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옹주 (세종)
1. 개요
정안옹주는 세종과 숙원 이씨의 딸로, 1441년에 태어났다. 1453년 심안의와 혼인하여 1남 1녀를 낳았으며, 단종은 면포 6백 필로 집을 하사했다. 1461년에 사망했으며, 세조는 조회를 중지하고 부조했다. 정안옹주의 어머니인 숙원 이씨는 외손자의 관직을 청탁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안옹주 (세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 작위 | 조선 세종의 옹주 |
|---|---|
| 배우자 |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 |
| 자녀 | 1남 1녀 ----심언 · 최맹사의 처 심씨 |
| 아버지 | 세종 |
| 어머니 | 숙원 이씨 |
| 출생일 | 1441년 |
| 사망일 | 1461년 11월 26일 |
| 능묘 | 심안의 · 정안옹주 합장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명덕리원래 남양주시에 심안의와 정안옹주의 묘가 각각 따로 있었는데, 포천시로 이장하면서 합장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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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441년 세종과 숙원 이씨의 딸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년) 단종이 강맹경에게 명하여 사족 자제 중에 배필을 찾게 한 끝에 관찰사 심선의 아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에게 하가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단종은 이에 면포 6백 필로 집을 사서 하사하였다.
1461년(세조 7년) 10월 16일 훙서하였으며, 이에 세조는 사흘간 조회를 중지하고 쌀·콩 1백 석과 종이 2백 권, 백저포(白苧布)·면포(綿布) 각 10필, 베[布] 60필을 부조하였다. 정안옹주의 남편인 심안의는 1476년(성종 7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하고 있다.
정안옹주의 어머니인 숙원 이씨는 딸과 사위가 죽은 이후에도 생존하여 1490년(성종 21년), 자신의 외손자이자 정안옹주의 아들인 심언(沈漹)의 관직을 당시 국구였던 정현왕후의 아버지 영원부원군 윤호에게 청탁한 일로 물의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