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르 로센크란츠
1. 개요
이베르 로센크란츠는 1674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1745년 사망한 덴마크의 귀족이자 외교관, 정치가이다. 그는 코펜하겐 기사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1698년 덴마크 공주의 궁내관으로 임명되었다. 1700년 스웨덴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잉글랜드 주재 덴마크 대사를 역임하고 통상부 서기관으로 활동했다. 크리스티안 6세 즉위 후 덴마크 두 재무처의 수장이 되었으나, 외교 정책에 대한 국왕과의 의견 불일치로 1735년 해임되었다. 그는 두 번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1713년 왕립 학회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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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위 | 덴마크 추밀고문관 |
|---|---|
| 이전 | 울리크 아돌프 홀스테인 |
| 이후 | 요한 루드비 홀스테인-레드레보르 |
| 출생일 | 1674년 12월 5일 |
| 출생지 | 로젠홀름 성, 호른슬레트, 덴마크 |
| 사망일 | 1745년 11월 13일 |
| 사망지 | 로젠홀름 성, 호른슬레트, 덴마크 |
| 자녀 | 프레데리크 크리스티안 로센크란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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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공무원 -
엔리코 달가스
엔리코 달가스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덴마크에서 군인이자 토목 기사로서 활동하며 슐레스비히 전쟁에 참전했고, 덴마크 황무지 협회를 설립하여 윌란 반도의 토지 개량 및 임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
덴마크의 공무원 -
울리크 아돌프 홀스테인
울리크 아돌프 홀스테인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덴마크의 귀족이자 정치가로, 덴마크 대재상을 역임했으며 영국 외교 사절로 파견되기도 했다. -
17세기 덴마크 사람 -
크리스티안 4세
크리스티안 4세는 1588년부터 1648년까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치한 국왕으로, 국방 및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해외 진출을 시도했으나 30년 전쟁과 토르스텐손 전쟁에서 패배하여 발트 해에서의 세력을 상실했으며, 르네상스 군주로서 예술과 문화를 장려하다가 1648년 사망했다. -
17세기 덴마크 사람 -
덴마크의 앤
덴마크의 앤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와 결혼하여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었고,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비가 되어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고 건축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빚을 남겼다. -
1674년 출생 -
아이작 와츠
아이작 와츠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영국의 장로교 신학자이자 시인, 찬송가 작곡가로서, 비국교도 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런던 마크 레인 회중 예배당 목사로 봉직하며 600편 이상의 찬송가를 작곡하여 영국 찬송가 역사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고, 그의 작품들은 신학, 교육, 문학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1674년 출생 -
존 포터
존 포터는 17-18세기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이자 학자로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고전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였으며, 앤 여왕의 국왕 전속 사제, 옥스퍼드 주교를 거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2. 초기 생애와 교육
이베르 로센크란츠는 덴마크 호른슬레트에 있는 로센홀름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에릭 로센크란츠 틸 로센홀름(1612–1681)이고, 어머니는 마가렛 크라베 틸 베메토프테(1640–1716)이다. 그의 아버지 에릭 로센크란츠는 귀족이자 정치가였으며, 이베르가 7세 때 사망했다. 이베르의 어머니는 1658년 스웨덴에 할양된 스코네(Skåne) 출신이었다. 이베르의 외할아버지 이베르 크라베는 저명한 정치인이자 군인이었으며, 한때 노르웨이 총독을 지냈다. 이베르 크라베와 그의 아내(어린 이베르의 할머니) 카렌 마르스빈은 스코네 할양 이후 덴마크에 정착했지만, 어린 이베르는 여전히 현재 남부 스웨덴에 두 명의 이모와 한 명의 삼촌을 두었다. 이베르의 삼촌인 크로골름(현재 크라게홀름)의 위르겐 크라베 남작은 그를 매우 아꼈으나, 스카니아 전쟁 중인 1678년 스웨덴인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베르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1691년 코펜하겐에 와서 기사 아카데미(Ridderakademi)에서 공부하였다. 3년 후 해외 여행을 떠났다가 1697년에 돌아왔다. 1698년 1월, 조피 헤드비히 공주의 궁내관(Kammerjunker)으로 임명되었다.
3. 외교관 경력
1700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는 로센크란츠를 스웨덴 국왕 칼 12세를 만나게 하는 외교 사절로 보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1702년 고문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1702년부터 1706년까지, 그리고 1710년부터 1714년까지 잉글랜드 주재 덴마크 대사를 역임했다. 귀국 후 그는 통상부(Kommercekollegiet)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4. 정치 경력
이베르 로센크란츠는 덴마크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700년 프레데리크 4세의 외교 사절로 스웨덴에 파견되었으나 실패했고, 1702년부터 1706년, 1710년부터 1714년까지 잉글랜드 주재 덴마크 대사를 역임했다. 귀국 후 통상부 서기관을 지냈으나, 국왕과 귀족 비판으로 비보르 지사로 좌천되었다. 크리스티안 6세 즉위 후 재무처 수장으로 복귀, 영국을 지지하고 코펜하겐 대학교를 후원했지만, 외교 정책 갈등으로 1735년 해임되었다.
4.1. 덴마크 중앙 정부에서의 활동
1700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는 로센크란츠를 스웨덴 국왕 칼 12세를 만나게 하는 외교 사절로 보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1702년에는 고문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1702년부터 1706년까지, 그리고 1710년부터 1714년까지 잉글랜드 주재 덴마크 대사를 역임했다. 귀국 후 그는 통상부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프레데리크 4세가 점점 안네 소피 레벤틀로 여왕에게 의존하게 되고, 로젠크란츠가 덴마크 귀족을 비판하면서, 그는 직함을 박탈당하고 비보르의 지사로 임명되어 중앙 정부에서 물러났지만, 국왕의 형제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4.2. 프레데리크 4세 사후
크리스티안 6세는 1730년 프레데리크 4세가 사망하자, 즉시 로센크란츠를 코펜하겐으로 소환하여 엘리펀트 훈장을 수여하고 덴마크의 두 재무처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갈등에서 영국을 지지했으며, 코펜하겐 대학교를 후원하기도 했다. 1735년, 외교 정책과 관련하여 국왕과 의견이 달라 해임되었다.
4.3. 해임
크리스티안 6세와 외교 정책을 두고 의견이 충돌하여 1735년에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