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원
1. 개요
이양원은 조선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홍문관 부제학,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울 수비를 맡았으며, 영의정으로 왜적과 싸우다 왕이 요동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 선성군 이무생의 고손자이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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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년 출생 -
라파엘 봄벨리
라파엘 봄벨리는 이탈리아의 수학자로, 1572년 『대수』에서 복소수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허수의 산술 규칙을 명확히 제시하며 삼차방정식 해법에서 복소수가 나타나는 경우를 최초로 지적하는 등 후대 수학 발전에 기여했다. -
1526년 출생 -
이코마 지카마사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이코마 지카마사는 히데요시에게 사누키국을 받아 다카마쓰 성과 마루가메 성을 축조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문 보존을 위해 아들이 속한 반대편 군에 가담했다. -
1592년 사망 -
신립
조선 중기 무장 신립은 무과 급제 후 북방 방어에 공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여 자결하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1592년 사망 -
나카가와 히데마사
나카가와 히데마사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무장으로, 아버지의 전사 후 가독을 이어 영주가 되었으며 규슈 정벌, 오다와라 정벌, 임진왜란 등에 참전하여 조선에서 전사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우의정을 지냈으며, 유도대장을 겸하며 서울 수비를 맡았다. 그러나 선조가 요동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2.1. 관직 생활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정자, 홍문관저작, 박사, 부수찬, 시강원사서, 병조좌랑, 홍문관수찬, 홍문관부교리, 이조정랑, 의정부검상, 홍문관응교 등을 거쳤다. 승정원에서 우부승지에 임명되고 병조참지, 우승지, 예조참의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병조참지로 재임명되었다가 다시 병조참의를 거쳐 사간원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병조참지를 지내고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후 도승지로 임명되어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대사헌, 형조참판, 병조참판을 두루 지냈다. 오위도총부부총관을 하다가 개성유수를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를 지내고 예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과 좌찬성을 지냈다. 병조판서로 다시 임명되었다가 유도대장을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어 유도대장을 겸하며 임진왜란 때 서울 수비를 맡았다. 이후 좌의정이 되고 영의정이 되어서 왜적과 싸웠지만 왕이 요동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다.
2.2. 임진왜란과 최후
임진왜란 때 서울 수비를 맡았으나, 선조가 요동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고조부 | 선성군 이무생(宣城君 李茂生) | 정종의 7남 |
| 증조부 | 병산군 이말정(屏山君 李末丁) | |
| 양조부 | 지산군 이천수(知山君 李千壽) | |
| 아버지 | 이원군 이학정(利原君 李鶴汀) | |
| 어머니 | 동래 정씨 | 정양(鄭瑒)의 딸 |
| 부인 | 진주 류씨 | 군수(郡守) 류간(柳幹)의 딸 |
| 장녀 | 이란(李蘭) | 1547년 ~ ? |
| 사위 | 창녕 성씨 성영(成泳) | 1547년 ~ 1623년 |
| 차녀 | 이영(李英) | 1549년 ~ ? |
| 사위 | 풍양 조씨 조희식(趙希軾) | 현령(縣令) 역임 |
| 장남 | 이서경(李犀慶) | 1559년 ~ ? |
| 며느리 | 평산 신씨 | 신흔(申忻)의 딸 |
| 손자 | 이복광(李復匡) | |
| 손자 | 이중광(李重匡) | 1585년 ~ ? |
| 차남 | 이구경(李龜慶) | 1561년 ~ ? |
| 며느리 | 남양 홍씨 | 홍책(洪䇿)의 딸 |
| 손자 | 이홍광(李弘匡) | 1579년 ~ ? |
| 3남 | 이시경(李蓍慶) | 1565년 ~ ? |
| 며느리 | 원주 김씨 | 김유경(金有慶)의 딸 |
| 손자 | 이극광(李克匡) | 1585년 ~ ? |
| 손자 | 이의광(李毅匡) | 1587년 ~ ? |
| 측실 | 영산 신씨 | 신세흠(辛世欽)의 딸 |
| 4남(서자) | 이용경(李龍慶) | 1576년 ~ ? |
| 며느리 | 원주 원씨 | 보덕(輔德) 원사용(元士容)의 딸 |
| 손자 | 이인광(李仁匡) | 1602년 ~ ? |
| 손자 | 이준광(李俊匡) | 1613년 ~ ? |
| 손자 | 이신광(李信匡) | 1620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