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 (용릉후)
1. 개요
유인(劉仁)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용릉후(舂陵侯) 유웅거(劉熊渠)의 아들이다. 원강 원년(기원전 65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릉후에 봉해졌으며, 봉읍의 환경을 이유로 원제의 허락을 받아 초원 4년(기원전 45년)에 남양군 채양현 백수향으로 봉국을 옮겼다. 시호는 효(孝) 또는 고(考)이며, 아들 유창(劉昌)이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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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왕자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왕자후 -
유내시 (동양경후)
유내시는 아버지 유종의 뒤를 이어 동양경후 작위를 받았으며, 시호는 경, 아들은 유봉친이다.
2. 생애
원강 원년(기원전 65년), 아버지 유웅거의 뒤를 이어 용릉후(舂陵侯)에 봉해졌다.
용릉후국(지금의 후난성 닝위안현 근처)은 지대가 낮고 습하고, 또 산림에 독기가 있었기 때문에, 유인은 봉읍을 줄여서라도 서울 쪽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원제는 이를 허락하여 초원 4년(기원전 45년)에 남양군 채양현(지금의 후베이성 짜오양시 근처)의 백수향(白水鄕)으로 봉국을 옮기고 이름은 용릉을 계속 쓰게 해 주었고, 유인은 종제 유회(劉回)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이주하였다.
시호를 효 또는 고(考)라 하였고, 아들 유창이 작위를 이었다.
2.2. 봉국 이전
원제 원강 원년(기원전 65년), 아버지 유웅거의 뒤를 이어 용릉후(舂陵侯)에 봉해졌다.
용릉후국(지금의 후난성 닝위안현 근처)은 지대가 낮고 습하며, 산림에 독기가 있었다. 유인은 봉읍을 줄여서라도 서울 쪽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고, 원제는 이를 허락하였다. 초원 4년(기원전 45년)에 남양군 채양현(지금의 후베이성 짜오양시 근처)의 백수향(白水鄕)으로 봉국을 옮기고 이름은 용릉을 계속 쓰게 해 주었다. 유인은 종제 유회(劉回)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이주하였다.
2.3. 사후
시호를 효 또는 고(考)라 하였고, 아들 유창이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