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 류씨
1. 개요
정주 류씨는 고려 시대 정주(貞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 초 삼중대광 류천궁이 정주의 호족이었으며, 태조의 부인 신혜왕후, 정덕왕후, 숙종의 부인 명의왕후 등을 배출하여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류소는 정주 류씨의 중시조로, 고려 현종 때 전중시어사 등을 역임하고 북경관성을 쌓는 데 기여하여 추충척경공신에 봉해졌다. 정주 류씨는 고려 시대에 세 명의 왕후를 배출했으며, 2015년에는 15명의 인구가 조사되었다.
2. 역사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낸 류천궁(柳天弓)은 정주의 호족이었다. 고려 태조의 왕비인 신혜왕후, 정덕왕후 유씨, 고려 숙종의 왕비 명의왕후 유씨 등이 정주 류씨 출신이다.
정주 류씨의 중시조 류소(柳韶)는 1029년 왕명으로 흥화진(興化鎭)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石城)을 수리하여 위원진(威遠鎭)을 두고, 흥화진 북쪽에 있던 석보(石堡)를 수축하여 정융진(定戎鎭)을 두어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이때 거란의 동경장군(東京將軍) 대연림(大延琳)이 난을 일으켜 흥료국(興遼國)을 세우고 고려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현종이 응하지 않았다. 류소는 서북면판병마사(西北面判兵馬事)로 상중(喪中)에 있었으나 한(漢)의 승상 책방진(翟方進)의 고사를 들어 흥료의 방어에 임하도록 하였다. 1030년 중추사(中樞使), 1031년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가 되었고, 그해 덕종이 즉위하자 중군병마사를 거쳐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가 되었다. 1033년(덕종 2) 왕명으로 북경관성(北境關城:千里長城)을 쌓았는데, 그것은 서해안의 압록강 하구에서 동으로 위원 등 13성을 거쳐 화주(和州)에 이르는 1,000여 리에 걸치는 것이었다. 1034년 장성 축조 공로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상주국 대위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上柱國大尉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덕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양의(襄懿)이다.
2.1. 고려 초기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낸 류천궁(柳天弓)은 정주의 호족이었다.
고려 태조의 첫 번째 부인 신혜왕후, 여섯 번째 부인 정덕왕후 유씨, 고려 숙종의 부인 명의왕후 유씨 등이 정주 류씨 출신이다. 왕건은 궁예의 부장으로 있을 때 경기도 정주(貞州) 지방을 지나다가 신혜왕후를 만났다.
왕건을 따르는 부장들이 궁예에 대한 반란을 건의할 때, 갈등하던 왕건을 신혜왕후 유씨가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반란을 종용하였다.
정주 류씨의 중시조 류소(柳韶)는 1011년(현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1016년에 어사잡단(御史雜端), 1019년 사헌중승(司憲中丞), 1022년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고, 이어 태자빈객(太子賓客)이 되었다.
2.2. 고려 중기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낸 류천궁(柳天弓)은 정주의 호족이었다.
고려 태조의 첫 번째 부인 신혜왕후와 여섯 번째 부인 정덕왕후 유씨는 정주 류씨 출신이다. 왕건은 궁예의 부장으로 있을 때 경기도 정주(貞州) 지방을 지나다가 신혜왕후를 만났다. 신혜왕후 유씨는 왕건이 궁예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정주 류씨의 중시조 류소(柳韶)는 1011년(현종 2) 전중시어사, 1016년에 어사잡단, 1019년 사헌중승, 1022년 간의대부를 거쳐 태자빈객이 되었다. 1029년 왕명으로 흥화진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을 수리하여 위원진을 두고, 흥화진 북쪽에 있던 석보를 수축하여 정융진을 설치하고 백성을 이주시켰다.
같은 해 거란의 동경장군 대연림이 난을 일으켜 흥료국을 세우고 고려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응하지 않았다. 류소는 서북면판병마사로 상중에 있었으나, 한나라 승상 책방진의 고사를 예로 들어 흥료국 방어에 임했다.
1030년 류소는 중추사, 1031년 이부상서 참지정사가 되었고, 덕종 즉위 후 중군병마사를 거쳐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가 되었다. 1033년(덕종 2) 왕명으로 압록강 하구에서 동쪽으로 화주에 이르는 1000리 길이의 북경관성(천리장성)을 쌓았다. 1034년 장성 축조 공로로 추충척경공신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상주국 대위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었다. 덕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양의(襄懿)이다.
3. 왕실과의 관계
정주 류씨 가문은 고려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여러 명의 왕후를 배출했다.
왕건은 궁예 휘하에서 활동하던 중 정주에서 훗날 신혜왕후가 되는 여인을 만났다. 신혜왕후의 가문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정주 류씨 가문은 고려 시대에 세 명의 왕후를 배출했다.
* 신혜왕후: 태조의 첫 번째 부인.
* 정덕왕후: 태조의 여섯 번째 부인.
* 명의왕후: 숙종의 부인.
3.1. 본관
정주(貞州)는 황해북도 개풍군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1018년(고려 현종 9) 개성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의 관할이 되었다. 1442년(세종 24)에 덕수현(德水縣)과 합쳐 풍덕(豊德)으로 개칭되었으나 개성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개성군(開城郡)과 합하여 개풍군(開豊郡)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4. 본관
정주(貞州)는 황해북도 개풍군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1018년(고려 현종 9) 개성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의 관할이 되었다. 1442년(세종 24)에 덕수현과 합쳐 풍덕(豊德)으로 개칭되었으나 개성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개성군과 합하여 개풍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5. 인구
| 연도 | 인구 |
|---|---|
| 1985년 | 29가구 129명 |
| 2000년 | 217가구 679명 |
| 2015년 | 15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