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쓰 가즈유키
1. 개요
이즈쓰 가즈유키는 일본의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평론가, 탤런트이다. 나라현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8mm 필름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1975년 35mm 영화로 데뷔했다. 1981년 영화 《가키 테이코쿠》로 일본 영화 감독 협회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 《보이즈 비 앰비셔스》는 블루 리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영화 《파치기!》로 일본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요코하마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비판적인 논평으로 일본 TV에 자주 출연하며, 많은 TV 광고를 연출하기도 했다.
| 이름 | 이즈쓰 가즈유키 |
|---|---|
| 본명 | (출처 필요) |
| 로마자 표기 | Izutsu Kazuyuki |
| 출생일 | 1952년 12월 13일 |
| 출생지 | 나라현 |
| 혈액형 | A형 |
| 직업 | 영화 감독 영화 평론가 |
| 활동 기간 | 1975년 - 현재 |
| 장르 | 일반 영화 핑크 영화 |
| 배우자 | 알려진 정보 없음 |
| 소속사 | 이즈쓰 프로덕션 |
| 공식 웹사이트 |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 OFFICIAL WEB SITE |
| 영화 | 가키 제국 기시와다 소년 그렌대 게ロッパ! 파치기! 히어로 쇼 |
|---|
| 일본 아카데미상 | 최우수 감독상 제29회 『파치기!』 최우수 각본상 제29회 『파치기!』 |
|---|---|
| 일본 영화 감독 협회 신인상 | 1981년 『가키 제국』 |
| 다카사키 영화제 | 최우수 감독상 제20회 『파치기!』 최우수 감독상 제25회 『히어로 쇼』 최우수 감독상 제27회 『황금을 안고 튀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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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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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일본의 영화 감독 -
스즈키 세이준
스즈키 세이준은 독특한 영상미와 스타일로 '세이준 미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마니아층을 형성한 일본의 영화 감독으로, 닛카쓰에서 해고 후 복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일본의 영화 감독 -
이상일 (영화 감독)
니가타현 출신 재일조선인 3세 영화 감독인 이상일은 일본영화학교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하고 《69 sixty nine》으로 데뷔하여 《훌라 걸스》, 《악인》, 《분노》, 《유랑의 달》 등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호평을 받으며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나라현 출신 -
야마다 사부로
야마다 사부로는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사법 권위자로 한·프랑스 문화 교류에 기여한 일본의 법학자이자 관료이다. -
나라현 출신 -
기무라 도쿠타로
기무라 도쿠타로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후 변호사, 검찰총장, 법무대신, 요시다 내각의 법무총재 및 방위청장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반공주의 활동과 전일본검도연맹 초대 회장으로서 검도 부흥에 기여했다.
2. 경력
나라현 출신인 이즈쓰는 고등학교 때부터 8mm 필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5년에 첫 35mm 영화인 핑크 영화를 연출했다. 1981년 영화 가키 제국으로 일본 영화 감독 협회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고, 1996년 보이즈 비 앰비셔스로 블루 리본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영화 파치기!의 각본 및 연출로 일본 아카데미상에 두 번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요코하마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이즈쓰는 일본 TV에 자주 출연하며 비판적인 논평으로 알려져 있다.
2.1. 영화감독 데뷔 이전
미국 뉴 시네마에 심취하여 나라현립 나라 고등학교 시절부터 8mm와 16mm 영화를 제작했으며, 1975년 친구와 영화 제작 그룹 '신영구락부'를 설립했다.
같은 해 핑크 영화 『가는 거야 마이트 가이 성춘의 고뇌』(후에 「가라 가라 마이트 가이 성춘의 고뇌」로 개제. 「이즈쓰 가즈유키」 명의)를 처음 감독했다. 「가라 가라 마이트 가이 성춘의 고뇌」는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필름 원본이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필름 센터에 소장되었고, 이즈쓰 감독이 유명해진 후에 소프트화되었다. 상경 후에도 핑크 영화를 계속 촬영했으며, 그 중 하나인 『색정녀 사냥』부터 「이즈쓰 가즈유키」 명의를 사용했다. 이와 함께 간사이 지방의 정보지 「플레이 가이드 저널」에 칼럼을 집필했다.
2.2. 영화감독 활동
이즈쓰 가즈유키는 나라현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8mm 필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친구와 영화 제작 그룹 '신영구락부'를 설립하고, 첫 35mm 영화이자 핑크 영화인 『가는 거야 마이트 가이 성춘의 고뇌』를 감독했다. 이후 상경하여 핑크 영화를 계속 촬영하며 『색정녀 사냥』부터 '이즈쓰 가즈유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81년, 첫 일반 영화인 『가키 제국』이 흥행하며 일본 영화 감독 협회 신인 장려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가키 제국 불량배 전쟁』을 제작했으나, 모스 버거 측의 항의로 극장 상영, TV 방송, 소프트화가 제한되었다.
1983년에는 아다치 미츠루 원작 만화 『미유키』의 감독을 맡았으나,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촬영을 마쳤다.
1991년, 영화 『동방견문록』 촬영 중 엑스트라 배우 사망 사고를 일으켰다. (#영화 촬영 중 사망 사고 참조) 이로 인해 제작사인 디렉터스 컴퍼니는 도산했고, 이즈쓰는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1996년, 『기시와다 소년 폭주족 BOYS BE AMBITIOUS』로 블루리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박치기!』로 다시 한번 블루리본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일본 아카데미상 각본상 및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요코하마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아사히 방송 신사옥 완공 기념 단편 영화 『TO THE FUTURE』를 제작했다. 2010년 『히어로 쇼』, 2012년 『황금을 안고 튀어』로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2회 연속 수상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제목 |
|---|---|
| 1996 | 소년 우연대 |
| 1999 | 노래자랑 |
| 2003 | 겟 업! |
| 2005 | 박치기! |
| 2007 | 박치기!: 러브 앤 피스 |
| 2010 | 히어로 쇼 |
| 2012 | 황금을 안고 튀어 |
이즈쓰는 일본 TV에 자주 출연하며 비판적인 논평으로 알려져 있으며, TV 광고도 다수 연출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영화 평론가 및 탤런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2.3. 영화 평론 및 기타 활동
이즈쓰는 일본 TV에 자주 출연하며 비판적인 논평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많은 TV 광고를 연출했다. 플레이 가이드 저널에 칼럼을 집필하기도 했다.
3. 작품 세계
이즈쓰 가즈유키는 스티브 맥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존경하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작품에 깊이 경도되는 등 다양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범죄 영화 장르를 선호하여 돈 시겔의 『더티 하리』, 월터 힐의 『더 드라이버』,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 등을 명작으로 꼽았다.
유럽 영화 중에서는 자크 베케르의 프랑스 영화 『손대지 마라』, 이탈리아 영화 『알제 전투』, 로베르 엔리코의 반전 영화 『추억』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영화에서는 후카사쿠 킨지의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에 큰 영향을 받아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밝혔으며, 다이에이 영화 중에서는 악명 시리즈와 미조구치 겐지 작품을 좋아한다.
3.1. 주제 의식
이즈쓰 가즈유키는 다양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스티브 맥퀸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영화 『대탈주』, 『황야의 7인』, 『빠삐용』 등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 경도된 이즈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작품, 특히 『대부』 시리즈를 극찬했다.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시 높이 평가했다.
범죄 영화에 대한 애정도 깊어,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 월터 힐 감독의 『더 드라이버』, 샘 페킨파 감독의 『겟어웨이』 등을 명작으로 꼽았다. 자신의 연출작 『황금을 안고 튀어라』는 이러한 영화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럽 영화 중에서는 자크 베케르 감독의 프랑스 영화 『손대지 마라』, 이탈리아 영화 『알제 전투』, 로베르 엔리코 감독의 반전 영화 『추억』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영화에서는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에 깊이 경도되어 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이에이 영화 중에서는 악명 시리즈와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3.2. 영화 기법
이즈쓰 가즈유키는 다양한 영화와 감독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영화 기법은 이러한 폭넓은 경험을 반영한다.
* 미국 영화:
* 스티브 맥퀸의 열렬한 팬으로, 『대탈주』, 『황야의 7인』, 『빠삐용』 등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맥퀸을 "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존경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 샘 페킨파 감독의 『겟어웨이』와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를 "지금도 1년에 2, 3번은 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다. 이 외에도 월터 힐 감독의 『더 드라이버』, 데릴 듀크 감독의 『사일런트 파트너』(캐나다 영화)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 시드니 루멧 감독의 『뜨거운 오후』,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도 높게 평가했다.
*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 경도되었으며, 그중에서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특히 『대부』, 『대부 2』를 대단히 칭찬했다. 고든 윌리스가 촬영한 『황야의 결투』를 뉴 서부극이라며 극찬했다.
* 유럽 영화:
* 자크 베케르 감독의 프랑스 영화 『손대지 마라』, 조제 조반니 원작 및 각색의 『구멍』, 조반니 감독의 『훔치고 달아나다』 등을 높이 평가했다.
* 이탈리아 영화 『알제 전투』, 로베르 엔리코 감독의 프랑스 영화 『추억』,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 일본 영화:
*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를 보고 감독이 되었다고 공언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 시리즈 중에서도 기타오지 킨야와 지바 신이치가 주연한 두 번째 작품 『의리없는 전쟁 히로시마 사투편』을 특히 좋아했다.
* 다이에이 영화 중에서는 갓신 타로와 타미야 지로의 콤비가 출연한 악명 시리즈, 『괴담』의 이치카와 라이조, 와카오 아야코,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팬이다.
4. 논란 및 비판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은 여러 논란과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1991년 영화 『동방견문록』 촬영 중 엑스트라 배우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즈오카현 순토군 오야마정 우에노에서 촬영 중이던 21세 배우 하야시 겐타로가 약 8kg의 갑옷을 입고 연기하던 중 불어난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다. 구조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족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고소했고, 이즈쓰 감독과 조감독은 서류 송검되었다. 이 사고로 영화 공개는 중지되었고, 제작사는 도산했으며, 이즈쓰 감독은 유족에게 30 이상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또한, 이즈쓰 감독은 여러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라에몽: 진구와 일본 탄생》, 《게이샤의 추억》, 《ALWAYS 3번가의 석양》, 《영원의 0》, 《스타워즈》 시리즈, 《신 고질라》, 《너의 이름은.》 등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특히 《너의 이름은.》에 대해서는 "오타쿠의 자위 동영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4.1. 영화 촬영 중 사망 사고
1991년 9월 22일,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영화 『동방견문록』 촬영 중, 엑스트라로 출연한 21세 배우 하야시 겐타로가 시즈오카현 순토군 오야마정 우에노에서 익사했다. 당시 현장에는 폭포에 빠지는 장면을 위해 강물의 흐름을 이용한 수심 2m의 대규모 세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야시는 약 8kg의 갑옷을 착용하고 "젊은 무사가 살해되어 시체가 되어 폭포에 떠오른다"는 장면을 리허설하던 중, 불어난 물살에 휩쓸려 물속에 가라앉아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음 날 사망했다. 물이 심하게 흐려 다이버가 1명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구조가 3~5분 정도 지연되었다고 한다。
같은 해 11월, 유족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고소했다. 이즈쓰와 조감독은 연기상의 안전 확보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서류 송검되었다。사고 후에도 촬영은 계속되었지만, 사고가 보도되면서 사회 문제화되어 1992년 5월 18일로 예정된 공개는 중지되었다。제작사인 디렉터스 컴퍼니는 이 영향으로 1992년에 도산했다. 사고사한 엑스트라의 유족이 제기한 재판에서 이즈쓰 측은 패소, 유족에게 30 이상의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즈쓰는 1993년 센토 다케노리의 의뢰로 『갑자기 불꽃처럼』을 통해 감독으로 복귀했다。『동방견문록』은 1993년 8월 1일에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4.2. 비판적 발언
* 영화 《도라에몽: 진구와 일본 탄생》 감상 당시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며 걱정하고 있는데, 나 혼자 목소리를 내어 웃었더니 도라에몽 감상 매너에 위반된 것 같았다. 유아들과 엄마들에게 자이언 눈으로 노려봐져서, 그만 쫄았다", "(도라에몽이 기가좀비에게 한 대사) 네가 이 과거에 군림하려 해도 올바른 역사에는 이길 수 없다는 좋은 말을 한다. 엄마, 의미 알았을까?"라고 말했다.
* 2005년 12월 24일, TV 아사히의 "토라노몬"에서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대해 "스필버그는 최악", "일본인 게이샤 역에 중국인(장쯔이)을 배역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 제29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 후 영화 《ALWAYS 3번가의 석양》에 대해 "처음 봤는데 학예회 수준이고, 4컷 만화 수준인데, 이런 괴상한 것이 아카데미 12관왕을 했다니 다시 한번 놀랐다"라고 논평했다.
* 2014년 1월 16일, "이즈츠와 마츠코 금단의 라디오"에서 영화 《영원의 0》에 대해 백전상수 원작의 영화를 "본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 "특공대를 미담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는 오타쿠와 변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평하며, 흥행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2016년에 일본 개봉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대해서도, 개봉 전부터 "포스, 포스라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어 (웃음). 무엇이든 포스로 해결한다는 건, 신흥 종교 같아!"라고 비판하고 있다.
* 영화 《신 고질라》에 대해서는 이야기 전개를 따라갈 수 없어, 40분 만에 시청을 단념했다.
* 영화 《너의 이름은.》에 대해서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일본 영화로 흥행 2위의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 "그런 오타쿠의 자위 동영상을, 1000만 명이 보게 된다면, 나는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저건 '영화'가 아니니까"라고 평하고 있다.
*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해 "더욱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것 같은, 농담 같은 일", "일본 영화 현장에서도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잘 나가는 여배우님이 '성행위 감시역'을 동행시켜 감독에게 딴지를 걸게 할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5. 수상 경력
6. 감독 작품 목록
| 연도 | 제목 |
|---|---|
| 1975년 | 가자 가자 마이토 가이: 청춘의 몽몽 |
| 1978년 | 미운 빛깔의 바다 |
| 1979년 | 폭행마 신주 제메 |
| 1981년 | 식정 메스 가리 |
| 악동 제국: 악당 전쟁 | |
| 악동 제국 | |
| 1982년 | 붉은 복수: 망루 |
| 1983년 | 미유키 |
| 1984년 | 가끔은 살인 |
| 1985년 | 2대째는 크리스찬 |
| 1986년 | 개에게 먹일 자 |
| 1989년 | 위험한 이야기 무겐 이야기 |
| 1990년 | 유니버셜 로우즈 |
| 1996년 | 소년 우연대 |
| 보이즈 비 앰비셔스 | |
| 1999년 | 노래자랑 |
| 아마추어 노래 경연 대회 | |
| 빅 쇼! 하와이에서 노래하면 | |
| 2003년 | 겟 업! |
| 2005년 | 박치기! |
| 2007년 | 박치기!: 러브 앤 피스 |
| 2010년 | 히어로 쇼 |
| 2012년 | 황금을 안고 튀어라 |
| 2020년 | 와이즈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