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웅거 (용릉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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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웅거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용릉후 유매의 아들이자 용릉후이다. 원수 3년(기원전 120년)에 아버지 유매의 뒤를 이어 용릉후에 봉해졌으며, 용릉대후 56년(기원전 65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대(戴)라 하였다. 아들 유인이 작위를 계승했고, 다른 아들 유리에게서 한 경시제가 나왔다.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웅거 (용릉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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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수 3년(기원전 120년), 아버지 유매의 뒤를 이어 용릉(舂陵侯)에 봉해졌다.

용릉대후 56년(기원전 65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대(戴)라 하였고, 아들 유인이 작위를 이었다. 다른 아들 유리의 자손에서 한 경시제가 나왔다.

3. 가계

유웅거의 가계는 전한의 제후 가문으로, 아버지인 용릉절후 유매로부터 시작된다. 유웅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릉후 작위를 세습하였다. 그에게는 유인과 유리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이들을 통해 가계가 이어졌다. 특히 아들 유리의 자손 중에는 훗날 경시제가 되는 인물이 나왔다.

3.1. 가계도

* 부친: 용릉절후 유매
본인: 용릉대후 유웅거
* 아들: 용릉효후(고후) 유인
*** 아들: 유리 劉利중국어

4. 출전

* 반고,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