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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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절강 장씨는 한나라 공신 장량의 후손인 장해빈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장해빈은 명나라 태의감 장응화의 아들이며,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군위에 정착하여 절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2000년에는 약 3,300명이 있었다.

절강 장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절강 장씨
한자 표기浙江 張氏
국가한국
지역절강성
창시자장해빈
기타 정보
2015년 인구3,987명

2. 역사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한나라 장량(기원전 189년)의 후손이라고 한다. 장해빈의 증조부 장맹경(張孟慶)은 명나라 국자진사(國子進士), 할아버지 장충원(張忠源)은 명나라 과거에 등제되어 명나라 관청의 자사(刺史), 아버지 장응화(張應華)는 명나라 태의감(太醫監)을 지냈다. 장해빈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 증성(甑城)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장해빈을 1세 조상으로 하고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2.1. 시조

한나라 장량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는 장해빈(張海濱)이 시조이다.

장해빈의 아버지 장응화(張應華)는 명나라 태의감(太醫監)이었고, 할아버지 장충원(張忠源)은 명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자사(刺史)를 지냈다. 증조부 장맹경(張孟慶)은 명나라 국자진사(國子進士)였다.

장해빈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 증성(甑城)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귀국하지 못하여 군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은 장해빈을 1세 조상으로 하고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2000년 인구는 3,300명이다.

2.2. 조선 정착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한나라 공신 장량(기원전 189년)의 후손이라고 한다.

장해빈의 아버지는 장응화(張應華)로 명나라 태의감(太醫監)이었고, 할아버지는 장충원(張忠源)으로 명나라 과거에 등제되어 명나라 관청의 자사(刺史)였다. 증조부는 장맹경(張孟慶)으로 명나라 국자진사(國子進士)였다.

장해빈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의 증성(甑城) 전투에서 유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장해빈을 1세 조상으로 하고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2.3. 본관

절강 장씨의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한나라 공신 장량(기원전 189년)의 후손이라고 한다.

장해빈의 아버지 장응화(張應華)는 명나라 태의감(太醫監)이었고, 할아버지 장충원(張忠源)은 명나라 과거에 등제되어 자사(刺史)를 지냈다. 증조부 장맹경(張孟慶)은 명나라 국자진사(國子進士)였다.

장해빈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 증성(甑城) 전투에서 유탄을 맞아 부상을 입고 귀국하지 못하여 군위군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이 장해빈을 1세 조상으로 하고,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3,300명으로 집계되었다.

3. 인구

2000년 인구 조사에서 절강 장씨는 3,300명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