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기 (18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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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연기(1891년)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경상남도 거창 출신으로, 1911년 조선총독부 유학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관료로 근무하며 여러 군수를 역임했다. 1938년 전라북도 참여관, 1941년 퇴관 후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다. 1945년 전라북도지사를 역임했으나, 광복 후 미 군정에 의해 해임되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

정연기 (1891년)
기본 정보
이름정연기
한글정연기
한자鄭然基
가타카나チョン・ヨン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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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제강점기 이전의 생애

1911년 한성외국어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제국대학 임학과에 입학, 1914년 졸업 후 아이치현에서 사방 공사 현장을 견학했다.

2.1. 출생과 초기 교육

1891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출생하였다. 1911년 한성외국어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도쿄 제국대학 임학실과에 입학하여 1914년 졸업하였다. 그해 아이치현에서 사방 공사 현장을 견학했다.

2.2. 도쿄 유학

1911년 조선총독부가 선발한 유학생으로 뽑혀 도쿄 제국대학 임학과에 입학했고, 1914년 졸업 후 아이치현에서 사방 공사 현장을 견학했다.

3. 일제강점기 활동

1911년 조선총독부가 선발한 유학생으로 뽑혀 도쿄 제국대학 임학과에 입학했고, 1914년 졸업 후 현장 견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1941년 퇴관 후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초본연기'로 창씨개명했다.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해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부장,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3.1. 조선총독부 관료 생활

1915년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산림과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1920년에는 식산국으로 전근했다.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일하다가 1924년 강원도 삼척군 군수로 발령받았다. 이후 강원도 지역에서 원주군, 고성군, 강릉군 군수를 차례로 맡았다.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을 수여받았고, 1934년 훈6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평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3.2. 친일 행적과 서훈

정연기는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으로,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으며,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전까지 전쟁 지원을 위한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부장,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위원 등을 지냈다. 특히 1945년 결성된 대화동맹과 대의당은 일제의 패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성전필승’을 내세운 극렬 단체였다.

1945년 6월 16일 전라북도지사로 부임하였으나,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유임되었다가 9월 2일 미 군정 주둔과 동시에 해임되었다. 그해 11월까지 미군정에 의해 도지사 고문 자격으로 출근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 참여관, 총독부 사무관 네 부문에 선정되었고,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중추원과 관료 두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4년에 대한민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

3.3. 중추원 참의 및 친일 단체 활동

정연기는 일제 강점기 말기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전쟁 지원을 위한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부장,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위원 등을 지냈다. 이 중 대화동맹과 대의당은 일제의 패전이 거의 확실해진 1945년에 ‘성전필승’을 내걸고 만들어진 극렬 단체이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사무국 노동부장 등을 겸임했다.

4. 광복 이후

1945년 광복 직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부장,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위원 등을 지내며 일제를 위한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이 가운데 대화동맹과 대의당은 일제의 패전이 가시화된 1945년에 '성전필승'의 기치를 내걸고 결성된 극렬 단체이다.

4.1. 전라북도지사 유임과 해임

1945년 6월 16일 전라북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유임되었으나, 9월 2일 미 군정 주둔과 동시에 해임되었다. 정연기는 그해 11월까지 미군정에 의해 도지사 고문 자격으로 출근하였다.

4.2.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 참여관, 총독부 사무관의 네 부문에 선정되었고,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중추원과 관료 두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