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 시씨
1. 개요
절강 시씨는 시문용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문용은 명나라 병부시랑의 아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한 무장이며, 전쟁 후 부상으로 귀국하지 않고 경상도 성주에 정착했다. 그는 땅을 잘 보는 능력으로 벼슬을 얻어 선조에게 첨지중추부사로 제수되었고, 영조 때 참판으로 추증되었다. 또한 영조는 시문용의 후손들을 천역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전교하였으며, 정조 때 그의 자손들을 관직에 등용했다.
2. 역사
2.1. 시조 및 기원
시조 시문용(施文用, 1572년~1643년)은 명나라 병부시랑을 지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행영중군(行營中軍)으로 참전했던 무장(武將)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부상으로 귀국하지 않고 경상도 성주에 정착하였다. 두 번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창녕 장씨인 장함(張涵)의 딸과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나중에는 정인홍의 조카딸과 결혼했다. 시문용은 땅을 잘 보는 것으로 천거되어 벼슬을 얻었다. 선조가 첨지중추부사를 제수했고, 영조 때는 참판을 추증하면서 '시문용 후손들을 천역(賤役)의 명단에 이름을 두지 말라.'고 전교했다. 1793년(정조 17년) 시문용의 자손들을 관직에 등용했다.
2.2. 조선 정착 및 혼인
시조 시문용(施文用, 1572년~1643년)은 명나라 병부시랑을 지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행영중군(行營中軍)으로 참전했던 무장(武將)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부상으로 귀국하지 않고 경상도 성주에 정착하였다.
시문용은 두 번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창녕 장씨인 장함(張涵)의 딸과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이후 정인홍의 조카딸과 재혼하였다.
시문용은 땅을 잘 보는 것으로 천거되어 벼슬을 얻었다. 선조가 첨지중추부사를 제수했고, 영조 때는 참판을 추증하면서 '시문용 후손들을 천역(賤役)의 명단에 이름을 두지 말라.'고 전교했다. 1793년(정조 17년) 시문용의 자손들을 관직에 등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