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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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문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제2, 3, 4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동흥중학교를 졸업하고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귀국 후 경흥군 금융조합장과 대한농민회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당무위원, 경상북도당위원장 등 주요 직책을 거쳤다. 자유당 소속으로 제3, 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의원 시절 영동선 철도 노선 변경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86세에 사망했다.

정문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정문흠
출생일1892년 9월 1일
출생지조선 경상도 봉화
사망일1976년 3월 1일
사망지대한민국 경상북도 봉화
국적대한민국
본관청주(淸州)
직업정치인
학력
학력1911년 청나라 만주 지린성 룽징 둥싱 중학교 졸업
경력
경력자유당 당무위원 겸 정책심의위원장
정당
정당무소속
의정 활동
의원 선수3
의원 대수2·3·4
웹사이트
웹사이트두산백과
대한민국헌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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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경상북도 봉화군 출신으로, 1959년 자유당 총무, 1966년 자유당 정책심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2.1. 독립운동과 해방 이전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했고, 1923년 만주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를 졸업했다. 이후 귀국하여 함경북도 경흥군 금융조합장을 역임했다.

2.2. 정치 활동

대한농민회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제2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당무위원, 경상북도당위원장, 원내총무, 정책심의위원장 등 주요 직책을 거쳤다. 제3대 및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연이어 당선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3. 사망

1976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였다.

3. 논란 및 비판

정문흠은 영동선 철도 노선 변경 과정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영동선 철도 노선 변경 논란 (억지춘양)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 영동선 철도 노선 변경 논란 (억지춘양)

억지춘양한국어이라는 관용 표현의 어원 중 하나는, 법전역에서 영동선의 녹동역까지의 선형이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을 경유하기 위해 "Ω" 자 형태로 크게 우회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국회의원을 지낸 정문흠의 "아전인수"격 영향이라고 한다.

4.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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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48년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대한독립촉성국민회10,431표 (35.91%)2위낙선
1950년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13,530표 (39.77%)1위당선초선
1954년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7,458표 (21.67%)1위당선재선
1958년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24,285표 (61.09%)1위당선3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