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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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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상진은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말 소련으로 이주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 해군으로 참전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하여 김일성종합대학 학과장, 문화선전성 제1부상 등을 역임했으나, 숙청되어 소련으로 돌아갔다. 이후 소련 및 카자흐스탄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1989년부터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지냈다. 2013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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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 (1918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정상진
원래 이름Юрий Данилович Тен (유리 다닐로비치 텐)
1946년 정상진
1946년 북한 주둔 당시 소련군 장교 시절 가족사진
출생일1918년 5월 5일
출생지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프리모르스키 변경주 블라디보스토크
사망지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거주지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가북괴 인민 정부 문화선전성
별칭다른 이름: 정율(鄭律, 정률)
학력소련 크즐오르다 사범대 노문학부 학사
경력소련 태평양함대 직속 해병대 복무
강원 원산 인민위원회 교육부 차장
함남 인민위원회 교육부 차장
문예총 부위원장
김대 노문학부장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정당무소속
배우자있음 (일찍 사별함)
자녀2녀
정치 경력
직책초대 제2부상
주석김두봉
수상김일성
장관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임기1948년 9월 2일 ~ 1953년 9월 9일
직책제11대 제1부상
주석김두봉
수상김일성
장관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임기1953년 12월 1일 ~ 1954년 4월 12일
직책제14대 제1부상
주석김두봉
수상김일성
장관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임기1955년 3월 24일 ~ 1955년 9월 2일
군사 경력
참전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복무 기간1942년 ~ 1949년
군 복무소련군 해병대
조선인민군 해군
계급소련군 해병 대위 (1945년)
조선인민군 해군 대좌 (1949년)
훈장
서훈소비에트 적기훈장
소비에트 명예훈장
소비에트 2급훈장
웹사이트

2. 생애

문화사절단 대표로 해외순방 당시 정상진(1955년, 가운데 인물)


문화선전성 제1부상 시절 정상진(1955년, 오른쪽에서 2번째 인물)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37년 8월 제빵공장의 노동자였던 부친이 소련안전기관에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그는 부친의 죽음 이후부터 소련의 체제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3] 이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그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에 처해졌다. 1940년에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에서 학사 취득 이후 크즐오르다주 잘라가 쉬구역의 중등학교에서 문학 교사로 지내다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기,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서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승전 후 소련군으로부터 석방권을 권한 받아 청진정치범들을 석방했다.[3]

해방 후 1945년 9월 19일에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마중했다. 그는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김일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소련 정치부에 김일성은 없었다고 보고하면서 그가 김일성임을 알았다고 한다.[5] 그는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하였다.[6]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 직과 문학 및 예술협회 부회장과 북괴 인민 정부 수립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을 지냈고,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에 해당)을 역임했다.

이후 최승희, 홍명희 등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숙청되면서 1957년 소련으로 돌아가 타쉬켄트의 고급당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61년에는 크즐오르다와 알마타의 레닌기치의 편집부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한인재단의 이사장, 1992년부터는 북한민주화 및 해방재단의 이사장직을 겸임했다.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1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7]

2. 1. 초기 생애와 소련 군 복무

정상진은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37년 부친이 소련안전기관에 체포되어 총살되면서 소련 체제를 불신하게 되었고,[3] 이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1940년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문학 교사로 재직했다.[3]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기,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서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받았다. 소련의 대일 참전 당시 웅기, 나진, 청진 상륙 작전에 참가했다.[3] 종전 후에는 소련군으로부터 석방권을 권한받아 청진정치범들을 석방했다.[3]

1945년 9월 19일, 소련 정치부의 지시를 받고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맞이했다.[5] 그는 김일성을 처음에 알아보지 못하고 소련 정치부에 보고한 후에야 그가 김일성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5] 또한, 1945년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했다.[6]

2. 2. 북한에서의 활동과 숙청

정상진은 해방 후 1945년 9월 19일에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맞이했다.[5] 그는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김일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소련 정치부에 김일성은 없었다고 보고하면서 그가 김일성임을 알았다고 한다.[5]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하였다.[6]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 직과 문학 및 예술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정부 수립 후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을 지냈고,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에 해당)을 역임했다.[1] 한국 전쟁 발발 시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병기총국 부국장을 맡았다.[1] 1952년에는 문화선전성 제1부상이 되었다.[1]

이후 최승희, 홍명희 등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숙청되면서 1957년 소련으로 돌아가 타쉬켄트의 고급당학교에서 수학하였고[1], 1961년에는 크즐오르다와 알마타의 레닌기치의 편집부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2. 3. 소련과 카자흐스탄에서의 활동

정상진은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제빵공장 노동자였던 부친이 소련안전기관에 체포되어 총살되면서 소련 체제를 불신하게 되었고,[3] 이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1940년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크즐오르다주 잘라가 쉬구역의 중등학교에서 문학 교사로 재직했다.[3]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기,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서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종전 후에는 소련군으로부터 석방권을 받아 청진정치범들을 석방하기도 했다.[3]

해방 후, 1945년 9월 19일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마중했다.[5]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하였다.[6]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 문학 및 예술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북괴 인민 정부 수립 후에는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과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역임했다.

이후 최승희, 홍명희 등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어 1957년 소련으로 돌아갔다.[1] 타쉬켄트의 고급당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61년에는 크즐오르다와 알마타의 레닌기치 편집부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한인재단의 이사장, 1992년부터는 북한민주화 및 해방재단의 이사장직을 겸임했다.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2. 4. 대한민국과의 관계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7]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2. 5. 사망

2013년 6월 1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7]

3. 비판 및 논란

3. 1. 김일성 우상화 비판

3. 2. 민족문제에 대한 관점

4. 상훈

정상진은 적기훈장(1945년), 조선조국해방기장(1947년), 대일본전승기장(1956년 1월 28일), 조국전쟁훈장(1985년), 명예훈장(1988년) 등을 수여받았다. 2차대전 승리 40주년 기념 2급 훈장과 언론 명예 훈장도 수여받았다.

참조

[1] 뉴스 [Why]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https://news.chosun.[...] 2019-12-12
[2] 웹사이트 http://newslibrary.n[...]
[3] 웹사이트 오늘의 추천방송)KBS 1TV ‘KBS파노라마’ http://www.pdjournal[...] pd저널 2014-08-28
[4] 웹사이트 정상진(鄭尙進, 1918~2013) 전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의 일대기 http://www.loc.gov/r[...] 미의회도서관
[5] 뉴스 KBS 6.25 특집 프로 마련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0-06-15
[6] 뉴스 (Why)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9-06-20
[7] 뉴스 한민족 격동의 현대사의 산 증인, 정상진 선생 별세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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