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프 데어발
1. 개요
유프 데어발은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활동했으며, 알레마니아 아헨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DFB-포칼 준우승을 경험했다. 1954년 서독 국가대표팀 선수로 2경기에 출전했다. 감독으로서 FC 빌-비엔, FC 샤프하우젠 등을 거쳐 1970년 서독 국가대표팀 보조 코치를 역임했고, 1978년 감독으로 부임하여 UEFA 유로 1980 우승을 이끌었다. 1982년 FIFA 월드컵 준우승, UEFA 유로 1984 조별 예선 탈락 후 갈라타사라이 감독을 맡아 터키 쉬페르리그 우승 등을 달성했으며, 터키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사망했다.
| 이름 | 요제프 "유프" 데어발 |
|---|---|
| 로마자 표기 | Josef "Jupp" Derwall |
| 별칭 | 호이프틀링 질버로케 |
| 출생일 | 1927년 3월 10일 |
| 출생지 | 뷔르젤렌, 바이마르 공화국 |
| 사망일 | 2007년 6월 26일 |
| 사망지 | 장크트잉베르트,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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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공격수 |
|---|---|
| 유소년 클럽 | 1938–1943: 레나니아 뷔르젤렌 |
| 클럽 | 1943–1945: 레나니아 뷔르젤렌 1945–1946: BV 클로펜부르크 1946–1949: 레나니아 뷔르젤렌 1949–1953: 알레마니아 아헨 (109경기 41골) 1953–1959: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10경기 47골) 1959–1961: FC 빌-비엔 (40경기 26골) 1961–1962: FC 샤프하우젠 (24경기 8골) |
| 국가대표 | 1954: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2경기 0골) |
| 클럽 | 1959–1961: FC 빌-비엔 1961–1962: FC 샤프하우젠 1962–1963: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65: 1. FC 자르브뤼켄 1970–1978: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1978–1984: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1984–1987: 갈라타사라이 |
|---|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1980: 우승 |
|---|---|
| FIFA 월드컵 | 1982: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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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빌-비엔의 축구 선수 -
박광룡
박광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AFC 챌린지컵 우승과 아시안 게임 은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활약했다. -
FC 빌-비엔의 축구 선수 -
안톤 온드루시
안톤 온드루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슬로반 브라티슬라바에서 주로 활동하며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1976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스위스에서 축구 에이전트로 활동한다. -
1. FC 자르브뤼켄의 축구 감독 -
오토 레하겔
오토 레하겔은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며, 선수 시절 수비수로 활약했고, SV 베르더 브레멘,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등을 지도하며 UEFA 유로 2004 우승을 이끌었다. -
1. FC 자르브뤼켄의 축구 감독 -
헤리베르트 베버
헤리베르트 베버는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참가했고, 은퇴 후에는 잘츠부르크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
UEFA 유로 1980 참가 감독 -
엔초 베아르초트
엔초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프로 선수 시절 세리에 A에서 251경기에 출전했고, 감독으로서는 '언론 침묵' 전략과 함께 다양한 상과 훈장을 수상하며 2011년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UEFA 유로 1980 참가 감독 -
기 티
기 티는 벨기에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벨기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 준우승,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1954년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에 의해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2경기에 출전했지만, 1954년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이 이끄는 팀이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데어발은 서독 국가대표팀에 두 차례 차출되었다.
2.1. 소속 클럽
데어발은 1938년 레나니아 뷔르젤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공격수였다. 1949년 알레마니아 아헨으로 이적했고, 1953년에는 알레마니아 아헨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결승전에서 로트-바이스 에센에게 1-2로 패했는데, 데어발은 이 경기에서 1골을 넣었다.
1953년에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이적했고, 1958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때 뒤셀도르프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결승전에서 3-4로 패했다. 그는 오버리가 서부 지역에서 알레마니아 아헨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활약했다.
| 기간 | 클럽 |
|---|---|
| 1938년 - 1949년 | 레나니아 뷔르젤렌 |
| 1949년 - 1953년 | 알레마니아 아헨 |
| 1953년 - 1959년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3. 감독 경력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스위스의 FC 빌-비엔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고, 1961년부터 1962년까지 FC 샤프하우젠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1962년부터 1963년까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감독을 맡아 1962년에 DFB-포칼 준우승을 이끌었다. 1965년에는 1. FC 자르브뤼켄 감독을 역임했다.
1970년 헬무트 쇤 감독에 의해 우도 라테크와 함께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보조 코치로 임명되었으나, 1972년 하계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탈락했다. 1978년 FIFA 월드컵 이후 쇤 감독이 사임하면서 서독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UEFA 유로 1980에서 우승했고,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UEFA 유로 1984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유로 1984에서 1차 리그 탈락으로 비난을 받고 독일을 떠나 터키로 건너가 갈라타사라이 감독을 맡았다. 파티흐 테림 등 훗날 터키 대표팀과 국내 클럽 감독을 역임할 선수들을 지도하며 1990년대 이후 터키 축구 약진에 영향을 미쳤다.
3.1. 초기 경력
유프 데어발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스위스의 축구 클럽인 FC 빌-비엔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1961년부터 1962년까지 FC 샤프하우젠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선수 생활을 완전히 은퇴한 후에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의 감독을 맡았다. 1962년에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이끌고 DFB-포칼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1. FC 뉘른베르크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1-2로 패배했다. 이후 1965년에는 1. FC 자르브뤼켄의 감독을 맡아 1964-65 레기오날리가 남서부에서 우승하며 팀을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다.
데어발은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자를란트 지역 협회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3.2. 서독 국가대표팀
1970년, 데어발은 헬무트 쇤 감독에 의해 우도 라테크와 함께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의 보조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서독은 1972년 하계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978년 FIFA 월드컵 이후 헬무트 쇤 감독이 사임하면서 데어발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서독은 UEFA 유로 1980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대회 득점왕에 오른 클라우스 알로프스 선수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은 알제리와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2차 리그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라고 불릴 정도로 승부 조작 의혹을 받았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전 경기에서는 1-3으로 지고 있다가 3-3 동점을 만든 후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서독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1-3으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다.
서독은 UEFA 유로 1984에 참가했지만 조별 예선에서 1승 1무 1패로 탈락하면서, 데어발은 여론의 압박으로 사퇴했다.
3.3. 갈라타사라이
데어발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터키의 축구 클럽인 갈라타사라이 감독을 역임하면서 터키 쉬페르리그 1회 우승, 튀르키예 쿠파스 1회 우승을 경험했다. 당시 유럽에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던 터키 축구에 현대 서유럽식 훈련 기법과 전술을 도입하여 터키 축구의 부흥을 이끈 혁명가로 평가받는다.
유로 84에서 1차 리그 탈락으로 독일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은 데어발은 여러 분데스리가 팀의 감독 제안을 거절하고 갈라타사라이 감독직을 수락했다. 파티흐 테림, 무스타파 데니즐리 등 훗날 터키 대표팀과 국내 클럽 감독을 역임하게 될 선수들을 지도하며 1990년대 이후 터키 축구의 약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갈라타사라이 감독 은퇴 이후, 데어발은 독일과 터키 양국 간의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앙카라 소재 하제테페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독일 정부로부터는 독일 공로 훈장 1등급 (Bundesverdienstkreuz)을 수여받았다. 갈라타사라이는 데어발이 사망한 이후 훈련장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