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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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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성설은 생물이 이미 축소된 형태로 존재하며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17세기 정자 발견 이후 정자론자와 난자론자로 나뉘어 정자 또는 난자 안에 축소된 형태의 생물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성설은 유전 원리를 설명하며,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적 발달을 거쳐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발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인형 패러독스, 유전적 변이 설명 불가 등의 문제로 비판받았으며,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의 후성설 제기와 세포설 등장으로 점차 쇠퇴했다.

2. 전성설의 부류

1677년 정자가 발견된 이래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자론(spermist)자들과 난자론(ovist)자들로 나뉘었다. 정자론자들은 정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난자론자들은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1745년 샤를 보네가 발견한 진딧물의 단위발생은 난자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으나,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의 발생론에 의한 후성설(epigenesis)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1]

정자론자에는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등이 있고, 난자론자에는 마르첼로 말피기, 르네 앙투안 페르쇼 드 레오뮈르, 샤를 보네, 알브레히트 폰 할러(Albrecht von Haller), 라차로 스팔란차니 등이 있다.

2. 1. 정자론 (Spermism)

1677년 정자가 발견된 이래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자론(spermist)자들과 난자론(ovist)자들로 나뉘었다. 정자론자들은 정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1] 정자론자에는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등이 있다.

2. 2. 난자론 (Ovism)

생물체의 형상이 발생 이전의 난자 시기 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난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단순한 형태가 일정한 형태의 성체로 되는 것은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미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 곧 호문쿨루스가 존재하며 단지 성장을 통해 개체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성체의 모든 기관들은 이미 난자에 축소형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체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커지는 것, 즉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

1677년 정자가 발견된 이래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자론(spermist)과 난자론(ovist)의 두 부류로 나뉜다. 난자론자들은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난자론자에는 마르첼로 말피기, 르네 앙투안 페르쇼 드 레오뮈르, 샤를 보네, 알브레히트 폰 할러, 라차로 스팔란차니가 있다. 1745년 보네가 발견한 진딧물의 단위발생은 난자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으나,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의 발생론에 의한 후성설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3. 전성설에서의 유전 원리

전성설에서의 유전 원리는 모든 형질이 한쪽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것이다. 호문쿨루스가 정자 안에 있으면 아버지로부터, 난자 안에 있으면 어머니로부터 모든 형질이 유전된다고 보았다. 자손이 양쪽 부모의 형질을 모두 가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전성설은 매우 일반적인 개념이었다.[2]

3. 1. 부계 유전 (정자론)

전성설에서의 유전 원리는 곧 모든 형질이 한쪽 부모로부터 유전됨을 의미한다. 즉 호문쿨루스가 정자 안에 존재한다면 아버지로부터 모든 형질이 유전될 것이며, 반대로 난자 안에 존재한다면 어머니로부터 모든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자손이 양쪽 부모의 형질을 모두 가지는 수많은 관찰 결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전성설의 개념은 매우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2]

3. 2. 모계 유전 (난자론)

전성설에서 유전 원리는 모든 형질이 한쪽 부모로부터 유전됨을 의미한다. 즉,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난자 안에 존재한다면 어머니로부터 모든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주장하였다.[2] 자손이 양쪽 부모의 형질을 모두 가지는 수많은 관찰 결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전성설의 개념은 매우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2]

4. 전성설의 발달

전성설은 생물체의 형상이 발생 이전의 난자 또는 정자 시기 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난자나 정자같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단순한 형태가 일정한 형태의 성체로 되는 것은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미 정자와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하며 단지 성장을 통해 개체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성체의 모든 기관들은 이미 정자와 난자에 축소형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체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커지는 것, 즉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

임마누엘 칸트는 적성이 선천적이며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이라고 보았다. 칸트와 달리, 전성설은 본체계(칸트는 실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에 대한 회의론을 피한다. 이는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가 실제 세계의 합리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모두 하나님에 의해 함께 작동하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러한 유사성이 실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4. 1. 철학적 발달

피타고라스는 자손의 발생 원리를 연구한 초기 인물 중 하나로, 남성은 자손의 필수적 특성에 기여하고 여성은 물질적 기질에만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배(胚)는 형체가 미리 형성되어 발생 중에는 커지기만 하는가, 아니면 형체가 없는 상태에서 분화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성설과 후성유전학적 주장을 모두 제기했다.[3] 이후 갈렌(Galen), 레알도 콜롬보(Realdo Colombo), 지롤라모 파브리치(Girolamo Fabrici)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발전시켜 17세기에는 전성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3]

갈릴레오뉴턴의 과학적 시각과 데카르트주의(Cartesianism)는 전성설의 기계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데카르트가 제안한, 신의 간섭 없이 기계적 성질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는 원리는 당시 계몽주의 사상과도 일치했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후성설에 대한 설명은 불가능했고, 이미 형성된 성체의 축소형을 가정하는 것이 더 간단했기 때문에 일부 자연학자들은 난자에서 이미 형성된 동물의 축소형(animalcules)과 씨앗 내 식물의 축소형을 관찰했다고 주장했으며, 호문쿨루스라는 용어가 수정과 발생 논의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칸트는 적성이 선천적이며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이라고 보았다. 칸트와 달리, 전성설은 본체계(칸트는 실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에 대한 회의론을 피한다. 이는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가 실제 세계의 합리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모두 하나님에 의해 함께 작동하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러한 유사성이 실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4. 2. 역사적 발달

1677년 정자가 발견된 이래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자론자(spermist)와 난자론자(ovist) 두 부류로 나뉘었다. 정자론자들은 정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난자론자들은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난자론자에는 마르첼로 말피기, 르네 앙투안 페르쇼 드 레오뮈르, 샤를 보네, 알브레히트 폰 할러, 라차로 스팔란차니가 있고, 정자론자에는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 H. 부르하페 등이 있다. 1745년 보네가 발견한 진딧물의 단위발생은 난자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으나,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의 발생론에 의한 후성설(epigenesis)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677년 네덜란드의 미생물학자 레벤후크가 30여 종의 생물 정자를 관찰한 이후, 1694년에 하르트수커(Nicolaas Hartsoeker)는 그의 광학론(Essai de Dioptrique)에 정자 안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만 인간의 형태를 그린 이미지를 사용하였는데, 이 이미지는 현재 호문쿨루스로 불리며 전성설 이론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어 배아발생학의 역사를 다루는 거의 모든 교재에 쓰이고 있다.[4]
1695년 N. Hartsoecker에 의해 그려진 호문쿨루스(homunculus)


한편, 철학자였던 말브랑슈는 전성설을 기독교 신앙과 과학이 융합된 것으로 보았으며 최초로 각 배아는 러시아 인형(마뜨료쉬까 인형)과 같이 더 작은 배아를 무한히 가져야 한다는 가설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자와 난자 안에는 식물과 동물의 무한한 시리즈가 존재하며, 이는 충분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자연학자에 의해서만 관찰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현미경으로 더 작은 동물과 식물을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작은 축소형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우리는 이미 닭의 배아, 개구리의 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과 동물의 모든 기관은 이미 세상의 만들어짐과 동시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5]

이후, 17세기 후반에 아로마타리, 말피기, 스와메르담은 현미경을 사용하여 수많은 관찰을 시행하였고, 전성설의 이론을 더욱 정교화하였다.

18세기에, 일부 학자들이 동물의 정자가 동물의 성체와 같이 행동한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관찰결과를 기록하였지만, 일부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생식 세포 안에서 축소된 생물체를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전성설은 과학, 종교 및 철학을 반영한 결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으며, 정자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더 추상적인 논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아트뤼는 자손의 형질을 결정하는데 정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뷔퐁과 모로 역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주장하였다.[3]

18세기는 전성설, 특히 난자론이 발생에 있어 지배적인 시기였는데, 비록 전성설이 자연발생설이나 후성설과 경쟁적인 위치에 놓여있기는 하였지만 이들 두 이론은 신의 개입 없이는 생명체가 생겨날 수 없다는 기존의 종교적 사고에 의해 거부되었다.

5. 전성설과 후성설

전성설은 생물체의 형상이 발생 이전의 난자 또는 정자 시기 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난자나 정자같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단순한 형태가 일정한 형태의 성체로 되는 것은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전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미 정자와 난자 안에 성체의 축소형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하며 단지 성장을 통해 개체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성체의 모든 기관들은 이미 정자와 난자에 축소형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체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커지는 것, 즉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적성은 선천적이며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이다. 칸트의 입장과는 달리, 전성설은 본체계(칸트는 실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의 본질에 대한 회의론을 피한다. 이는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가 실제 세계의 합리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모두 하나님에 의해 함께 작동하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러한 유사성이 실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5. 1. 전성설의 오류와 부정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전성설, 특히 정자 안에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존재한다는 정자론자들의 주장은 소위 러시아 인형 패러독스로 반박되었다. 이는 인간의 정자 속에 인간의 형태가 들어가 있다면 매우 긴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인간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그리고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된다고 보면 정자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간의 축소형이 존재하여야 하지만 인형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의 축소형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성설은 세대 간의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이론으로, 유전적인 변이로 인한 진화와 돌연변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오류가 있다. 전성설에 따르면 생물체는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므로 돌연변이와 진화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5. 2. 후성설의 제기와 세포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독일 발생학자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볼프는 후성설을 다시 제기하였다. 그는 배아의 발생 과정을 관찰한 결과 각 기관은 성체와는 무관한 조직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전성설에 따르면 배아 발생 초기에 존재한다고 한 심장과 혈관은 배아에서 새로 형성되고, 소화관 역시 원래 편평한 조직이 접히면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그는 이 관찰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처럼 창자의 형성이 제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후성설이 옳다고 믿는다.”[1] 하지만 볼프는 개체가 매 세대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것을 설명하고자 미확인 힘인 '본질적인 힘'(vis essentialis)을 도입하였다. 그는 중력과 자기장처럼 자연의 법칙을 따라 작용하는 생기력이 배아의 발생을 조직화할 것이라고 하였다.[1]

18세기 후반과 19세기의 자연학자들은 볼프의 사상을 받아들였으나, 19세기 중엽 세포설이 출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후성설이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6. 칸트의 견해 (참고)

칸트에 따르면, 적성은 선천적이며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이다. 칸트의 입장과는 달리, 전성설은 본체계(칸트는 실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의 본질에 대한 회의론을 피한다. 이는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가 실제 세계의 합리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모두 하나님에 의해 함께 작동하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러한 유사성이 실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7. 비판적 관점

칸트는 적성이 선천적이며 창조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이라고 보았다. 칸트와 달리, 전성설은 본체계(칸트는 실제 세계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의 본질에 대한 회의론을 피한다. 전성설은 인간 정신의 합리적 구조가 실제 세계의 합리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인간 정신과 실제 세계 모두 하나님에 의해 함께 작동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인간은 실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참조

[1] 서적 발생생물학 라이프사이언스 2007
[2] 서적 Genetics : A Conceptual Approach W.H. Freeman & Company 2008
[3] 서적 A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Marcel Dekker, Inc 2002
[4] 서적 The Ovary of Eve: Egg and Sperm Preforma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5] 서적 De la recherche de la vérité (The Search After Truth) 1674-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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