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초 베아르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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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초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프로 고리치아, 인테르나치오날레, 카타니아, 토리노에서 활약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1회 출전했다. 감독으로서는 AC 프라토와 이탈리아 U-23 대표팀을 거쳐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전술적 역량과 선수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지도 스타일로 평가받았으며, 2002년에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 기술부 장을 역임했다.

엔초 베아르초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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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르초트 (1975년경)
본명엔초 베아르초트
출생일1927년 9월 26일
출생지아이엘로델프리울리, 이탈리아
사망일2010년 12월 21일
사망지밀라노, 이탈리아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선수 경력
1946–1948프로 고리치아 (39경기, 2골)
1948–1951인테르나치오날레 (19경기, 0골)
1951–1954카타니아 (95경기, 5골)
1954–1956토리노 (65경기, 1골)
1956–1957인테르나치오날레 (27경기, 0골)
1957–1964토리노 (164경기, 7골)
총 출장 및 득점409경기, 15골
국가대표 경력
1955이탈리아 (1경기, 0골)
감독 경력
1964–1967토리노 (유소년)
1968–1969프라토
1969–1975이탈리아 U-23
1975–1986이탈리아
수상
훈장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대십자급
발음
로마자 표기'Enzo Bearzot'
IPA/ˈɛntso bearˈtsɔt, -ˈdzɔt/
기타
"엔초 베아르초트" 상레스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최고의 이탈리아 감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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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1958-59 시즌 토리노 소속 베아르초트
1958-59 시즌 토리노 소속 베아르초트

베아르초트는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주 프리울리권의 우디네 도 아이엘로 델 프리울리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은행원이었고, 우디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선수 시절,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251경기에 출전했고,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번 차출되었다.

2.1. 클럽 경력

1958-59 시즌 토리노 소속 베아르초트
1958-59 시즌 토리노 소속 베아르초트

엔초 베아르초트는 1946년에 프로 고리치아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고, 1948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 3년 동안 흑청 군단(Nerazzurri)에서 활약한 후, 시칠리아로 둥지를 옮겨 카타니아에서 3년을 더 보냈다.

1954년,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부터 재건 중이던 토리노로 이적했다. 그는 2년 동안 주전 선수로 65번의 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1956년,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복귀해 27번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마지막으로 출전한 경기는 1957년 6월 9일, 2-3으로 패한 볼로냐와의 경기였다. 이듬해, 그는 토리노로 복귀했다. 토리노에 복귀한 베아르초트는 밤색 군단(Granata)의 경기에 164번 나서 7골을 기록했고, 1964년에 37세의 나이로 은퇴하여 감독일을 시작했다.

현역 시절,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251번의 경기에 출전했다.

베아르초트의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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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리그경기
1946-1948 프로 고리치아
1948-1951 인테르나치오날레세리에 A
1951-1954 카타니아
1954-1956 토리노세리에 A651
1956-1957 인테르나치오날레세리에 A270
1957-1964 토리노세리에 A1647
총계세리에 A2568

2.2. 국가대표 경력

엔초 베아르초트는 선수 시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955년 11월 27일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단 한 경기를 뛰었다.

3. 감독 경력

1964년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베아르초트는 토리노의 수석 코치로 네레오 로코와 조반 바티스타 파브리 감독을 보좌했다. 이후 세리에 C프라토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 활동하며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을 보좌했다. 서독 월드컵 이후 풀비오 베르나르디니 감독을 보좌하다 1975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4위, UEFA 유로 1980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초반 부진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자 언론 침묵(silenzio stampa)을 선언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브라질꺾고 준결승에 진출, 폴란드결승전에서 서독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 FIFA 월드컵 우승 후 귀국행 비행기에서 디노 초프, 프란코 카우시오, 산드로 페르티니 이탈리아 대통령과 함께 스코포네 카드 놀이를 하는 엔초 베아르초트(오른쪽)
1982년 FIFA 월드컵 우승 후 귀국행 비행기에서 디노 초프, 프란코 카우시오, 산드로 페르티니 이탈리아 대통령과 함께 스코포네 카드 놀이를 하는 엔초 베아르초트(오른쪽)


그러나 UEFA 유로 1984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고, 1986년 FIFA 월드컵 16강에서 프랑스에 패한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982년 월드컵 우승 멤버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총 104경기 동안 지휘하여 역대 최다 경기 지휘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2002년에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 기술부(Settore Tecnico)의 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5년에 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3.1. 초기 경력

현역 은퇴 후, 베아르초트는 토리노 FC 수석 코치로서 네레오 로코와 조반 바티스타 파브리 감독을 보좌했다. 그는 토스카나 주로 둥지를 옮겨 세리에 C프라토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도자로서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베아르초트는 구단 지도 활동을 오래 이어가지 않았고,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U-23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1974년 월드컵 당시에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을 보좌했다. 서독에서 열린 월드컵이 끝난 후, 베아르초트는 풀비오 베르나르디니를 보좌하게 되었고,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1975년에 물러나면서 정감독을 맡게 되었다. 베아르초트는 1978년 월드컵에서 4위의 성과를 거두었다. 2년 후, 이탈리아 안방에서 열린 유로 1980도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3.2.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현역 은퇴 후, 베아르초트는 토리노 수석 코치로서 네레오 로코와 조반 바티스타 파브리 감독을 보좌했다. 그는 토스카나 주로 둥지를 옮겨 세리에 C프라토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도자로서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베아르초트는 구단 지도 활동을 오래 이어가지 않았고,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U-23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1974년 월드컵 당시에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을 보좌했다. 서독에서 열린 월드컵이 끝난 후, 베아르초트는 풀비오 베르나르디니를 보좌하게 되었고,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1975년에 물러나면서 정감독을 맡게 되었다. 베아르초트는 1978년 월드컵에서 4위의 성과를 거두었다. 2년 후, 이탈리아 안방에서 열린 유로 1980도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982년 월드컵 우승 후 귀국행 비행기에서 디노 초프, 프란코 카우시오, 산드로 페르티니 이탈리아 대통령과 함께 스코포네 카드 놀이를 하는 엔초 베아르초트(오른쪽)
1982년 월드컵 우승 후 귀국행 비행기에서 디노 초프, 프란코 카우시오, 산드로 페르티니 이탈리아 대통령과 함께 스코포네 카드 놀이를 하는 엔초 베아르초트(오른쪽)


1982년 월드컵에서 1차 조별 리그 3경기를 부진하게 시작하면서, 이탈리아 언론의 들끓는 비판에 베아르초트는 소위 언론 침묵(silenzio stampa)로 돌파를 택했다. 그 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반등에 성공해 2차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명경기 끝에 연파하고 준결승전에 안착했다. 이어, 파죽지세로 준결승전에서 폴란드를, 결승전에서 서독을 꺾고 1938년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유로 1984 본선행에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뒤이어 198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완패로 탈락함에 따라, 베아르초트 감독은 사표를 제출했다. 베아르초트는 말년의 대회에서 1982년 월드컵 우승 주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맹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들 중 몇 명은 1986년에 노쇠하여 기량이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경기 지휘 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총 104번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3.3. 이탈리아 축구 연맹 기술부

현역 은퇴 후, 베아르초트는 토리노에서 네레오 로코와 조반 바티스타 파브리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를 맡았다. 이후 세리에 C프라토 감독으로 취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베아르초트는 구단 감독 생활을 오래 하지 않고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U-23 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 서독 월드컵 이후 풀비오 베르나르디니의 수석 코치를 거쳐 1975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베아르초트는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4위, UEFA 유로 1980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초반 3경기 부진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자, 베아르초트는 언론 침묵(silenzio stampa)을 선언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브라질꺾고 준결승에 진출, 폴란드서독을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1938년 이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UEFA 유로 1984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86년 FIFA 월드컵 16강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후 베아르초트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982년 월드컵 우승 멤버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비판받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1986년에 기량이 저하된 상태였다.

베아르초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총 104경기 동안 지휘하여 역대 최다 경기 지휘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2002년, 베아르초트는 오랜 공백을 깨고 이탈리아 축구 연맹 기술부(Settore Tecnico)의 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5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4. 감독 스타일

엔초 베아르초트는 전술적 통찰력이 뛰어나고, 꼼꼼하며, 유연한 전략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경기 전 상대를 면밀히 연구하고, 선수단에 맞는 맞춤형 전술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상대에 따라 다양한 전술과 포메이션을 활용했지만, 선수들에게 특정 플레이를 강요하기보다는 개인의 역량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했다.

1980년 인터뷰 중인 오마르 시보리와 베아르초트(오른쪽)
1980년 인터뷰 중인 오마르 시보리와 베아르초트(오른쪽)


베아르초트는 선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동기를 부여하여 단결된 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능숙했다.

4.1. 1978년 월드컵

베아르초트는 1978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그는 선수들의 개인 역량을 극대화하는 매력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다. 파올로 로시, 로베르토 베테가, 프란코 카우시오로 구성된 공격진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교란했다.

4.2. 1982년 월드컵

베아르초트는 1982년 월드컵에서 유동적인 4-3-3 배치 형태를 기반으로 경기 도중 4-4-2, 5-2-3, 혹은 3-5-2로 수시로 배치를 변경했다. 4-3-3 배치 형태에서 베아르초트는 주로 2명의 창의적인 측면 공격수(주로 브루노 콘티프란체스코 그라치아니, 이 중 그라치아니는 후방 스트라이커로도 배치되었다)와 정면의 중앙 공격수(주로 파올로 로시가 맡음)를 배치했고, 바로 뒤에 플레이메이커(주로 잔카를로 안토뇨니)를 배치했다. 또한, 2명의 거친 견제에 능한 전방위 미드필더(주로 마르코 타르델리가브리엘레 오리알리나 잔피에로 마리니 - 이 중 오리알리와 마리니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고, 타르델리는 안쪽 측면 미드필더(mezzala)를 맡았다)가 배치되었다. 후방의 수비로는 최후방 수비수(주로 가에타노 시레아)를 골키퍼 바로 앞에 배치해 수비와 공격 전개를 맡았고, 3명의 대인 수비수나 2명의 측면 수비수, 그리고 중앙 수비수 혹은 저지자를 배치했다. 그의 선수단은 혼합 영역(zona mista) 체제[혹은 "이탈리아의 경기 방식"(Gioco all'Italiana]에 따라 경기를 전개해 빗장 전법(catenaccio)를 비롯해 지역 방어대인 방어를 혼합했다.

이탈리아는 브라질과의 2차 조별 리그 경기에서 베아르초트의 전술적 역량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이탈리아는 배치 형태를 바꾸어 브라질 중원을 가두고 경기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도록 견제하며 경기를 이탈리아 편으로 끌어들였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안토뇨니가 미드필더에서 빠지면서 이탈리아의 배치 형태를 5-2-3으로 변경해 클라우디오 젠틸레를 추가적 대인 방어 중앙 수비수로 배치해 좌측 수비수 안토니오 카브리니를 도와 서독의 측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피에르 리트바스키를 막도록 특명을 내렸고, 카브리니는 서독의 우측 수비수 만프레트 칼츠의 쇄도를 막았다. 이탈리아의 나머지 중앙 수비 2명인 풀비오 콜로바티주세페 베르고미는 측면 공격수 칼-하인츠 루메니게와 중앙 공격수 클라우스 피셔를 맡았고, 시레아는 최후방에서 공격수를 고립시키거나 중원으로 치고 올라가 공을 회수하고 공격을 전개하여 전방으로 경기를 밀고 올라가게 만들었다.

베아르초트는 선수단의 전술적 유연성에 힘입어 경기 내내 위치를 바꾸어 상대를 교란했고, 선수단은 상대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선수단은 수비적 강점을 통해 선수들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공을 회수했다. 또한,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어, 공을 회수한 직후 빠르고 잘 짜인 역습으로 허를 찔렀고, 공을 쥐면서 점유율을 높여 체력을 보존하기도 했다.

1982년 월드컵 스페인 대회에서는 1차 리그에서 고전하면서 이탈리아 언론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베아르초트는 침묵을 지켰다. 그 후 이탈리아 대표팀은 다시 회복하여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결승전에서도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서독을 3-1로 꺾고 44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주장 디노 초프와 당시 산드로 페르티니 대통령 등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모습은 이탈리아 축구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5. 사생활과 최후

베아르초트는 루이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글라우코와 딸 친차를 두었다.

베아르초트는 비토리오 포초의 사망 42주기인 2010년 12월 21일 밀라노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그는 파데르노 다다의 가족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6.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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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비고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1982
Allenatore dell'anno이탈리아어1982
유럽 올해의 감독(제프 헤어베어거 상)1982
Panchina d'Oro이탈리아어 공로상1992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2011사후 헌액
월드 사커 역대 최고 감독 24위2013

*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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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 대장군장: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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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훈장: 1982

6.1.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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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시즌리그
카타니아1953–54세리에 B
토리노1959–60세리에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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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단비고
1946년-1948년AS Pro Gorizia이탈리아어
1948년-1951년Inter이탈리아어
1951년-1954년Catania이탈리아어
1954년-1956년Torino이탈리아어
1956년-1957년Inter이탈리아어
1957년-1964년Torino이탈리아어

6.2.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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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소속팀
1968년 ~ 1969년프라토
1969년 ~ 1975년이탈리아 U-23 대표팀
1977년 ~ 1986년이탈리아 대표팀

*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

6.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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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비고
황금 파종자상1982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1982
유럽 올해의 감독(제프 헤어베어거 상)1982
황금 벤치 공로상1992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2011사후 헌액
월드 사커 역대 최고 감독 24위2013

6.4.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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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 대장군장: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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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훈장: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