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왕후
1. 개요
정현왕후는 조선 성종의 계비이자 중종의 어머니이다. 1462년에 태어나 1473년 후궁으로 입궁하여 숙의에 책봉되었고, 1480년 왕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는 왕대비가 되었으며, 중종반정 이후에는 자순화혜왕대비로 불렸다. 1530년에 사망하여 선정릉에 안장되었으며, 시호는 정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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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정현왕후 |
|---|---|
| 한글 | 정현왕후 윤씨 |
| 한자 | 貞顯王后 尹氏 |
| 별칭 | 자순왕대비 |
| 휘 | 창년(昌年) |
| 시호 |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 |
| 출생일 | 1462년 7월 30일 |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신창현 관아 |
| 사망일 | 1530년 9월 23일 |
| 사망지 | 조선 한성 경복궁 동궁 정침 |
| 능묘 | 선릉(宣陵) |
| 매장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
| 가문 | 파평 윤씨 (본관), 전주 이씨 (혼인) |
| 왕비 재위 | 1480년 11월 8일 ~ 1495년 1월 29일 (음력) |
|---|---|
| 왕대비 재위 | 1495년 1월 19일 ~ 1530년 9월 23일 |
| 아버지 | 윤호, 영원부원군 |
|---|---|
| 어머니 | 담양 전씨, 연안부부인 |
| 배우자 | 이혈, 성종 (1473년–1495년) |
| 자녀 | 순숙공주 신숙공주 이역, 중종 이변, 전성군 이연, 은천군 |
| 왕비 | 조선 성종의 계비 |
|---|---|
| 전임 왕비 | 폐비 윤씨 |
| 후임 왕비 | 폐비 신씨 |
| 왕대비 | 조선의 왕대비 |
| 전임 왕대비 | 인수왕대비 한씨 인혜왕대비 한씨 |
| 후임 왕대비 | 성렬왕대비 윤씨 (문정왕후) |
| 존호 | 자순화혜(慈順和惠) |
|---|---|
| 휘호 | 소의흠숙(昭懿欽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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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년 출생 -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는 카스티야 왕위 계승 분쟁의 중심인물로, 엔리케 4세의 딸로 인정받았으나 사생아 의혹 속에 이사벨 1세와 왕위를 다투다 왕위 계승권을 잃고 자신을 여왕으로 여기며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
1462년 출생 -
심순경
심순경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연산군 폐위와 중종 옹립에 기여하여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충청도 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인물이다. -
조선의 왕대비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조선의 왕대비 -
효의왕후
효의왕후는 조선 정조의 왕비이며, 김시묵의 딸로 청풍 김씨 가문 출신이며, 영조의 뜻에 따라 정조와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고, 정조 사후에는 왕대비가 되었으며 융건릉에 정조와 합장되었다. -
조선의 왕비 -
순정효황후
순정효황후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황후로, 황태자비 책봉 후 순종 즉위와 함께 황후가 되었으나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이왕비로 격하되었고, 순종 사후에는 대비로 불리다 한국 전쟁 중 창덕궁을 지키고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낙선재에서 지내다 심장마비로 사망 후 유릉에 합장되었다. -
조선의 왕비 -
명성황후
명성황후는 1851년 민치록의 딸로 태어나 고종의 왕비가 되었으며, 개화 정책을 추진하고 외세의 개입을 겪었으며,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후 명성태황후로 추존되었다.
2. 생애
1462년(세조 8년)에 태어난 정현왕후는 성종 4년(1473년)에 후궁으로 입궁하여 내명부 종2품 숙의에 책봉되었다. 1478년에는 순숙공주를 낳았다. 성종 10년(1479년) 6월 2일에 윤씨 왕비가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자, 이듬해 성종 11년(1480년) 10월에 성종의 계비로 간택되었고, 같은 해 11월 8일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친모를 폐위 및 사사로 잃은 원자 연산군의 적모가 되었다. 왕비가 된 후 진성대군(후의 중종)을 출산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하여 국왕이 됨에 따라 왕대비가 되었고, 연산군 2년(1496년)에 자순(慈順)의 존호를 받아 자순왕대비로 불리게 되었다. 연산군 11년(1505년)에는 존호에 화혜(和惠)가 더해져 자순화혜왕대비가 되었다. 1506년 9월 2일에 일어난 중종반정 때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상계를 받았다.
중종 25년(1530년) 8월 22일에 승하하였다. 정현왕후는 아들 중종의 즉위 후 조용한 생활을 보냈으며, 중종은 어머니의 덕을 칭송하며 "대비는 인자하여 족속들과 화목하였으며 외척을 위해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었을 때는 한때 원자(후의 인종)를 대신하여 보호하고 길렀다. 같은 해 9월, 시호가 정현왕후(貞顯王后)로 정해졌고, 유언에 따라 남편 성종의 묘소인 선릉에 안장되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1462년(세조 8년) 6월 25일, 충청도 신창의 관아에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와 연안부부인 전씨(延安府夫人 田氏)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이며 이름은 창년(昌年)이다. 당시 아버지 윤호가 현감으로 부임중이었던 신창(新昌)에서 '창(昌)'자를 떼어 지었다.
정현왕후의 할아버지인 윤삼산은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왕후와 6촌이며, 성종과 정현왕후는 윤척을 공통 조상으로 하는 10촌지간이다.
또한 정현왕후의 증조모이자 윤삼산의 어머니인 근순택주 한씨는 한상질의 딸이며 한명회의 고모이다. 따라서 한명회는 윤삼산의 외사촌 동생이 되고, 성종의 첫번째 왕비 공혜왕후는 정현왕후의 아버지 윤호와 6촌이 된다.
정현왕후는 양반 사회의 특권층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한글과 한자 교육을 받아 뛰어난 서예 실력을 갖추었다. 천성적으로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지혜롭고 총명하며, 당시 여성들보다 예의 바르고 아름다우며 따뜻한 마음씨로 알려져 있었다.
아버지 쪽으로는 세조의 계비인 정희왕후가 5촌 당숙모이고, 아들인 중종의 계비가 될 문정왕후는 7촌 당숙모였다. 미래의 남편인 성종과는 윤척을 고조 할아버지로 공유하는 4촌 종질녀 관계였다.
| 관계 | 이름 |
|---|---|
| 부 | 윤호 |
| 모 | 연안부부인 전씨 |
| 형 | 윤은로(생몰년 미상) |
| 동생 | 윤탕로 (1466년 ~ 1508년) |
2.2. 왕비 책봉과 궁중 생활
1473년(성종 4년) 6월 14일, 내명부 종2품 숙의(淑儀)에 책봉되어 입궁하였다. 1478년(성종 9년)에는 순숙공주를 낳았다.
폐비 윤씨가 투기, 미신, 저주 행위 등의 부도덕한 행위를 이유로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난 후, 성종은 대신들에게 숙의 윤씨를 새로운 왕비로 택했음을 전교하였다. 정현왕후는 공혜왕후와 폐비 윤씨에 이어 성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되었다.
1480년(성종 11년) 11월 8일, 창덕궁 선정전에서 교명과 책보를 받고 왕비에 책봉되었다. 폐비 윤씨 사사 후, 연산군을 돌보았는데, 연산군은 성종의 묘지명을 읽기 전까지 자신을 정현왕후의 아들로 알고 자랐다.
성종과의 사이에서 순숙공주를 비롯한 공주 3명과 진성대군(중종)을 낳았는데, 공주 2명은 조졸하였고 순숙공주 또한 11세에 요절하였다.
1486년(성종 17년) 선정전에서 양로연을 베풀었다. 1489년(성종 20년)과 1494년(성종 25년)에도 양로연을 베풀었으며, 1492년(성종 23년)과 1493년(성종 24년)에는 내외명부를 이끌고 후원 채상단에서 친잠례를 거행했다.
2.3. 왕대비 시절과 중종반정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다. 1496년(연산군 2년) 자순(慈順)의 존호를 받았고, 이후 화혜(和惠)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연산군은 즉위 후 성종의 묘지명을 읽다가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갑자사화를 일으켜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형하였다. 이때 계모인 정현왕후의 침전 밖으로 가서 장검을 들며 밖으로 나오라고 행패를 부렸으나, 왕비 신씨가 연산군을 극구 말려 보호하였다.
시어머니인 소혜왕후가 죽고 연산군이 상의 기간을 줄이려 하자 정현왕후는 "삼년복은 천자(天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천하의 공통된 상사인데 어찌 단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감히 따르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산군이 화를 내며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리가 있는 법인데, 임금의 법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하자, 마지못해 이를 따랐다.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아들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하였다.
2.4. 중종 시대와 죽음
1530년(중종 25년) 8월 22일, 정현왕후는 동궁의 정침에서 향년 69세로 사망했다. 정현왕후는 죽으면서 薨중국어이라는 한자 표현을 사용했다.
사신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대비는 인자하여 족속들과 화목하였으며 외척을 위해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왕세자(인종)가 탄생한 지 열흘도 못되어 장경왕후가 사망하였는데, 대비가 어루만져 보호하면서 하지 않은 일이 없이 다 했다.
정현왕후는 아들 중종의 즉위 후 조용한 생활을 보냈으며, 중종은 어머니의 덕을 칭송하며 "대비는 인자하여 족속들과 화목하였으며 외척을 위해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사후 시호는 ‘정’(貞)은 훌륭한 사상의 성취를, ‘현’(顯)은 궁궐 밖에서의 행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되었다.
정현왕후의 능은 선릉(서울특별시 강남구)으로, 남편 성종과 그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와 함께 묻혀있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 윤호, 영원부원군 (1424년 – 1496년)
* 어머니 − 연안부부인 전씨 (1421년 – 1500년)
* 남동생 − 윤은로 (1464년–1530년)
* 남동생 − 윤탕로 (1466년 – 1508년)
* 배우자 − 성종 (1457년 – 1495년)
* 양자 − 연산군 (1476년 – 1506년)
* 딸 − 순숙공주 (1478년 – 1488년)
* 딸 − 신숙공주 (1485년–1486년)
* 아들 − 중종 (1488년 – 1544년)
4. 등장 매체
| 구분 | 작품명 | 방송사/상영시기 | 배우 |
|---|---|---|---|
| 드라마 | 풍란 | MBC (1985년) | 최명길 |
| 드라마 | 한명회 | KBS (1994년) | 조민희 |
| 드라마 | 장녹수 | KBS (1995년) | 박영귀 |
| 드라마 | 조광조 | KBS (1996년) | 김자옥 |
| 드라마 | 왕과 비 | KBS (1998년 ~ 2000년) | 윤지숙) |
| 드라마 | 여인천하 | SBS (2001년 ~ 2002년) | 이보희) |
| 드라마 | 대장금 | MBC (2003년 ~ 2004년) | 엄유신) |
| 드라마 | 왕과 나 | SBS (2007년 ~ 2008년) | 이진) |
| 드라마 | 인수대비 | JTBC (2011년 ~ 2012년) | 한보배→고정민 |
| 드라마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 MBC (2017년) | 김경화 |
| 드라마 | 7일의 왕비 | KBS2 (2017년) | 도지원 |
| 영화 | 연산일기 | (1988년) | 반효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