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소공
1. 개요
정 소공은 춘추 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정 장공의 아들이자 등만의 장남이다. 그는 위나라의 침략을 격퇴하고 제나라를 구원하는 등 군사적 활약을 펼쳤으나, 제나라와의 혼인을 거절하는 등 신중한 면모를 보였다. 정 장공 사후 즉위했으나 송나라의 압력으로 위나라로 망명했다가 정 여공이 망명한 틈을 타 복위했다. 이후 고거미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 이름 | 소공 희홀 |
|---|---|
| 다른 이름 | 정 소공 홀 |
| 성 | 희(姬) |
| 씨 | 정(鄭) |
| 휘 | 홀(忽) |
| 자 | 만백(曼伯) |
| 작위 | 백작 |
|---|---|
| 호칭 | 공 |
| 왕조 | 정 |
| 재위 기간 | 기원전 701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 |
| 도읍 | 신정 |
| 시호 | 소공(昭公) |
| 생년 | 불상 |
|---|---|
| 몰년 | 기원전 695년 |
| 아버지 | 정 장공 |
|---|---|
| 어머니 | 등만 |
| 부인 | 진규 |
| 주석 | 4대, 6대 군주 |
|---|
-
기원전 8세기 출생 -
헤시오도스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인으로, 『신통기』와 『일과 날』을 통해 신화, 우주론, 농업, 윤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당대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했고, 농부이자 방랑 음유시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 정의와 노동의 가치를 성찰하여 서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8세기 출생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사망 -
헤시오도스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인으로, 『신통기』와 『일과 날』을 통해 신화, 우주론, 농업, 윤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당대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했고, 농부이자 방랑 음유시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 정의와 노동의 가치를 성찰하여 서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7세기 사망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살해된 사람 -
정인보
정인보는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학자, 시조 작가, 교육자로, 민족주의 역사관과 ‘얼’ 사상을 형성하고, 연세대학교 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학대학교 학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살해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2. 생애
기원전 718년, 위나라가 남연나라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를 쳐들어오자, 아우 공자 돌과 함께 제읍의 군대를 거느리고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남연 군을 크게 무찔렀다.
기원전 706년, 북융이 제나라를 공격하자, 태자 홀(훗날의 정 소공)이 제나라를 구원하여 북융을 크게 무찌르고 대량(大良)과 소량(小良)을 베어 제나라에 바쳤다.
기원전 701년, 아버지 정 장공이 사망하자 채족의 추대로 정나라 군주에 즉위했다. 그러나 송 장공의 압력으로 동생인 공자 돌에게 왕위를 내주고 위나라로 망명했다.
기원전 697년, 정 여공이 채나라로 망명하자 소공은 다시 정나라 군주로 복귀했다. 그러나 기원전 695년, 고거미에게 살해당했다.
2.1. 어린 시절과 태자 시절
정 소공은 정 장공(莊公)과 등만(鄧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태자로 책봉되었다.
기원전 718년, 위나라가 남연나라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를 쳐들어오자, 정 소공은 아우 공자 돌과 함께 제읍의 군대를 이끌고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남연 군을 크게 무찔렀다.
태자 시절, 북융을 격퇴하고 제나라 희공의 혼인 제안을 거절하는 등의 사건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 참조)
2.1.1. 북융 격퇴
기원전 706년, 북융이 제나라를 공격하자, 태자 홀(훗날의 정 소공)이 제나라를 구원하여 6월에 북융을 크게 무찌르고 대장 대량(大良)과 소량(小良)을 베어 제나라에 바쳤다. 이 공으로 제나라는 정 소공에게 혼인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2.1.2. 제나라 희공과의 혼인 거절
기원전 706년, 북융이 제나라를 침공하자, 당시 태자였던 홀(정 소공)은 제나라를 구원하고 북융을 격퇴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제나라 희공은 태자 홀에게 자신의 딸과 혼인할 것을 제안했으나, 태자 홀은 "우리 나라는 작은 나라이며, 제나라와 균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인을 거절했다.
태자 홀의 신하 채족은 혼인을 통해 강력한 제나라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버지 정 장공이 총애하는 다른 부인들의 아들들과의 왕위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며 혼인을 권유했으나, 태자 홀은 끝내 혼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 소공의 혼인 거절은 당시 정나라와 제나라 간의 국력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 소공의 신중한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2.2. 즉위와 망명
기원전 701년, 아버지 정 장공이 사망하자 채족의 추대로 정나라 군주에 즉위했다. 그러나 송 장공의 압력으로 동생인 공자 돌에게 왕위를 내주고 위나라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