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삼
1. 개요
정구삼은 충청북도 옥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칭화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신채호와 함께 '동국역사' 편찬에 참여했다. 1945년 톈진 한국 교민회 사무국장과 구호부장을 역임했고, 해방 후 농업에 종사하며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옥천군 지부장을 지냈다. 1948년 초대 총선에서 옥천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6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79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옥천군 출신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옥천군 출신 -
박덕흠
박덕흠은 충청북도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소속 4선 국회의원으로, 건설업계와 학계 경력을 바탕으로 국토교통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정보위원장직을 역임했으나 보수 성향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1979년 사망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1979년 사망 -
차지철
차지철은 5·16 군사 정변에 가담하여 정계에 입문한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을 지내다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며 권력 남용으로 비판받았고 10·26 사건 때 김재규에게 살해당했다.
2. 생애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이다. 관립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의 칭화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고 베이징 우정국에서 근무했다. 톈진에서 신중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상하이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신채호와 함께 동아시아 역사 교과서인 '동국역사' 편찬에 종사했다.
1945년에는 톈진 한국 교민회 사무국장 겸 구호부장을 맡았다. 해방 후 귀국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47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옥천군 지부장이 되었고, 1948년 초대 총선거에 옥천군 선거구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1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69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79년 3월 31일 오전, 지병으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자택에서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1. 학창 시절 및 독립운동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으로, 관립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에 있는 칭화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한 후 베이징 우정국에서 근무했다. 톈진에서 신중신문의 기자를 하였고, 상하이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신채호와 함께 '동국역사'라는 동아시아의 역사 교과서 편찬에 종사했다. 1945년에는 톈진 한국 교민회 사무국장 겸 구호부장을 맡았다.
2.2. 제헌 국회의원 활동
정구삼은 초대 총선거에 충북 옥천군 선거구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8년 총선에서 11,561표(33.44%)를 얻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다.
2.3.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구삼은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이다. 관립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의 칭화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고 베이징 우정국에서 근무했다. 톈진에서 신중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상하이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신채호와 함께 동아시아 역사 교과서인 '동국역사' 편찬에 종사했다.
1945년에는 톈진 한국 교민회 사무국장 겸 구호부장을 맡았다. 해방 후 귀국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47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옥천군 지부장이 되었고, 1948년 초대 총선거에 옥천군 선거구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1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69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79년 3월 31일 오전, 지병으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자택에서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정구삼은 8남 2녀를 두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당선 이후 줄곧 서울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중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연락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