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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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맹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서경》의 대가 주감의 제자였다. 원제의 측근으로 등용되어 태중대부, 광록대부 등을 역임했으나, 권신 석현의 참언으로 좌천과 복직을 반복했다. 흉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호한야 선우와 맹약을 맺기도 했으나, 결국 다시 석현의 모함으로 급사중으로 재직 중 자결했다.

장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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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장맹은 전한 원제를 섬겼으며, 뛰어난 재능으로 주감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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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장맹
시대전한 시대
생몰년? ~ 기원전 40년 (영광 4년)
자유
본관・출신지익주한중군성고현
직관태중대부 (전한) → 광록대부 (전한) → 괴리현령 (전한) → 급사중 (전한)
진영・소속원제
가족조부: 장건


초원 3년 (기원전 46년), 원제의 스승 주감이 광록훈에 임명되자 장맹도 태중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권신 석현의 참언으로 괴리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영광 원년 (기원전 43년), 광록대부 장맹은 흉노에 사자로 가 호한야 선우에게 곡길의 행방을 묻고, 국명을 걸고 배반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귀국 후 문제가 되었으나 원제는 무마했다.

영광 4년 (기원전 40년), 장맹은 급사중으로 복직했지만, 다시 석현의 참언을 받아 자결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뛰어난 재능으로 《서경》의 대가인 주감의 제자가 되었다.

초원 3년(기원전 46년), 원제의 스승이었던 주감이 원제에게 임용되어 광록훈이 되었을 때 장맹은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용되어 함께 중용되었다. 그러나 장맹과 주감은 권신인 중서령(中書令) 석현의 참언을 받았고, 장맹은 괴리(槐里令)으로 좌천되었다.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광록대부 장맹은 거기도위(車騎都尉) 한창(韓昌)과 함께 흉노에 사자로 가, 전에 질지선우에게 사자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곡길(谷吉)이 있는 곳을 호한야선우에게 물었다. 또 북쪽으로 돌아가는 호한야선우가 약속을 지키도록, 임의로 나라의 이름을 걸고 서로 배반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이 일은 장맹이 귀국한 후 문제가 되었으나, 원제는 엄벌에 처하지 않고 무마하며 맹세도 어기지 않았다.

영광 4년(기원전 40년), 원제는 다시 장맹과 주감을 중용하여 주감을 영상서사(領尙書事)에, 장맹을 급사중(給事中)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석현의 참언을 받아 장맹은 공거사마문(公車司馬門)에서 자결하였다.

2.2. 좌천과 흉노 파견

초원 3년(기원전 46년), 원제의 스승이었던 주감광록훈으로 임용되자, 장맹은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용되어 함께 중용되었다. 그러나 장맹과 주감은 권신인 중서령(中書令) 석현의 참언을 받았고, 장맹은 괴리(槐里令)으로 좌천되었다.

영광 원년(기원전 43년), 광록대부 장맹은 거기도위(車騎都尉) 한창(韓昌)과 함께 흉노에 사자로 파견되었다. 장맹은 호한야선우에게 이전에 질지선우에게 사자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곡길의 행방을 물었다. 또한, 북쪽으로 돌아가는 호한야선우가 약속을 지키도록 임의로 국명을 걸고 서로 배반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이 일은 귀국 후 문제가 되었으나, 원제는 엄벌에 처하지 않고 무마하며 맹세도 어기지 않았다.

2.3. 복직과 죽음

영광 4년(기원전 40년), 원제는 다시 주감과 장맹을 중용하여 주감을 령상서사에, 장맹을 급사중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석현의 참언을 받았고, 장맹은 공거사마문(公車司馬門)에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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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태중대부(전한) → 광록대부(전한) → 괴리현령(전한) → 급사중(전한)
생몰년? ~ 기원전 40년 (영광 4년)

3. 가계

장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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