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피에르 고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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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피에르 고랭은 프랑스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영화 이론가이다.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라캉의 제자였으며,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사와 비평을 가르쳤다. 고다르와 함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결성하여 정치적 영화를 제작했으며, 이후에는 에세이 영화 "남부 캘리포니아 3부작"을 연출했다. 2001년에는 일본에서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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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피에르 고랭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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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2. 생애 및 경력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라캉의 제자인 장피에르 고랭은 1970년대에 프랑스를 떠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현재까지도 영화사와 비평을 가르치고 있다.
고랭은 1972년 『''L'Ailleurs immédiat''』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했지만, 완성 직전에 주연 여배우가 마약 문제로 체포되어 프로듀서들이 필름을 처분해 버렸다. 이 영화가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다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 장 외스타슈 감독의 『엄마와 창녀』(1973년)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4]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43년 ~ 1960년대)
프랑스파리에서 의사인 아버지를 둔 좌익 성향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0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전공했다. 루이 알튀세르, 자크 라캉, 미셸 푸코의 세미나를 들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석간지 『르 몽드』 편집자로 활동하며 많은 기사를 쓰고 정치적, 미학적 토론을 벌이며 5월 혁명으로 나아갔다.1967년, 24세 때 13살 연상의 고다르를 만났다. 고다르는 『남성, 여성』(1966년)에서처럼 젊은 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신좌익이자 시네필이었던 고랭은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고랭은 『중국 여인』(1967년)이나 『즐거운 지식』(1968년)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했고, 고다르는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3]
2. 2. 장뤽 고다르와의 만남과 지가 베르토프 집단 (1967년 ~ 1972년)
1967년, 24세 때 13살 연상의 장뤽 고다르를 만났다. 신좌익이자 시네필이었던 고랭은 고다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고랭은 『중국 여인』(1967년)이나 『즐거운 지식』(1968년)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했고, 고다르는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3]1968년, 고랭과 고다르는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여 『동풍』(1970년), 『만사 OK』(1972년),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1972년)와 같은 명백한 정치적 작품 시리즈를 함께 제작했다.[3] 1969년, 고랭은 고다르와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10년 동안 추방당했던 활동가 다니엘 콘 벤디, 브라질 영화 작가 글라우베르 로샤, 마카로니 웨스턴의 스타이자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원 잔 마리아 볼론테와 같은 유명 좌익 인사들과 함께 서부극을 찍었는데, 그것이 『동풍』이었다.
1972년,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지가 베르토프 집단은 해산했다.[4]
2. 3. 미국에서의 활동 (1973년 ~ 현재)
1973년 고랭은 프랑스를 떠나, 영화 평론가이자 화가인 매니 파버(Manny Farber)의 권유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1975년 이후, 이 대학의 시각 예술 학과에 계속 머물면서 오늘날까지 영화사 및 영화 비평 코스를 가르치고 있다.[5]영화 제작도 계속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에세이 영화 "남부 캘리포니아 3부작"이다. 즉, 『포토와 카벤고 ''Poto and Cabengo ''』(1978년), 『일상적 쾌락 ''Routine Pleasures ''』(1986년), 『나의 미친 삶 ''My Crasy Life''』(1991년)과 비디오 작품 『피터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Peter''』(1992년)이다.[6] 3부작 이전에, 할리우드로 가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필립 K. 딕 작품의 영화화를 지원받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또한, 본인 말에 따르면, 솔로 두 번째 작품 『일상적 쾌락』은 하워드 혹스 감독의 『콘돌』(1939년)의 리메이크라고 한다.[7]
2001년 3월 16일 - 3월 20일, 고랭은 일본을 방문하여 히로시마현미하라시사기시마에서 영상 워크숍을 열었다. 안도 히로시를 조감독으로, 나가시마 유리를 촬영 감독으로 하여 고다르의 『경멸』을 리메이크하는 작업을 했으며, 아사다 아키라, 이소자키 아라타 등과 세미나가 열렸다.[8]
2. 4. 일본에서의 활동 (2001년)
Jean-Pierre Gorin프랑스어은 2001년 3월 16일부터 3월 20일까지 일본을 방문하여 히로시마현 미하라시 사기시마에서 영상 워크숍을 열었다.[8] 안도 히로시를 조감독으로, 나가시마 유리를 촬영 감독으로 하여 장뤽 고다르의 경멸을 리메이크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아사다 아키라, 이소자키 아라타 등과 세미나를 가졌다.[8]3. 작품 세계
장피에르 고랭은 영화감독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은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동풍, 이탈리아에서의 투쟁, 블라디미르와 로자 등이 있다.
3. 1. 주요 작품
참조
[1]
간행물
Interview with Jean-Pierre Gorin
https://bombmagazine[...]
Bomb (magazine)
1988
[2]
위키백과
Jean-Pierre Gorin (英語版Wikipedia)
[3]
위키백과
Jean-Pierre Gorin (英語版Wikipedia)
[4]
서적
Jean-Pierre Gorin
2003-01
[5]
위키백과
Jean-Pierre Gorin (英語版Wikipedia)
[6]
위키백과
Jean-Pierre Gorin (英語版Wikipedia)
[7]
인터뷰
メルボルンでのビデオインタビュー
1987
[8]
기타
Jean-Pierre Gorin
https://web.archive.[...]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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