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희공
1. 개요
정 희공은 춘추 시대 정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가(嘉)이다. 그는 정 성공의 아들로, 성공 사후 정나라 임금으로 즉위했으나, 재상 자사와의 갈등 끝에 암살당했다. 희공은 태자 시절 자한과 자풍에게 무례하게 대했고, 이로 인해 즉위 후 자풍에게 고소를 당할 뻔했다. 재위 기간 동안 진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회맹에 참여했으며, 자국을 노나라에 보내 즉위를 통보하기도 했다.
| 이름 | 釐公 (정) |
|---|---|
| 칭호 | 공 (주나라 제도에 따른 작위는 백) |
| 휘 | 희 곤완 (姬髡頑) |
| 시호 | 희공 (釐公) |
| 생년 | 불명 |
| 몰년 | 기원전 566년 |
| 아버지 | 성공 |
| 재위 기간 | 기원전 571년 - 기원전 566년 |
| 수도 | 신정 (新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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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30년 사망 -
키루스 2세
키루스 2세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건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어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했으며, 유대인 해방과 관용 정책, 키루스 실린더로 유명하지만 마사게타이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기원전 530년 사망 -
정 간공
정 간공은 춘추 시대 정나라의 군주로서 자산이라는 유능한 정치가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겼으며,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대신들이 국정을 주도하는 시기를 거치며 개혁과 혼란을 겪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살해된 사람 -
정인보
정인보는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학자, 시조 작가, 교육자로, 민족주의 역사관과 ‘얼’ 사상을 형성하고, 연세대학교 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학대학교 학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살해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2. 생애
기원전 581년 4월, 공자 수(繻)가 시해된 후 신료들에 의해 임시로 추대되었다. 이후 아버지 성공(成公)이 진(晉)나라에서 귀국하여 복위하였다.
정 성공 14년(기원전 571년) 7월 경신일에 성공이 죽자 뒤를 이어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 이때 자한이 임금을 대리하고, 자사가 정경이 되고 자국이 사마가 되었는데,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 대부들은 진나라에 복종하고자 했으나 자사는 아직 상이 끝나지 않은 성공의 유지를 받들어 거부했다. 겨울에 정나라의 호뢰 땅에 진나라 측 연합군이 성을 쌓자 결국 진나라와 화친했다. 이듬해(희공 원년, 기원전 570년)에는 진나라의 주도로 행해진 회맹에 참여했다.
정 희공 3년(기원전 568년), 공자 발을 노나라에 보내 즉위를 통보하였다.
희공은 태자로 있을 때에 자한과 자풍에게 무례히 대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희공 원년에 희공이 진나라에 조현하러 갔을 때 자풍에게 고소를 당할 뻔했다. 정 희공 5년(기원전 566년)에는 재상 자사와 대립하여, 결국 자사에게 암살당했다. 자한과 자풍과 자사는 모두 희공의 작은할아버지로 정 목공의 아들들이다.
정(鄭)의 성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공 4년( 기원전 581년 ) 3월, 성공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공자 반은 새로 서형인 주(繻)를 세워 정군으로 삼았다. 4월, 정나라 사람들이 주를 죽이고 곤완(髠頑)을 세웠기 때문에 공자 반은 허(許)로 망명했다. 5월, 진나라는 정나라가 새 군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공격했으며, 정나라 자한(公子喜)의 뇌물 평화와 자연의 맹약을 받아 겨우 성공을 귀국시켰다. 6월, 성공은 자신의 부재 중에 새 군주를 세운 자들을 토벌하여 숙신(공손신)과 그의 동생인 숙금(叔禽)을 죽였다.
성공 14년( 기원전 571년 ) 6월, 성공이 훙거했기 때문에 자한(공자희)이 국정을 대행하고, 자사(공자비)가 행정을 담당했으며, 자국(공자발)이 사마가 되었다. 성공의 죽음을 틈타 진나라의 녕식 (녕혜자)이 정나라를 침공했다. 이때 대부의 대부분이 진나라에 붙으려고 했지만, 자사만이 반대했다. 그 후, 자의 곤완이 세워져 정군(이후 려공으로 표기)이 되었다.
려공 원년( 기원전 570년 ) 6월, 려공은 단, 진, 송, 위, 노, 거, 주, 제와 회합하여 계택(진의 땅)에서 동맹을 맺었다.
려공 3년( 기원전 568년 ) 여름, 려공은 자국을 노나라에 보냈다. 가을, 려공은 진, 송, 진, 위, 노, 조, 거, 주, 등, 설, 제, 오, 증과 척(위의 땅)에서 회합했다.
려공 5년( 기원전 566년 ) 12월, 재상 자사는 려공에게 조견했을 때, 려공이 답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분노하여 려공을 독살시켰다. 자사는 려공의 죽음을 표면상 병사로 하고, 그의 아들 가(嘉)를 세워 정군( 간공 )으로 삼았다.
2.1. 즉위 전
기원전 581년 4월, 공자 수(繻)가 시해된 후 신료들에 의해 임시로 추대되었다. 이후 아버지 성공(成公)이 진(晉)나라에서 귀국하여 복위하였다.
정 성공 14년(기원전 571년) 7월 경신일에 성공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정나라의 임금이 되었다. 정 희공은 태자 시절에 자한과 자풍에게 무례하게 대했는데, 이 때문에 즉위 후 갈등을 겪게 된다.
2.2. 즉위와 갈등
기원전 581년 4월, 공자 수(繻)가 시해된 후 신료들에 의해 임시로 추대되었다. 이후 아버지 성공(成公)이 진(晉)나라에서 귀국하여 복위하였다.
정 성공 14년(기원전 571년) 7월 경신일에 성공이 죽자 뒤를 이어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 이때 자한이 임금을 대리하고, 자사가 정경이 되고 자국이 사마가 되었는데,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 대부들은 진나라에 복종하고자 했으나 자사는 아직 상이 끝나지 않은 성공의 유지를 받들어 거부했다. 겨울에 정나라의 호뢰 땅에 진나라 측 연합군이 성을 쌓자 결국 진나라와 화친했다. 이듬해(희공 원년, 기원전 570년)에는 진나라의 주도로 행해진 회맹에 참여했다.
정 희공 3년(기원전 568년), 공자 발을 노나라에 보내 즉위를 통보하였다.
희공은 태자 시절 자한과 자풍에게 무례하게 대하였는데, 이 때문에 희공 원년에 진나라에 조현하러 갔을 때 자풍에게 고소를 당할 뻔했다. 정 희공 5년(기원전 566년)에는 재상 자사와 대립하여, 결국 자사에게 암살당했다. 자한, 자풍, 자사는 모두 희공의 작은할아버지로 정 목공의 아들들이다.
2.3. 최후
기원전 571년 7월 경신일에 아버지 성공이 죽자 뒤를 이어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 정 희공은 태자 시절 자한과 자풍에게 무례하게 대하였는데, 이 때문에 희공 원년(기원전 570년)에 진나라에 조현하러 갔을 때 자풍에게 고소를 당할 뻔했다. 정 희공 5년(기원전 566년)에는 재상 자사와 대립하여, 결국 자사에게 암살당했다. 자한, 자풍, 자사는 모두 희공의 작은할아버지로 정 목공의 아들들이다.
3. 평가
4. 가족 관계
5. 각주
wiki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