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주
1. 개요
이아주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김성수의 두 번째 배우자이다. 1899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 정신여학교 재학 중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었으며,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성수와 재혼 후 그를 간호했으며, 민주당과 신민당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1968년 사망 후 구리시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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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시 출신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강계시 출신 -
김준엽
김준엽은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징집 후 탈영하여 한국 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고려대학교 교수를 거쳐 총장까지 지냈으며,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강제 사임당한 교육자이다. -
김성수 (언론인) -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되어 민주주의, 민족주의, 문화주의를 사시로 내걸고 민족운동 등을 전개했으며, 일제강점기 폐간 후 복간되어 방송 사업을 시작했고, 여러 논란을 겪으며 현재 주 6일제로 신문을 발행한다. -
김성수 (언론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윤치영 -
최인규 (1919년)
최인규는 연희전문학교와 뉴욕대학교를 졸업 후 대한교역공사와 한국무역진흥주식회사에서 근무하다 자유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제4대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나, 3·15 부정선거의 총책임자로 지목되어 4·19 혁명 이후 구속,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윤치영 -
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3공화국은 5·16 군사정변 이후 수립된 박정희 정부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공업 중심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1972년 유신으로 해체되었다.
2. 생애
이아주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한 김성수의 두 번째 배우자이다. 정신여학교 재학 중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다. 200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이아수(李娥洙), 이애주(李愛主)라는 이름이 있다. 본관은 용인이다.
1899년 음력 7월 19일 평북 강계에서 아버지 이봉섭(李鳳涉)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경성부로 올라와 정신여학교에 입학하였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김성수의 문병을 받았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성수와 재혼하게 되었다.
만년에 중풍과 뇌출혈로 고생하던 김성수를 간호하였다. 1968년 9월 11일에 사망하여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사로리(현 구리시 사로동)에 안장되었다.
2005년 3월 7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2.1. 독립운동과 투옥 (3.1 운동 참여)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정신여학교 졸업반이었던 이아주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학생단의 대규모 만세시위 후, 3월 5일 제2차 시위 소식을 듣고 3월 5일 오전 9시부터 서울 남대문역 부근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는 남대문역에서 학생 및 시민으로 구성된 대규모 시위대에 합류하여 독립기를 내세우고 붉은 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3월 5일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30여 명의 여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총독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체포 후 취조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너희들이 만세를 부른다고 독립이 될 줄 아느냐?"고 묻자, 그는 "언젠가는 꼭 될 줄 안다."고 자신있게 답변하였다. 결국 경찰서 유치장을 거쳐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었고, 여기서 나혜석,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신진심, 강기정 등을 만나 함께 예심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8월 6일 보석으로 출감하였다.
1919년 10월 3.1 운동 가담 혐의로 6개월형을 언도받고,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으나, 병으로 1920년 3월 22일 가출옥했다.
2.2. 김성수와의 만남과 결혼
김성수는 이아주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아주와 재혼하였다.
2.3. 김성수 내조와 정치 활동
이아주는 남편 김성수가 사망한 뒤 그의 재산을 정리하여 고려중앙학원에 기증하였다. 1955년 9월 25일부터 1957년 1월 30일까지 민주당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967년 12월 3일부터 1968년 3월 20일까지 신민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