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차 비르게 칸
1. 개요
이난차 비르게 칸은 나이만 칸국의 칸으로, 구추구트 씨족 출신이다. 그는 형 나얼시 타양과 함께 예니세이 키르기스를 정복하고, 1143년 야율대석이 죽은 후 독립했다. 그는 1174년 케레이트의 토그릴의 동생 에르케 카라를 지지했으며, 사후 나이만 칸국은 아들들에 의해 분열되었다. 몽골비사에서는 그를 나이만인들 사이에서 명예로운 인물로 묘사한다.
| 이름 | 이난치 빌게 칸 |
|---|---|
| 칸위 계승 | 칸 |
| 통치 기간 | 기원후 1143년경 – 1198년 |
| 선임자 | 나에르시 타양 (纳儿黑失太阳) |
| 후임자 | 타이부카 (자이산 호수 근처) |
| 부이루크 칸 (알타이 산맥) | |
| 사망일 | 1198년 또는 1202년 |
| 배우자 | 귀르베수 (古兒別速) |
| 자녀 | 타이부카 부이루크 칸 |
| 가문 | 귀취귀트 |
| 가문 유형 | 씨족 |
| 종교 | 네스토리우스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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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족의 칸 -
타이양 칸
타이양 칸은 12세기 말 나이만족의 칸으로 형을 살해하고 즉위, 이복동생과의 갈등, 몽골의 테무진(칭기즈 칸)과의 대립, 케레이트 옹 칸과의 동맹, 그리고 1204년 칭기즈 칸에게 패배하여 사망한 인물이다. -
1107년 출생 -
남송 고종
고종은 금나라의 침략으로 북송이 멸망한 후 남송을 건국하고 군사력 강화와 문화 발전에 힘썼으며, 금나라와의 화평을 추구하다가 양위한 남송의 초대 황제이다. -
1107년 출생 -
엔리코 단돌로
엔리코 단돌로는 고령과 실명에도 불구하고 제4차 십자군 원정을 이끌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베네치아의 이익을 극대화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이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을 묵인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유산을 파괴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1198년 사망 -
교황 첼레스티노 3세
오르시니 가문 출신으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부제급 추기경이었던 첼레스티노 3세는 교황 특사로도 활동했으며, 1191년 교황으로 선출되어 하인리히 6세의 대관식을 거행하고 시칠리아 왕국, 덴마크,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제국 문제에 관여하고 독일 기사단을 인가했다. -
1198년 사망 -
만적
고려 신종 때 최충헌의 노비 만적은 1198년 신분 해방을 주장하며 봉기를 모의했으나 실패했고, 이는 고려 사회의 신분 질서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신분 해방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2. 가계와 가족 관계
이난차 비르게 칸은 나이만의 구추구트 씨족 출신으로, 베테긴 씨족을 따랐다. 그는 형 나얼시 타양(納兒黑失太陽중국어)을 계승하였다. 그가 죽은 후 나이만 칸국은 그의 아들들인 타이양 칸과 부이루크 칸이 다스리는 두 개의 파벌로 나뉘었다.
2.1. 가족
이난차 비르게 칸은 여러 아내를 두었으며, 그중 이름이 알려진 후처는 그르베스(古兒別速중국어)이다. 그는 최소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 전처 : 이름 미상
장남 : 타이양 칸 (타이부카)
* 손자 : 쿠츨루크
** 차남 : 부이루크 칸
* 후처 : 그르베스
이난차 비르게 칸 사후, 그의 후처 그르베스는 의붓아들인 타이양 칸과 수혼하였다.
3. 통치와 업적
이난차 비르게 칸은 나이만의 구추구트 씨족 출신으로, 형 나얼시 타양(納兒黑失太陽)과 함께 예니세이 키르기스를 정복하는 업적을 세웠다. 이후 형의 뒤를 이어 칸이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나이만은 카라키타이로부터 독립하는 등 세력을 키웠으며, 주변 부족과의 관계에도 관여하였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 나이만 칸국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둘로 나뉘었다.
3.2. 케레이트와의 관계
1174년, 케레이트의 통치자 토그릴의 동생인 에르케 카라를 지지하였다.
4. 평가
그는 《몽골비사》에 따르면 나이만인들 사이에서 명예로운 인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