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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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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윤희는 함종 어씨 출신으로, 1880년 충주에서 태어나 한성부에서 성장했다. 1891년 결혼 후 3일 만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으나, 1912년 개성의 미리흠여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3·1 운동 당시 개성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광복 후에는 고아들을 돌보는 사회사업에 헌신했으며, 1961년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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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건국훈장 애족장
건국훈장 애족장
이름어윤희
원어명魚允姬
출생일1880년 06월 20일
출생지조선 충청도 충주
사망일1961년 11월 18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
본관함종
직업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정치인
종교개신교
부모어현중(부)
정치 활동
정당무소속
경력한국독립당 당무위원(1950년)
상훈
훈장건국훈장 애족장

2. 생애

어윤희는 함종(咸從)로, 1880년 충청도 충주에서 아버지 어현중(魚玄仲, 1853년생~1929년졸)의 외동딸로 태어나 황해도 해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891년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에 참여했다가 도적으로 오인받아 사살되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1912년 개성의 미리흠여학교(美理欽女學校)에 입학, 졸업 후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낙도 지역 주민 전도와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개성 일대에 배포, 개성 만세운동의 불씨를 제공하였고, 3월 3일에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권총 탄환을 비밀리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개성에서 유린보육원(有隣保育院)을 설립해 고아들을 돌보았고, 6.25 전쟁 때 부산으로 가서 교회 장로로 일하면서 사회사업에 전념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서강유린보육원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1961년 11월 사망하였다. 1953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 1959년 인권옹호 공로표창을 받았다.

2. 1. 초기 생애 (1880년 ~ 1912년)

함종(咸從) 어윤희는 1880년 충청도 충주에서 한성부 토호 갑부 집안의 서손(庶孫)으로 태어난 아버지 어현중(魚玄仲, 1853년생~1929년졸)의 외동딸(무남독녀)로 출생하였다. 지난날 한때 황해도 해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훗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친정아버지 어현중은 본디 한성부 토호 갑부 집안의 서손(庶孫)이고, 친정아버지(어현중)의 이복형(아버지 어현중의 친가 배다른 적형 어약우)인 어약우(魚若愚, 1818년생~1863년졸, 친정 사촌 오빠 어윤중(1848년생~1896년졸)의 선친.)는 이복 백부(어윤희 여사의 친정 배다른 적출 큰아버지 어약우)가 된다. 어윤희는 어려서 한학을 익힌 뒤 1891년에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에 참여하였다가 도적으로 오인을 받고 사살되어 어린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다.

2. 2. 독립운동 투신 (1912년 ~ 1945년)

1891년에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에 참여하였다가 도적으로 오인받아 사살되어 어린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다.

1912년 개성의 미리흠여학교(美理欽女學校)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낙도 지역 주민의 전도와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직접 〈독립선언서〉를 개성 일대에 배포해 개성 만세운동의 불씨를 제공하는 한편, 거사 당일인 3월 3일에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등과 함께 1,5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의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재소자들과 함께 다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출옥한 뒤에도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육혈포(六穴砲: 권총) 탄환을 비밀리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2. 3. 해방 이후 사회사업 (1945년 ~ 1961년)

1945년 광복 이후 개성에서 유린보육원(有隣保育院)을 설립해 고아들을 돌보았고, 6.25 전쟁 때에는 부산으로 가서 10년간 교회 장로로 일하면서 사회사업에 전념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서강유린보육원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1961년 11월 사망하였다. 1953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 1959년 인권옹호 공로표창을 받았다.

3. 사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4. 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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