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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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미륵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석탑으로,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며, 백제 석탑의 시원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보수되었으며, 2013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료되었다. 2009년에는 석탑 해체 및 보수 과정에서 금제 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 등 사리장엄이 발견되어 미륵사 창건 목적과 건립 연대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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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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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639년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건립하면서 미륵사지 석탑이 세워졌다. 이는 《삼국유사》와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중 금제사리봉영기에 기록되어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석탑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어 서쪽면 전체와 남쪽면 대부분, 북쪽면 절반 정도가 무너져 6층까지만 남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를 사용해 수리했으나, 미관상 좋지 않고 붕괴 위험이 있어 1994년 정부는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전라북도는 1998년부터 기본 작업을 완료했고,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당초 2007년 완료 예정이었던 수리 작업은 2017년까지 연장되었으며, 2013년에 시작되어 2019년 4월 30일에 완료되었다.
한편, 미륵사지 동탑은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문화재관리국 주관 하에 새로 조성되었다.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었으나, 복원 설계 중 9층이었음을 알려주는 부자재가 발견되어 9층으로 복원되었다.
2. 1. 건립 배경
639년, 백제 무왕 때 미륵사가 건립되었다.[5][2] 이는 한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이 석탑은 백제 석탑의 시원 형식(始原形式)이라고 불리며, 여러 면에서 한국 석탑 전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화강암을 사용한 이 석탑은 신라식 석탑과 달리, 지복석(地覆石)으로 구획된 사각형의 기단에 사방 3간(間)의 다층탑을 쌓아올린 것이다.[5][2]
2. 2. 양식
무왕(재위 600년 - 641년) 때인 639년에 건립된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5][2]이 석탑은 백제 석탑의 시원 형식(始原形式)이라고 불리며, 여러 면에서 한국 석탑 전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화강암을 사용한 이 석탑은 신라식 석탑과 달리, 지복석(地覆石)으로 구획된 사각형의 기단에 사방 3간(間)의 다층탑을 쌓아올린 것이다.[5][2]
서쪽면 전체와 남쪽면 대부분, 북쪽면의 절반 정도가 무너지고 층수도 6층까지 밖에 남지 않아 2013년 보수를 시작하여[15] 2019년 4월 30일에 완료하였다.[16]
미륵사지 동탑은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문화재관리국 주관 하에 새로 조성되었다. 이 탑은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었는데, 동탑의 복원 설계 중에 9층이었음을 알려주는 부자재가 발견되었다.[17]
2. 3. 훼손과 보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된 일제강점기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를 사용해 수리했다.[5][7] 그러나 1994년 4월, 미관상 좋지 않고 붕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는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5][7]
전라북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륵사지 석탑 수리 준비를 포함한 기본 작업을 완료했고,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보수 작업을 시작했다.[8][7]
당초 2007년에 완료될 예정이었던 미륵사지 석탑 수리 작업은 동아시아 최대 석탑이자 국보라는 점 때문에 일정이 계속 지연되어 2017년까지 이어졌다.[9][7]
문화재청은 해체 전 1층과 2층을 완벽하게 대칭으로 복원하고, 3층과 6층을 재구축할 계획이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와 일부 전문가들은 탑의 유지 및 붕괴 방지를 위해 5층까지 완전 대칭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11]
복원 작업 과정에는 일제강점기 동안 탑에 적용되었던 콘크리트 지지대 제거 작업도 포함되었다. 서쪽과 남쪽 대부분, 그리고 북쪽의 약 절반은 붕괴되어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탑의 보수를 위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6]
최종적으로 보수 작업은 2013년에 시작되어[15] 2019년 4월 30일에 완료되었다.[16]
3. 구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 양식을 따라 기단이 낮고 1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 1층은 각 면이 3칸으로 나뉘며, 가운데 칸에는 문이 있어 사방으로 통한다. 내부 중앙에는 큰 사각형 기둥이 있다. 1층 몸돌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이 있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엔타시스 양식이다. 기둥 위에는 목조건축처럼 평방과 창방을 본떠 설치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표현이 간략해지며, 지붕돌 너비도 줄어든다.[5][2]
3. 1. 세부 특징
미륵사지 석탑은 기단이 목탑과 같이 낮은 1단을 이루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각 면마다 3칸씩을 나누고 가운데 칸에 문을 만들어 사방으로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으며,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웠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목조건축의 엔타시스 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재료인 평방과 창방을 본떠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화되며,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들 뿐 같은 수법을 보인다.[5][2]4. 복원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보수한 부분이 미관상 좋지 않고 향후 추가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9년 4월 국가문화재위원회가 해체 및 보수 정비를 결정하였다. 전라북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보수 정비 준비와 가설덧집 공사를 완료하였고,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였다.
당초 2007년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국보임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해체하고 창건 당시 건축 기술을 조사하기 위한 학술 연구를 병행하면서 2014년, 2017년 말까지로 연장되었다. 2017년 12월 원래 남아 있던 6층까지의 수리가 이루어졌고, 2018년 6월 수리를 완료해 7월 중순까지 임시 개방했다. 최종 개방은 주변 정비 후 2019년 4월에 이루어졌다.[19]
4. 1. 복원 과정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를 이용하여 보수하였으나, 미관상 좋지 않고 향후 추가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9년 4월 국가문화재위원회가 해체 및 보수 정비를 결정하였다.[18]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전라북도는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정비 준비와 석탑 해체를 위한 가설덧집 공사 등을 완료하였고,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였다.[8][7]당초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정비 사업은 2007년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국보임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해체하고 창건 당시 건축 기술을 조사하기 위한 학술 연구를 병행하면서 작업 일정이 늦어져 2014년까지로 연장되었다가[18] 2017년 말까지로 다시 미루어졌다.[9][7]
2017년 12월 원래 남아 있던 6층까지의 수리가 이루어졌고, 2018년 6월 수리를 완료해 7월 중순까지 임시 개방하였다. 최종 개방은 주변 정비 후 2019년 4월에 이루어졌다.[19]
4. 2. 복원 완료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했으나, 미관상 좋지 않고 추가 붕괴 우려가 있어 1999년 4월 국가문화재위원회가 해체 및 보수 정비를 결정하였다.[5][7]전라북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륵사지 석탑 보수 정비 준비를 포함한 기본 작업을 완료하였고,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였다.[8][7]
당초 2007년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국보임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해체하고 창건 당시 건축 기술을 조사하기 위한 학술 연구를 병행하면서 작업 일정이 늦어져 완료일이 2014년, 2017년 말까지로 연장되었다.[9][7]
2017년 12월 원래 남아 있던 6층까지의 수리가 이루어졌고, 2018년 6월 수리를 완료해 7월 중순까지 임시 개방했다. 최종 개방은 주변 정비 후 2019년 4월에 이루어졌다.[19]
5. 발굴
2009년 1월 14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작업 중 상륜부 중앙에서 사리장엄(舍利莊嚴)을 발견하였다.[7][2][12]
발견된 사리장엄은 높이 13cm, 어깨 너비 7.7cm의 작은 항아리 형태였으며, X선 검사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2중 구조로 확인되었다. 사리호 표면의 문양과 제작 기법은 백제 금속 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준다.[7][2][12]
함께 발견된 금제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내용을 명확하게 했다. 639년 백제 왕후가 사리를 봉안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창건하고 재물을 기증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금제봉안기에는 시주자인 왕후가 백제 8대 귀족성 중 하나인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로 기록되어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조성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차이를 보여 주목된다.
사리봉안기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20]
원문 |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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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사리장엄 발견
2009년 1월 14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는 과정에서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 사리호(金製舍利壺), 금제사리 봉안기(金製奉安記) 등 사리장엄(舍利莊嚴)을 발견하였다.[7][2][12]
금제 사리호는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작은 병이다. X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2중 구조로 이뤄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 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7][2][12]
금제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붉은 칠(주칠)을 해 글씨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는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를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 금제봉안기에는 시주자인 왕후가 백제 8대 귀족성 중 하나인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의 딸로 기록돼 있어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13][2][12]
2009년에 발견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공예 유물의 연대를 밝혀주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고, 모호했던 백제 공예사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21]
5. 2. 금제 사리호
2009년 1월 14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다가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발견한 사리장엄(舍利莊嚴) 중 하나이다.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작은 병 형태를 하고 있으며, X선 투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 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7]
금제 사리호와 함께 발견된 금제 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붉은 칠(주칠)을 해 글씨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는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를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13][2][12]
특히, 금제봉안기에는 시주자인 왕후가 백제 8대 귀족성 중 하나인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의 딸로 기록되어 있어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13][2][12]
금제 사리봉안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면 |
---|
뒷면 |
이를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5. 3. 금제 사리봉안기
2009년 1월 14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던 중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 사리호(金製舍利壺), 금제사리 봉안기(金製奉安記)' 등 사리장엄(舍利莊嚴)을 발견하였다.금제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글자를 새기고 붉은 칠(주칠)을 해 글씨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미륵사를 창건하고, 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는 미륵사의 창건 목적,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연대를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 금제봉안기에는 시주자인 왕후가 백제 8대 귀족성 중 하나인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의 딸로 기록돼 있어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13][2][12]
2009년에 발견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공예 유물의 연대를 밝혀주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고, 모호했던 백제 공예사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21]
5. 3. 1. 사리봉안기 내용 분석
竊以法王出世隨機赴感應物現身如水中月是以託生王宮示滅雙樹遺形八斛利益三千遂使光曜五色行遶七遍神通變化不可思議我百濟王后佐平沙乇積德女種善因於曠劫受勝報於今生撫育萬民棟梁三寶故能謹捨淨財造立伽藍以己亥年正月卄九日奉迎舍利願使世世供養劫劫無盡用此善根仰資大王陛下年壽與山岳齊固寶曆共地同久上弘正法下化蒼生又願王后卽身心同水鏡照法界而恒明身若金剛等虛空而不滅七世久遠并蒙福利凡是有心俱成佛道중국어[20]2009년 1월 14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작업 중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金製奉安記)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글자를 새기고 붉은 칠(주칠)을 하여 내용을 명확하게 드러낸 유물이다.[13][2][12]
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고, 639년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미륵사의 창건 목적, 시주자, 석탑 건립 연대를 정확히 밝혀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13][2][12]
특히, 시주자인 왕후가 백제 8대 귀족성 중 하나인 '사'씨(沙氏 또는 '사택'씨)의 딸로 기록되어 있어,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인다.[13][2][12]
사리봉안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9년에 발견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제작 연대를 밝혀주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백제 공예사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21]
5. 3. 2. 사리봉안기 원문 및 해석
|가만히 생각하건대, 부처님(法王)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의 자질(근기, 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서 태어나시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광겁, 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今生)에 뛰어난 과보(승보, 勝報)를 받아 만백성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삼보, 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사찰(가람, 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였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무왕)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보력, 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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