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추
1. 개요
윤추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윤황의 손자이자 윤선거의 아들이며, 윤증의 동생이다. 1668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으려 했고,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다가 1681년 장흥고 주부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회덕 현감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으며, 1707년에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농은선생유고》가 있다.
-
1707년 사망 -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은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의 군사이자 기술자로서 요새 건축과 공성전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도시 계획 및 행정 개혁에도 참여하여 프랑스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그가 건설한 요새 중 12곳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1707년 사망 -
루트비히 빌헬름 폰 바덴바덴 변경백
루트비히 빌헬름 폰 바덴바덴 변경백은 "투르크인 루트비히" 또는 "제국의 방패"라고도 불린 신성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바덴-바덴 변경백으로, 오이겐 폰 사보이엔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는 데 기여했으며 대터키 전쟁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활약했고 슬란카멘 전투에서 승리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성혼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성혼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충청도 회덕군 읍내리에서 태어났으며 대사간을 지낸 팔송 윤황의 손자이자 학자인 미촌 윤선거의 아들이다. 당색은 서인으로,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명재 윤증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윤선거에게 학문을 배웠다.
30세에 병을 얻어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1668년(현종 9)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전시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166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치렀고, 이후에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 호를 농은이라 칭하며 향리에서 지내려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계속 출사를 권유해왔다.
1681년 (숙종 7) 장흥고 주부에 처음 임명되었고, 얼마 후 회덕 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1년 만에 사직하고 돌아왔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706년(숙종 32)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으나, 사양하고 물러났다. 1707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가계와 출생
충청도 회덕군 읍내리에서 태어났으며 대사간을 지낸 팔송 윤황의 손자이자 학자인 미촌 윤선거의 아들이다. 당색은 서인으로,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명재 윤증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윤선거에게 학문을 배웠다.
30세에 병을 얻어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1668년(현종 9)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전시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166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치렀고, 이후에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 호를 농은이라 칭하며 향리에서 지내려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계속 출사를 권유해왔다.
1681년 (숙종 7) 장흥고 주부에 처음 임명되었고, 얼마 후 회덕 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1년 만에 사직하고 돌아왔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706년(숙종 32)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으나, 사양하고 물러났다. 1707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2. 관직 생활
충청도 회덕군 읍내리에서 태어났으며 대사간 팔송 윤황의 손자이자 학자 미촌 윤선거의 아들이다. 당색은 서인이었으며, 후일 소론의 영수가 되는 명재 윤증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윤선거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가학으로 학덕을 닦았다.
그러나 30세에 병에 걸려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1668년(현종 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전시에는 나가지 않았다. 1669년 부친상을 당하여 출사하지 않았고, 3년상을 마쳤다. 3년상을 마친 뒤에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자호하여 호를 농은이라 하고, 향리의 전야에 파묻혀 일생을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계속 조정에서는 출사 권유가 들어왔다.
이후 조정에서 여러 번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다가, 1681년(숙종 7) 처음으로 장흥고 주부에 부임하였다. 얼마 후 회덕 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관에 있은 지 1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706년(숙종 32)에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으나, 상소하여 사양하고 물러났다. 1707년에 사망하니 당시 향년 75세였다.
2.3. 사망
농은 윤추는 166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쳤다. 3년상을 마친 뒤에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자호하여 호를 농은이라 하고, 향리의 전야에 파묻혀 일생을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계속 조정의 출사 권유로 1681년 처음으로 장흥고 주부에 부임하였다. 회덕 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관에 있은지 1년만에 벼슬을 버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706년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으나, 상소하여 사양하고 물러났다. 1707년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75세였다.
3. 가족 관계
윤추의 고조부는 윤돈(尹暾)이며, 증조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조부는 윤황(尹煌)이고, 조모는 창녕 성씨로 성혼의 딸이다. 숙부로는 윤훈거(尹勛擧), 윤순거(尹舜擧), 윤상거(尹商擧), 윤문거(尹文擧), 윤민거(尹民擧), 윤경거(尹耕擧), 윤시거(尹時擧)가 있었다. 고모부는 남인 당원이자 윤휴의 처남인 권준이었다.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 이씨이다.
형님은 윤증(尹拯)이며, 매제로는 반남인 박세후(朴世垕), 전주인 이정여(李正輿), 안동인 권준(權儁)이 있었다. 동생으로는 윤발(尹撥), 윤졸(尹拙), 윤읍(尹挹)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풍양 조씨로 조진양(趙進陽)의 딸이며, 장남은 윤자교(尹自敎), 차남은 윤가교(尹可敎)이다. 두 번째 부인은 전의 이씨로 이유(李𣞗)의 딸이다.
4. 저서
농은선생유고(農隱先生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