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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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도지사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의 행정 구역인 도를 통치한 직책이다. 총 202명의 도지사가 임명되었으며, 이 중 일본인은 129명(63.86%), 조선인은 73명(36.14%)이었다. 1940년 2월 1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도지사로 재직 중이던 16명의 조선인 중 6명(37.5%)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창씨개명은 일제가 조선인에게 강요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는 1939년 창씨개명령을 공포하여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변경하도록 강요했다.

일제강점기의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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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제강점기 도지사 통계

식민지 시대에 도지사로 임명된 사람은 총 202명이었다. 이 가운데 내지인(일본인)은 129명(63.86%), 조선인은 73명(36.14%)이었다.

2.1. 조선인 도지사의 비율

식민지 시대에 도지사로 임명된 인물은 202명이었으며, 이 중 일본인 도지사는 129명(63.86%), 조선인 도지사는 73명(36.14%)이었다. 1940년 2월 1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도지사를 역임했던 조선인 16명 중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6명(37.5%)이었다.

2.2. 창씨개명 현황

식민지 시대에 도지사로 임명된 202명 가운데 조선인 도지사는 73명(36.14%)이었다. 1940년 2월 1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도지사를 역임했던 조선인 16명 중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은 6명(37.5%)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