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크 마르셀
1. 개요
장자크 마르셀은 1949년부터 1965년까지 선수로 활동한 프랑스의 축구 선수이다. 소쇼, 마르세유, 툴롱, RC 파리 등에서 활약했으며, 1953년부터 1961년까지 프랑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44경기에 출전하여 1958년 FIFA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2014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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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장자크 뤼시앵 엘리 앙투안 마르셀 |
|---|---|
| 출생일 | 1931년 6월 13일 |
| 출생지 | 브리뇰, 바르, 프랑스 |
| 사망일 | 2014년 10월 3일 |
| 사망지 | 마르세유, 부슈뒤론주, 프랑스 |
| 신장 | 1.78m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연도: 1948–1949 클럽: 브리뇰 |
|---|---|
| 프로 클럽 | 연도: 1949–1954 클럽: 소쇼 출장: 116 득점: 11 연도: 1954–1959 클럽: 마르세유 출장: 158 득점: 23 연도: 1959–1960 클럽: 툴롱 출장: 31 득점: 4 연도: 1960–1965 클럽: 라싱 파리 출장: 121 득점: 38 |
| 통산 | 출장: 426 득점: 76 |
| 국가대표팀 | 연도: 1953–1961 국가대표팀: 프랑스 출장: 44 득점: 3 |
|---|
| 대회 | FIFA 월드컵 |
|---|---|
| 수상 내역 | 3위 (195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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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툴롱의 축구 선수 -
크리스티앙 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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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툴롱의 축구 선수 -
베르나르 카소니
프랑스 축구 선수 출신 감독인 베르나르 카소니는 선수 시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리그 1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감독으로서 여러 국가의 클럽과 알메니아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다. -
1960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레프 야신
레프 야신은 FC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22년간 활약하며 소련 리그 우승 5회 등을 달성하고 1963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소련의 전설적인 축구 골키퍼로, 소련 국가대표팀으로서 올림픽 금메달,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혁신적인 '스위퍼 키퍼' 스타일로 "검은 거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
1960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발렌틴 이바노프 (1934년생 축구인)
발렌틴 이바노프는 1934년생으로, FC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소비에트 연방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1956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1960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골든 부츠와 1962년 FIFA 월드컵 득점왕에 오른 축구 선수이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 선수 경력
마르셀은 선수 시절 동안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프랑스 U-21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중, 1953년에 프랑스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2.1. 클럽 경력
마르셀은 남부 프랑스 출신으로, 1949년에 소쇼의 유소년부에 들어가 얼마 지나지 않아 1군으로 도약했다. 그는 신체적으로 강인한 우측의 주력이 빠른 선수로, 공수 양면에서 역량을 발휘했는데, 강하게 차넣는데 도가 텄고, 공을 머리로 잘 다루었다. 미드필더로서는 이례적으로 420경기 출전 76골을 기록했다. 1949-50 시즌에 FC 소쇼에서 18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했으며, 프로 2시즌째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54년, 고향 동네로 복귀해 마르세유에 입단하여 5년을 머물며 무려 17세 연상인 라르비 벤 바레크와 함께 출전했다. 마르세유에서는 5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1958-59 시즌의 2부 강등을 계기로 클럽을 떠났다.
이후 스포르팅 툴롱에서 1년을 활동했고, RC 파리 등에서 뛰다가 1965년에 라싱 파리에서 현역 은퇴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의 공헌과 대조되게 프랑스 리그 우승 전적은 없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마르셀은 프랑스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1953년 5월부터 1961년 10월까지 44경기에 출전했다. FC 소쇼에서 10경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24경기, SC 툴롱에서 3경기, RC 파리에서 7경기를 뛰었다. 국가대표팀에서 3골을 넣었고, 4경기에서는 주장을 맡았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줄곧 주전 자리를 지켰다. 1954년과 1958년 월드컵에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스웨덴에서 열린 1958년 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다. 이는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1960년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첫 유럽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했다. 1959년까지 아르망 팡베른과 함께 재능 있는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마르셀은 소속팀에서와는 달리 주로 왼쪽에서 뛰었다. 1958년 FIFA 월드컵 준결승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전반 26분에 바바와 충돌하여 종아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그 전까지는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3. 선수 경력 이후
1965년, 마르셀은 고향 브리뇰로 돌아와 아마추어 구단에서 몇 년간 더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브리뇰 시장이었던 부친의 포도주 판매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스포츠 용품 회사인 르 코크 스포르티프에 취직했다. 마르셀은 엑-상-프로방스와 프레쥐스 사이의 작은 마을에서 은둔하며 살았고, 대중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다.
4. 사망
마르셀은 2014년 10월 3일, 부슈뒤론 마르세유 제13구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같은 날, 그의 친정 구단은 마르셀이 향년 83세에 영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