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당나라)
1. 개요
전기(錢起)는 중국 오(吳) 지역 출신의 당나라 시인이다. 751년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교서랑, 고공낭중 등을 거쳐 대력 연간에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대력십재자 중 한 명으로, 랑사원과 함께 "전랑"으로 불렸으며, 자연과 인생의 덧없음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시풍을 가졌다. 대표작으로 『협객을 만나다』, 『강행무제』 등이 있으며, 그의 시는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에도 사용되었다.
-
782년 사망 -
고닌 천황
고닌 천황은 쇼토쿠 천황 사후 즉위하여 후지와라 씨의 영향력 아래 정치적 갈등과 후계자 문제에 직면했으며, 국가 재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재난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다. -
782년 사망 -
테우데리쿠스 4세 (툴루즈 백작)
테우데리쿠스 4세는 9세기 초 툴루즈 백작으로 활동했으며 알바나와 결혼했고, 그의 아버지 테오디노는 815년에서 819년 사이에 활동했으며 겔론의 기욤은 그의 시대에 활동한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었다. -
8세기 시인 -
두보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으로, 이백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지며 '시성'이라 불리고, 사회 현실 비판과 민생에 대한 연민, 안사의 난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과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시사'라는 평가를 받는 등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8세기 시인 -
당 덕종
당 덕종은 779년 즉위하여 재정 개선과 양세법 시행을 시도했지만, 절도사 반발과 환관 중용으로 실패하고 반란과 토번 침입을 겪었으며, 중앙 집권 약화와 당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황제이다. -
당나라의 시인 -
두보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으로, 이백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지며 '시성'이라 불리고, 사회 현실 비판과 민생에 대한 연민, 안사의 난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과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시사'라는 평가를 받는 등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당나라의 시인 -
당 태종
당 태종은 당나라의 제2대 황제로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관의 치로 불리는 치세를 통해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균전제 등 제도를 정비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등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함께 받는 인물이다.
2.1. 관직
천보 10년(751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교서랑(校書郞), 고공낭중(考功郞中) 등을 역임했다. 대력 연간에는 태청궁사(太淸宮使),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3. 작품 세계
전기는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 중 한 명으로, 랑사원(郞士元)과 함께 "전랑(錢郞)"으로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생의 덧없음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고공집(錢考功集)』 10권이 전해진다.
전기의 대표작으로는 『협객을 만나다(逢俠者)』(오언절구(五言絶句)), 『강행무제(江行無題)』(오언절구(五言絶句))가 있다. 또한 위터 바이너가 번역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본 승려에게 작별을 고함", "계곡 어귀의 서재에서, 감찰 어사 양에게 보내는 편지", "수도 비서관인 나의 친구에게" 등이 《당시삼백수》에 수록되어 있다.
전기의 시 중 일부는 구스타프 말러가 그의 《대지의 노래》의 두 번째 악장인 "고독한 가을 밤" (Der Einsame im Herbst)에 사용했다. 가사는 꽃의 죽음과 아름다움의 쇠퇴를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연조(燕趙)의 슬픈 노래를 부르는 선비여 |
| 극맹(劇孟)의 집에서 만나다 |
| 마음속 말은 다하지 못하고 |
| 앞길은 날이 기울어가네 |
| 지척에서 풍우를 근심하고 |
| 광려산(匡廬)은 오를 수 없네 |
| 다만 구름과 안개의 굴을 의심하니 |
| 여전히 육조(六朝)의 승려가 있으려나 |
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의 대지의 노래 중 두 번째 악장인 "고독한 가을 밤(Der Einsame im Herbst)"에 전기(錢起)의 시 중 일부를 사용했다. 말러는 가사의 원문 작가를 '장사(Chang-Tsi)'로 표기했는데, 이는 전기(錢起)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사는 꽃이 지고 아름다움이 쇠퇴하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러는 전기 외에도 이백, 왕유, 맹호연 등 다른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을 《대지의 노래》에 사용했다.
3.1. 대표작
전기의 대표작으로는 『협객을 만나다(逢俠者)』(오언절구(五言絶句)), 『강행무제(江行無題)』(오언절구(五言絶句))가 있다. 또한 위터 바이너가 번역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본 승려에게 작별을 고함", "계곡 어귀의 서재에서, 감찰 어사 양에게 보내는 편지", "수도 비서관인 나의 친구에게" 등이 《당시삼백수》에 수록되어 있다.
전기의 시 중 일부는 구스타프 말러가 그의 《대지의 노래》의 두 번째 악장인 "고독한 가을 밤" (Der Einsame im Herbst)에 사용했다. 가사는 꽃의 죽음과 아름다움의 쇠퇴를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연조(燕趙)의 슬픈 노래를 부르는 선비여 |
| 극맹(劇孟)의 집에서 만나다 |
| 마음속 말은 다하지 못하고 |
| 앞길은 날이 기울어가네 |
| 지척에서 풍우를 근심하고 |
| 광려산(匡廬)은 오를 수 없네 |
| 다만 구름과 안개의 굴을 의심하니 |
| 여전히 육조(六朝)의 승려가 있으려나 |
3.2. 작품의 영향
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의 대지의 노래 중 두 번째 악장인 "고독한 가을 밤(Der Einsame im Herbst)"에 전기(錢起)의 시 중 일부를 사용했다. 말러는 가사의 원문 작가를 '장사(Chang-Tsi)'로 표기했는데, 이는 전기(錢起)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사는 꽃이 지고 아름다움이 쇠퇴하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러는 전기 외에도 이백, 왕유, 맹호연 등 다른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을 《대지의 노래》에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