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당 (1906년)
1. 개요
일본사회당 (1906년)은 1906년 2월, 니시카와 코지로 등과 사카이 토시히코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일본의 사회주의 정당이다. 제1차 사이온지 내각의 사회주의 대책 변화를 계기로 창당되었으며, 사회민주당과 평민사의 의회주의를 계승했다. 창당 초기부터 고토쿠 슈스이의 직접 행동론과 다조에 테츠지 등의 의회 정책론 간의 갈등이 있었고, 1907년 2월, 당칙 개정 이후 치안유지법에 의해 해산되었다.
| 이름 | 일본 사회당 |
|---|---|
| 원어 이름 | 日本社会党 (니혼 샤카이토) |
| 창립일 | 1906년 2월 24일 |
| 해산일 | 1907년 2월 22일 |
| 해산 사유 | 치안경찰법 제8조 제2항에 의한 금지 |
| 본부 위치 | 도쿄시간다구 미사키초 3丁目 1번지 |
| 당원 수 | 200명 |
| 정치적 이념 및 입장 | 사회주의 의회주의 비군비주의 비종교 운동 |
| 전신 정당 | 일본 평민당 일본 사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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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지 | '빛' '평민신문' '일간 평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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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정당 -
노동농민당
노동농민당은 1926년 일본에서 창당된 좌익 정당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토지 개혁을 추구했으나 당내 갈등과 공산주의 연계 혐의로 1928년 해산되었고, 이후 당원들은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 일본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
무산정당 -
무산대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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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사회주의 -
평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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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사회주의 -
국체론 및 순정사회주의
키타 잇키의 저서 《국체론 및 순정사회주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국가를 분석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국가 체제를 비판하며 사회민주주의를 통한 공민 국가로의 발전을 주장한 책으로, 쇼와 국가주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일본사 -
도쿄부
도쿄부는 1868년 에도에서 개칭된 도쿄에 설치된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에도 시가지에서 현재의 도쿄도와 거의 같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1943년 도쿄도제가 시행되면서 도쿄도로 개편되었다. -
일본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창당
1906년 2월, 니시카와 코지로 등의 일본평민당 결성에 이어, 사카이 토시히코 등을 중심으로 일본사회당이 결성되었다.
2.1. 창당 배경
사이온지 내각에서 사회주의 대책이 바뀌었다고 판단한 니시카와 코지로 등의 "일본평민당"과 사카이 토시히코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사회당"은, 1906년 2월 24일 도쿄 교바시구(현 주오구)의 평민병원에서 제1회 당 대회를 개최하고 일본사회당을 결성했다.
사회민주당과 평민사의 의회주의를 계승한 일본사회당의 창당 당시 당원은 200명 미만이었고, 근대적 공장 노동자는 거의 없었지만,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당칙 제1조는 "본당은 국법의 범위 내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한다"였다.
3. 당내 갈등
일본사회당은 결성 직후부터 도쿄시덴 요금 인상 반대 운동 등 적극적인 대중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고토쿠 슈스이의 "직접 행동론"과 다조에 테츠지 등의 "의회 정책론" 대립이 격화되면서 당내 갈등이 발생했다.
3.1. 직접 행동론 vs 의회 정책론
미국 체류 중에 아나코 생디칼리즘의 영향을 받은 고토쿠 슈스이가 귀국하여 총파업에 의한 "직접 행동론"을 당내에서 제창하자, 이에 반대하여 노동자에 의한 보통 선거 운동을 주장하는 다조에 테츠지 등의 "의회 정책론"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07년 2월 5일, 고토쿠는 자신이 발행하는 『일간 평민신문』에서 "내가 사상의 변화"를 발표하며 직접 행동론을 주장했다. 같은 달 14일에는 다조에가 "의회 정책론"을 저술하여 이에 반론했다.
4. 해산
일본사회당은 1907년 2월 22일, 내무대신에 의해 치안유지법을 적용받아 "안녕 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결사가 금지되면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