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성
1. 개요
장우성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한국화가로, 김은호에게 사사받아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등단했다.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제강점기 말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의 표준영정은 친일 논란으로 교체 주장이 있었고, 윤여환 교수가 새로 제작한 영정이 2007년에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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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장씨 -
장현성
장현성은 1997년 영화 《백수스토리》로 데뷔하여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여러 연기대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배우이다. -
단양 장씨 -
장하나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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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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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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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사망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2005년 사망 -
잭 킬비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 공학 기술자이자 집적 회로의 공동 발명가로, 1958년 단일 반도체 재료에 회로 부품을 집적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959년 최초의 집적 회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생애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단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경기도 여주에서 성장했다. 한학을 공부한 뒤 김은호 문하에서 한국화를 배웠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등단했는데, 첫 입선작은 바닷가의 파도와 갈매기를 묘사한 〈해빈소견〉이었다. 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며 제자를 양성하고 대한민국 동양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했고, 은관 문화훈장(1976, 박정희 대통령 수여), 금관 문화훈장(2001, 김대중 대통령 수여)을 받았다. 전통 문인화 화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하여 대한민국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는다.
문인화 전통에 따른 수묵담채 위주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초기부터 서구풍의 사실적인 표현을 도입하였다. 대표작 중 하나인 〈춤〉은 간결한 선의 힘을 강조하고 여백을 활용하는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물화, 산수화, 정물화를 즐겨 그렸고, 학과 백로도 주요 소재였다. 2001년 90세 나이로 휴대전화를 든 여인을 그린 현대적 인물화를 발표했을 만큼 말년까지 활동했다.
사후 친일에 관한 논쟁이 있는 화가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선정했는데, 일제강점기 말기 어용 전시회인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준비한 점이 쟁점이 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빠져 있어 공식적으로 친일명단에 들어간 것은 아니며, 해방 직후 친일인물을 제외하고 설립된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으로 활동했고, 임종국 '황국신민화 시절의 미술계'(1983)에도 친일 미술가 명단에 제외되어 있어 친일 논쟁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 독립운동가 성천 류달영 선생과 막역한 사이였던 장우성이 친일파였으리 만무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천 류달영 삶과 사상을 기록한 책에도 월전과 일화를 쓴 내용이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는 들어 있다. 대한민국 표준영정 제1호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유관순 표준영정도 그렸는데,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유관순 정부표준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 유족들은 장우성이 "일제시대 화가로 입문하기 위해 상을 받고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유관순 사진을 통해 그린 장우성 유관순 정부표준영정은 유관순 열사가 고문으로 얼굴이 부은 상태 사진을 참고하여 그린 영정이었기 때문에 이후 여러가지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유관순 열사 얼굴을 찾자는 논의가 있어왔으며, 장우성이 2005년 사망하면서 윤여환 충남대학교 회화과 교수가 유관순 정부표준영정을 새로 제작하게 되었다. 윤여환이 제작한 유관순 정부표준영정은 2007년 새로 지정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월전 장우성은 1912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충청북도 단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경기도 여주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2.2. 화가 등단 및 활동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해빈소견〉으로 입선하며 화단에 등단했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46~1961)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74)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76년 은관 문화훈장(박정희 대통령 수여), 2001년 금관 문화훈장(김대중 대통령 수여)을 받았다.
2.3. 작품 세계
월전 장우성은 전통 문인화의 수묵담채 기법을 바탕으로 서구적인 사실적 표현을 결합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간결한 선과 여백의 미를 살린 〈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인물화, 산수화, 정물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으며, 학과 백로 또한 즐겨 그린 소재였다. 90세의 나이에도 휴대전화를 든 여인을 그린 현대적 인물화를 발표하는 등, 말년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3. 친일 논란
월전 장우성은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로 인정받았지만, 일제강점기 말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장우성을 포함시켰는데, 일제강점기 말기 어용 전시회인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준비한 점이 쟁점이 되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장우성의 이름이 들어 있다.
3.1. 친일 논란에 대한 반론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장우성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해방 직후 친일 인물을 제외하고 설립된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으로 활동한 점, 임종국의 '황국신민화 시절의 미술계'(1983)에서 친일 미술가 명단에 제외된 점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독립운동가 류달영과의 친분을 들어 장우성의 친일 행적을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류달영은 장우성이 그린 〈기(祈)〉를 보고, 그림 속 인물들의 복장과 분위기를 통해 조선의 독립과 광영을 염원하는 장우성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한다. 훗날 일부 시민들이 이 작품을 문제 삼아 장우성을 친일파로 몰았으나, 류달영이 남긴 글 덕분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3.2. 유관순 표준영정 교체 논란
장우성은 충무공 이순신, 유관순 등의 표준영정을 그렸는데,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그가 그린 유관순의 정부표준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유족들은 장우성이 "일제시대 화가로 입문하기 위해 상을 받고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 정부표준영정은 고문으로 얼굴이 부은 상태의 유관순 사진을 참고하여 그린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 제대로 된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찾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장우성이 2005년에 사망하면서 윤여환 충남대학교 회화과 교수가 유관순의 정부표준영정을 새로 제작하게 되었고, 2007년에 새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