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숭
1. 개요
정재숭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5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병조좌랑, 지평, 정언 등을 거쳐 광주부윤,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갑인예송 이후에도 우승지를 지냈다. 경신환국 이후 보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이조판서, 대사헌, 우의정을 거쳐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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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사망 -
김만중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김만중은 명문 양반 가문 출신으로, 암행어사, 공조 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 요직을 역임하며 숙종의 궁녀 장씨 총애를 비판하다 유배 생활을 했고, 어머니를 위해 지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비롯한 저서를 통해 국어 문학 발전에 기여하며 주자학적 세계관과 불교적 사상을 융합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
1692년 사망 -
헨드릭 하멜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원으로, 제주도 표류 후 13년간 조선에 억류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멜 표류기를 통해 조선의 모습과 풍습을 유럽에 상세히 소개하여 네덜란드와 대한민국 간의 교류에 기여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한국사 인물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한국사 인물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정재숭은 1651년(효종 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0년(현종 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평, 정언, 문학, 광주부윤, 전라도관찰사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숙종 초 갑인예송 이후 남인이 집권했을 때, 그는 서인이었음에도 특정 당색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보여 우승지, 개성유수,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이조판서, 대사헌 등 요직에 올랐으며, 같은 해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병조판서, 호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까지 지냈다. 그의 생애는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관직 생활을 유지하며 고위직에 오른 특징을 보인다.
2.1. 초기 관직 생활 (1651년 ~ 1669년)
1651년(효종 2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1660년(현종 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후 지평, 정언을 거쳐 문학이 되었다. 1667년에는 다시 지평과 정언을 지냈고, 이후 부수찬을 거쳐 지평, 정언,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부교리, 수찬, 정언을 거쳐 1669년 광주부윤으로 부임하였다.
2.2. 전라도 관찰사 및 중앙 관직 (1669년 ~ 1680년)
1669년 광주부윤을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중앙 관직으로 이동하여 승지가 되었고, 곧이어 병조참지로 임명되었다. 장례원판결사를 지낸 뒤에는 좌부승지에 올랐다.
숙종 초반, 갑인예송의 결과로 남인이 집권하였으나, 정재숭은 당색이 서인이었음에도 특정 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남인 정권 하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678년에는 우승지로 임명되었고, 1679년에는 개성유수와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이는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하기 이전까지의 주요 경력이다.
2.3. 경신환국 이후 고위 관직 역임 (1680년 ~ )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지중추부사와 지의금부사를 거쳐 이조판서와 대사헌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인 1680년(숙종 6년)에는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기도 했다. 이후 우참찬, 병조판서, 호조판서를 지냈고, 수어사를 역임한 뒤 다시 호조판서,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마침내 우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서인들이 대거 실각할 때 퇴출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숙종의 신임이 두터워 판중추부사와 영중추부사까지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