁이었으나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다. 권씨 부인은 단종을 낳은 직후인 1441년에 사망했고, 남편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되었다.
4. 3. 후궁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실 왕비로는 휘빈 김씨, 순빈 봉씨, 현덕왕후가 있었고, 후궁으로는 숙빈 홍씨, 숙의 문씨, 소용 유씨, 소용 권씨, 소용 정씨, 소용 윤씨, 사칙 양씨, 상궁 장씨가 있었다.현덕왕후는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다. 숙빈 홍씨는 1441년에 옹주를 낳았으나 1444년에 사망했다.[4] 사칙 양씨는 경숙옹주와 1450년에 태어나 이듬해 사망한 옹주를 낳았다.[5] 숙의 문씨는 문민의 딸로 1426년에 태어나 1508년에 사망했다.[6] 승휘 정씨는 왕자를 낳았으나, 왕자는 유년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8][9] 궁인 장씨 또한 왕자를 낳았다.[8]
작호 | 본관 | 생몰년 | 부모 | 비고 | |
---|---|---|---|---|---|
빈 | 숙빈 홍씨 肅嬪 洪氏 | 남양 | 미상 | 홍심 洪深 파평 윤씨 坡平 尹氏 | 세종 13년(1431년) 간택 |
숙의 | 숙의 문씨 淑儀 文氏 | 남평 | 1426년 - 1508년 | 문민 文敏 안동 권씨 安東 權氏 | |
소용 | 소용 유씨 昭容 柳氏 | 문화 | 미상 | 유상영 柳尚榮 안동 김씨 安東 金氏 | |
소용 | 소용 권씨 昭容 權氏 | 안동 | 미상 | 권격 權格 경주 김씨 慶州 金氏 | |
소용 | 소용 정씨 昭容 鄭氏 | 동래 | 미상 | 정갑손 鄭甲孫 강릉 김씨 江陵 金氏 | |
소용 | 소용 윤씨 昭容 尹氏[19] | 파평 | 미상 | 윤희 尹熺 평산 신씨 平山 申氏 | 숙빈 홍씨의 외사촌 |
사칙 | 사칙 양씨 司則 楊氏 | 미상 | 미상 | 미상 | |
궁인 | 상궁 장씨 尙宮 張氏 | 미상 | 미상 | 미상 |
4. 4. 왕자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현덕왕후 권씨와의 사이에서 첫째 딸(1432년–1433년), 경혜공주(1436년 – 1473년 12월 30일), 왕세자 이홍위(1441년 8월 9일 – 1457년 11월 7일)를 두었다. 숙빈 홍씨(남양 홍씨)에게서 넷째 딸(1441년–1444년)을 얻었다. 사칙 양씨에게서는 경숙옹주(1439년–1482년)와 다섯째 딸(1450년–1451년)을 두었다.소용 정씨(동래 정씨)에게서는 둘째 아들을, 상궁 장씨에게서는 셋째 아들을 얻었다.[20][21]
문종의 정실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는 폐위되었으며, 이들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현덕왕후 권씨는 세자빈 재위 중 산후병으로 사망하였으나, 사후 왕후로 추증되었다.
4. 5. 왕녀
문종은 현덕왕후에게서 경혜공주를, 사칙 양씨에게서 경숙옹주를 얻었다.[22][23] 이 외에도 숙빈 홍씨에게서 얻은 옹주[24], 양씨에게서 얻은 또 다른 옹주[25]가 있었으나 요절하였다.작호 | 생몰년 | 생모 | 배우자 | |
---|---|---|---|---|
1 | ▨▨공주 ▨▨公主 [22] | 미상 - 1433년 | 현덕왕후 권씨 | |
2 | 경혜공주 敬惠公主 | 1436년 - 1473년 | 현덕왕후 | 영양위 정종 寧陽尉 鄭悰 |
3 | 경숙옹주 敬淑翁主 | 1439년 - 미상 [23] | 사칙 양씨 | 반성위 강자순 班城尉 姜子順 |
4 | ▨▨옹주 ▨▨翁主 [24] | 1441년 - 1444년 | 숙빈 홍씨(남양 홍씨) | |
5 | ▨▨옹주 ▨▨翁主 [25] | 1450년 - 1451년 | 사칙 양씨 |
5. 기타
5. 1. 문종의 어진에 관한 일화
병자호란이 끝난 1636년(인조 14년)의 일이었다. 선원전에서 발견된 어떤 왕의 초상화를 두고, 인종이라고 주장하는 대신들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신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초상화 속의 왕은 길고 짙은 턱수염이 묘사되어 있는, 풍채가 크고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대신이 그 초상화의 뒷면에 있는 배접을 뜯어보니 '문종대왕어진(文宗大王御眞)'이라 적혀 있었다 한다.6. 문종이 등장하는 작품
- 1983년 MBC 드라마 《추동궁의 왕》에서 황치훈이 문종 역을 맡았다.
-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 전무송이 문종 역을 맡았다.
-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오은찬과 이상엽이 문종 역을 맡았다.
- 2008년 영화 《신기전》에서 박정철이 문종 역을 맡았다.[11]
- 2011년 KBS2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정동환이 문종 역을 맡았다.
- 2011년 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선우재덕이 문종 역을 맡았다.
- 2013년 영화 《관상》에서 김태우가 문종 역을 맡았다.
- 2016년 KBS1 드라마 《장영실》에서 한정우와 최승훈이 문종 역을 맡았다.
- 무지개한국어 - 김병라 저, 헤네무 출판사, 2011년 ISBN 9788965743286
- 亥時の蜃楼한국어 - 윤이수 저, 네이버 웹소설, 2015-2016년[10] 헤네무 출판사, 2016년, 전5권 ISBN 9788965745662(제1권)
- 신기전(2008년, 배역: 박정철)[11]
- 관상(2013년, 배역: 김태우)
-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년, 배역: 박성훈)
- 파천무(KBS, 1980년, 일본 미공개, 배역: 백윤식)[12]
- 한명회(KBS, 1994년, 배역: 송승환)
- 왕과 비(KBS, 1998-2000년, 배역: 전무송)
- 대왕세종(KBS, 2008년, 배역: 이상엽, 강빛(아역))
- 왕의 여자(KBS, 2011년, 배역: 정동환)
- 인수대비(JTBC, 2012년, 배역: 선우재덕)
- 장영실(KBS, 2016년, 배역: 한정우, 최승훈(아역))
6. 1. 드라마
1980년 KBS 드라마 《파천무》에서 배우 백윤식이 문종 역을 연기했다.[12] 1983년 MBC 드라마 《추동궁의 왕》에서는 황치훈이, 1984년 MBC 드라마 《설중매》에서는 임정하가 문종 역을 맡았다. 1990년에는 KBS 드라마 《파천무》에서 홍승일이 문종을 연기했다. 1994년 KBS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송승환이 문종 역을 맡았다.[12]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전무송이 문종을 연기했다.[12]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오은찬과 이상엽이 각각 아역과 성인 문종 역을 맡았다.[12]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신기전》에서는 박정철이 문종 역으로 출연했다.[11] 2011년 KBS2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정동환이, 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는 선우재덕이 문종을 연기했다. 2013년 영화 《관상》에서는 김태우가 문종 역을 맡았다.[11] 2016년 KBS1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한정우와 최승훈이 각각 성인과 아역 문종을 연기했다.[12] 2018년 TV조선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는 송재희가 문종 역을 맡았다. 2019년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박성훈이 문종을 연기했다.
소설로는 김병라의 《무지개》(헤네무, 2011년, ISBN 9788965743286)와 윤이수의 《亥時の蜃楼》(네이버 웹소설, 2015-2016년, 헤네무, 2016년, 전5권 ISBN 9788965745662)가 있다.[10]
6. 2. 영화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신기전》에서 배우 박정철이 문종 역을 맡았다.[11] 2013년 영화 《관상》에서는 김태우가 문종 역을 연기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배우 박성훈이 문종을 연기했다.6. 3. 소설
참조
[1]
웹사이트
Restored crown prince's hall opened for first time in 110 years
https://www.korea.ne[...]
2024-01-19
[2]
웹사이트
https://encykorea.ak[...]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24-08-14
[3]
웹사이트
文宗
https://kotobank.jp/[...]
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2022-07-02
[4]
문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6권 세종 26년 12월 4일 기유 1회차
[5]
문서
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8월 12일 정축 1회차
[6]
웹사이트
숙의문씨 묘[淑儀文氏墓]
https://terms.naver.[...]
2019-03-30
[7]
문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 3월 15일 기묘 3회차
[8]
문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6월 6일 임인 2회차
[9]
문서
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9월 1일 경인 3회차
[10]
뉴스
첫사랑 실패 뒤 소설 시작, 박보검 3부작 만들고 싶다
https://news.joins.c[...]
중앙일보
2016-11-03
[11]
웹사이트
신기전 출연&스텝
https://movie.daum.n[...]
2019-03-30
[12]
뉴스
일요사극 「파천무」배역결정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0-04-02
[13]
웹사이트
훈민정음언해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https://ko.wikisourc[...]
2024-06-21
[14]
웹사이트
세종 23년(1441) 7월 23일 1번째 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원손을 낳아 대사면령을 내리다. 세종 23년(1441) 7월 24일 1번째 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졸하여 조례(弔禮)를 행하다
http://sillok.histor[...]
[15]
웹사이트
세종실록 세종23년(1441년) 4월을미(양력 5월 19일),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적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라는 측우기에 관한 첫 기술이 나옴.
http://sillok.histor[...]
[16]
뉴스
정부가 1957년 2월 제19차 국무회의에서 5월19일을 발명의 날로 정한 것은 문종이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기술이 음력 4월29일(양력 5월19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유래함.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57-02-08
[17]
서적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7월 20일 (갑자) 근정전에서 임금이 휘빈 김씨의 폐빈에 대해 하교하다
세종실록
[18]
서적
세종실록 75권, 세종 18년(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10월 26일 (무자) 두 번째 세자빈 봉씨를 폐출시키다
세종실록
[19]
서적
파평윤씨세보
[20]
문서
소헌왕후 영릉 지문
[21]
문서
소헌왕후 영릉 지문
[22]
서적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3월 3일 (병진) 동궁의 딸이 죽었다. 현덕왕후(권 승휘)의 몸에서 낳았는데 예조로 하여금 염장(斂葬)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23]
문서
1482년 이전
[24]
서적
세종실록 106권, 세종 26년(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12월 4일 (기유) 승휘 홍씨의 딸이 죽으니, 나이 4살이었다.
세종실록
[25]
서적
문종실록 9권, 문종 1년(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8월 12일 (정축) 왕녀가 졸(卒)하였다. 나이는 2세인데 궁인 양씨의 소출이었다.
문종실록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