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송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연송은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으로, 니혼 대학 경제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유장과 이중 재봉 바늘을 발명하고, 영구 기관인 '무연료 원동 환동기'를 제작하여 특허를 취득했다. 또한,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일본의 압박에 대한 시를 짓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 중앙위원과 과도 정부 입법 의원을 역임했으며,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으며,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장연송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건국포장
이름장연송
한자 표기張連松
출생1881년 1월 27일
사망1950년 (69세)
출생지황해도 해주시
묘소국립서울현충원
독립운동 공훈
훈격건국포장 (1990년)
주요 공적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
납북
납북 시기6.25 전쟁 중
가족 관계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등록
기타 정보
관련 인물안재홍, 이광수 등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서울특별시의 국회의원 - 김웅 (정치인)
  • 서울특별시의 국회의원 - 추미애
  • 니혼 대학 동문 - 구상 (시인)
    구상(1919-2004)은 서울 출생으로 원산에서 성장하여 니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종군 기자, 언론 운동, 영남일보 편집장 등을 거쳐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시집 《초토의 시》 등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문부성에서 세계 200대 시인으로 선정되었고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니혼 대학 동문 - 미우라 켄타로
    미우라 켄타로는 1966년 일본에서 태어나 2021년 사망한 만화가로, 다크 판타지 만화 《베르세르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유작은 모리 코우지의 감수 하에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

2. 생애

장연송은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으로, 니혼 대학 경제과를 졸업했다.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 중앙위원, 과도 정부 입법 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제2대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독립운동

함경북도 길주군 길상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유장, 이중 재봉 바늘을 발명했으며, 20년 이상을 들여 나무로 영구 기관인 '무연료 원동 환동기(恒動機)'를 제작하여 1939년에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선과 도둑'이라는 논문에서 개인주의를 주장하면서 자유와 자연주의를 존중함으로써 인종 간, 민족 간의 대립을 해소하고 공존공영·상호부조해야 함을 지적했다. 일본의 착취와 압박을 받고 있는 고국의 현실을 읊은 시와, 영구 기관을 완성하여 세계에 물자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전쟁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등 사회를 하루빨리 실현하고 싶다는 내용의 시도 지었다. 이로 인해 1942년 3월 17일 용산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943년 3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으나, 같은 해 형 집행이 정지되어 출옥했다.

2.2. 해방 이후 정치 활동

해방 후 장연송은 한국민주당 중앙위원, 과도 정부 입법 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1950년 제2대 총선거에서는 동대문구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외에도 중앙경제통신사 사장, 충무공 기념사업회 이사, 국풍연구회 회장 등 다양한 단체의 대표직을 맡았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었다. 같은 해 7월 4일 오전, 자택에서 북한 측 관계자에게 납치되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 대회에 참가한 후, 지병이던 심장병과 폐병이 재발하여 그곳에서 치료받던 중 55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날짜에 대해서는 1956년 11월 6일이라는 기록과 같은 해 10월 30일이라는 기록이 있다.

2006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3. 납북과 사망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4일 오전에 자택에서 북한 측 관계자에게 납치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1956년 7월 2일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 대회에 참가한 후, 지병이던 심장병과 폐병이 재발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같은 해 11월 6일에 사망했다는 기록과 10월 30일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3. 사후

1950년 7월 4일 오전, 장연송은 자택에서 북한 측 관계자에게 납치되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지병이던 심장병과 폐병이 재발하여 그곳에서 치료받던 중 55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4. 사상

장연송은 '선과 도둑'이라는 논문에서 자유와 자연주의를 존중함으로써 인종 간, 민족 간의 대립을 해소하고 공존공영과 상호부조를 해야 한다는 개인주의를 주장했다. 또한, 일본의 착취와 압박을 받는 고국의 현실을 읊은 시와, 영구 기관을 완성하여 세계에 물자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전쟁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등 사회를 하루빨리 실현하고 싶다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

5. 평가

장연송은 일제 강점기에 여러 발명과 특허 취득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20년 이상을 들여 제작한 영구 기관 '무연료 원동 환동기'는 1939년 특허를 받았다. 또한, '선과 도둑'이라는 논문에서 개인주의를 주장하며 자유와 자연주의를 존중하고, 인종 및 민족 간 대립 해소와 공존공영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착취와 압박을 받는 고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영구 기관을 통해 전쟁 없는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정치 및 사회 활동을 했다. 한국민주당 중앙위원, 과도 정부 입법 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제2대 총선에서는 동대문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중앙경제통신사 사장, 충무공 기념사업회 이사, 국풍연구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직후 북한 측에 납치되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강제 참여했고,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6. 역대 선거 결과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48년총선무소속11,006표 (27.86%)2위낙선
1948년10.30 재보선무소속9,200표 (20.92%)3위낙선
1950년총선무소속15,074표 (36.41%)1위당선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