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지암비
1. 개요
제러미 지암비는 199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데릭 지터의 플레이로 아웃된 장면으로 유명하며, 출루율을 높이 평가받아 "머니볼"의 아이로 불렸다. 2005년 스테로이드 사용을 인정했으며, 2022년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 이름 | 제레미 지암비 |
|---|---|
| 원어 이름 | Jeremy Dean Giambi |
| 출생일 | 1974년 9월 30일 |
| 출생지 |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
| 사망일 | 2022년 2월 9일 |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
| 포지션 | 외야수 / 1루수 |
| 타석/투구 | 좌타/좌투 |
| 고등학교 | 사우스 힐 고등학교 |
|---|---|
| 프로 입단 | 1996년 드래프트 6라운드 |
| MLB 데뷔 | 1998년 9월 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 |
| MLB 마지막 경기 | 2003년 8월 1일, 보스턴 레드삭스 |
| 소속 팀 |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8–199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0–2002)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2) 보스턴 레드삭스 (2003) |
| 타율 | 0.263 |
|---|---|
| 홈런 | 52 |
| 타점 | 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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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자살 -
장뤽 고다르
장 뤽 고다르는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을 이끈 혁신적인 영화 감독으로, 정치적 메시지와 독창적인 편집 기법을 통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
2022년 자살 -
나오미 저드
나오미 저드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이자 배우이며, 딸 와이노나 저드와 컨트리 음악 듀오 더 저즈를 결성하여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솔로 활동과 연기 활동을 하다가 2022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
2022년 사망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2022년 사망 -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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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외야수 -
토니 그윈
토니 그윈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20시즌 동안 활약하며 8번의 내셔널리그 타격왕과 15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메이저리그 역사상 위대한 타자 중 한 명으로, 2007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그의 등번호는 영구결번되었으며 은퇴 후 야구 감독과 해설가로 활동하다 침샘암으로 사망했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외야수 -
조 켈리 (1871년)
조 켈리 (1871년)는 189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통산 타율 0.317을 기록하고 1896년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신시내티 레즈 감독을 역임하고 1971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제러미 지암비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풀러턴 시절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1995년 팀의 대학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6라운드로 지명되었고, 1998년 로열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000년 시즌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어 2000년과 2001년에는 형 제이슨 지암비와 한 팀에서 뛰었다. 특히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보여준 유명한 "플립 플레이" 상황에서 홈에서 아웃된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시즌 중반 애슬레틱스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시즌 후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로 옮겨갔다. 2003년 레드삭스에서 마지막 메이저 리그 경기를 치렀으며,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과 계약했지만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지는 못했다. 그의 메이저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0.263, 52홈런, 209타점이다.
2.1. 아마추어 시절
제러미 지암비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태어났다. 형인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코비나에 위치한 사우스 힐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풀러턴에 진학하여 칼 스테이트 풀러턴 타이탄스 소속으로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1995년에는 팀의 대학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94년 여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본 브레이브스에서 대학 여름 야구를 뛰며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2.2. 프로 선수 시절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지암비를 지명했고, 그는 1998년 로열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000년 시즌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어 2000년과 2001년에는 형 제이슨 지암비와 함께 뛰었다.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데릭 지터의 유명한 "플립 플레이" 상황에서 홈에서 아웃되기도 했다.
2002년 시즌 중반 애슬레틱스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그 해 두 팀에서 총 2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후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3년 레드삭스에서 마지막 메이저 리그 경기를 치렀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2005년)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지는 못했다. 그의 메이저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0.263, 52홈런, 209타점이다.
2.2.1.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8-1999)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지암비를 지명했고, 같은 해 6월 10일에 계약을 맺었다.
1997년에는 마이너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A급 팀인 랜싱 래그너츠 소속으로 3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36, 5홈런, 21타점, 5도루, OPS 1.028을 기록했으며, AA급 팀인 위치타 랭글러스에서는 7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21, 11홈런, 52타점, 4도루, OPS 0.930을 기록했다. 두 팀을 합쳐 10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26, 16홈런, 73타점, 9도루, OPS 0.960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8년에는 AAA급 팀인 오마하 로열스에서 9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72, 20홈런, 66타점, 8도루, OPS 1.103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9월 콜업 선수로 9월 1일에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해 로열스 소속으로 1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24, 2홈런을 기록했으며, 9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11개의 볼넷을 얻어내는 선구안을 보여주었다. 수비에서는 9경기 동안 좌익수로 출전하여 실책 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1999년에는 출전 기회가 크게 늘어나 지명 타자 및 1루수로 90경기에 출전하며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홈런은 3개에 그쳤지만, 타율 0.285와 출루율 0.373을 기록하며 팀 타선에 기여했다. 같은 해 AAA급 오마하에서도 3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46, 12홈런, 28타점, OPS 1.157의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2.2.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0-2002)
2000년 2월 18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브렛 랙스턴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통해 제러미 지암비를 영입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그는 수비 위치를 바꾸며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고, 2000년 시즌에는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4, 10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 이 시기(2000년, 2001년)에는 형인 제이슨 지암비 역시 애슬레틱스 소속이어서 형제가 한 팀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1년에는 주로 지명타자와 우익수로 번갈아 출전하며 124경기에서 타율 .283, 12홈런, 57타점, 그리고 높은 출루율 .391을 기록했다. 특히 이 해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는 데릭 지터의 유명한 "플립 플레이"로 홈 플레이트에서 아웃되는 장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 플레이는 지암비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순간 중 하나이다.
지암비는 뛰어난 형 제이슨과의 비교, 그리고 대마초 소지 문제 등으로 인해 현역 시절 다소 과소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 리그 통산 타율 .263에 비해 출루율이 .377에 달할 정도로 선구안은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그의 높은 출루율을 높이 평가했으며, 당시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덕분에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영입하여 높은 효율을 보여준, 이른바 '머니볼' 이론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머니볼의 아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영화 《머니볼》에서는 배우 닉 포라초가 제레미 지암비 역을 연기했다. 반면 수비와 주루 능력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는데, 책 《머니볼》에서는 그의 외야 수비 모습을 "미친 개에게서 도망치는 우편 배달부와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2002년 시즌,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4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4, 홈런 8개, 타점 17점을 기록하던 중, 5월 22일 존 매브리를 상대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2.3.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2)
2002년 시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4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4, 홈런 8개, 타점 17점을 기록하던 중, 5월 22일 존 매브리를 상대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지암비는 2002년 시즌을 애슬레틱스와 필리스 소속으로 뛰며 총 124경기에 출장했고, 최종적으로 타율 .259, 20홈런(개인 통산 첫 20홈런 돌파), 45타점, 출루율 .414, 장타율 .505, OPS 0.919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2.4. 보스턴 레드삭스 (2003)
2002 시즌 후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조시 핸콕을 대가로 지암비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했다. 그는 2003년 레드삭스 소속으로 50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197, 5홈런으로 부진했고,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메이저 리그 출전이 되었다.
시즌 후 레드삭스에서 방출된 지암비는 200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후 메이저 리그 무대에 복귀하지 못했다.
3. 스테로이드 논란
2005년 3월 13일, 캔자스시티 스타는 지암비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형 제이슨 또한 언론에 유출된 대배심 증언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사용을 인정한 바 있다. 2007년 12월 13일, 지암비는 야구계 스테로이드 사용에 관한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BALCO 창립자 빅터 콘테는 지암비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판매했다고 주장했으며, BALCO 부사장 짐 발렌테는 제러미와 제이슨 형제 모두 BALCO에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스테로이드 약물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4. 은퇴 이후와 죽음
2021년 8월, 투구 코치로 활동하던 중 야구공에 머리를 맞아 관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암비가 이 부상 이후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2022년 2월 9일 아침,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다음 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관은 지암비의 사인이 가슴에 입은 총상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5. 기타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머니볼에 언급되었으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도 등장했다. 영화에서는 배우 닉 포라조가 지암비 역을 연기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절에는 높은 출루율 덕분에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에서 저렴하게 영입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고, 이 때문에 "머니볼의 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뛰어난 선수였던 형 제이슨 지암비와 항상 비교되었으며, 대마초 소지 등 경기 외적인 문제로 인해 현역 시절에는 다소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메이저 리그 통산 타율은 .263이었지만 출루율은 .377에 달해 선구안만큼은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았다. 반면 수비와 주루 능력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는데, 머니볼 책에서는 그의 외야 수비를 "미친 개에게서 도망치는 우편 배달부와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