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다이슬러
1. 개요
제바스티안 다이슬러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데뷔하여 헤르타 BSC를 거쳐 2002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나, 잦은 부상과 우울증으로 인해 2007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독일 국가대표팀으로 3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으며,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물리치료사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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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제바스티안 토니 다이슬러 |
|---|---|
| 출생일 | 1980년 1월 5일 |
| 출생지 | 뢰라흐, 서독 |
| 키 | 1.81m |
| 포지션 | 오른쪽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1985–1988: FV 투므링겐 1988–1990: TuS 슈테텐 1990–1995: FV 뢰라흐 1995–1998: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
| 클럽 | 1998–1999: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7경기, 1골) 1999–2002: 헤르타 BSC (56경기, 9골) 2002–2007: 바이에른 뮌헨 (62경기, 8골) |
| 총 출장 | 135경기 |
| 총 득점 | 18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99: 독일 U-21 (3경기, 0골) |
|---|---|
| 국가대표 | 2000–2006: 독일 (36경기, 3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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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1980년 출생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1980년 출생 -
저신다 아던
저신다 아던은 뉴질랜드의 제39대 총리로, 노동당 당수로서 2017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취임하여 아동 빈곤 감소,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19 팬데믹 대처 등에 주력하고 다자주의 외교를 추진했으며 2023년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
독일 남자 U-21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메흐메트 숄
메흐메트 숄은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8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UEFA 유로 1996 우승을 경험한 후 지도자와 방송 해설가로 활동했다. -
독일 남자 U-21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아르네 프리드리히
아르네 프리드리히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재 헤르타 BSC의 스포팅 디렉터로, 분데스리가에서 231경기 출전, DFB-리가포칼 우승, 독일 국가대표팀 82경기 출전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2. 클럽 경력
1998년에 보루시아 MG에서 프로 데뷔했다. 그 해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오스트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어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한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높은 평가를 받아 부상 중에도 그 해 여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2003년에 복귀하여 주전 선수로 활약했지만, 주변의 기대에 따른 압박감, 부모님의 이혼, 임신한 연인의 건강상의 불안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이번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전선에서 이탈했다. 이는 축구계와 독일 국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우울증을 극복했다. 복귀에 성공하여 2004년 9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5경기 모두 출전하여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6년 월드컵은 바이에른에서의 훈련 중 다시 무릎 부상을 입어 본선 출전의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에도 다시 우울증에 걸려 2007년 1월 16일 "더 이상 자신의 무릎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12월, 행방불명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수뇌진과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인 루디 푈러도 다이슬러와의 접촉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뮌헨에 있는 자택도 주거지로 사용된 흔적이 없어 "다이슬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면 다이슬러를 바이에른 뮌헨 육성 부문의 기술 코치로 맞이하고 싶다"라고 2007년 12월 FC 바이에른 뮌헨의 울리 회네스 단장이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후에도 다이슬러의 소식은 불명 상태였다.
이후 제2의 인생을 물리치료사(물리 치료사)로 걸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아들의 존재가 지금 그의 삶의 기쁨이 되고 있다고 한다.
2.1.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다이슬러는 6살 때 FV 툼링겐에 입단했으며, 15세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입단하여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유소년 팀에서 성장했다. 1998년 이 클럽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9월 8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1998-99 시즌에 17경기에 나와 1860 뮌헨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1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최하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2. 헤르타 BSC 베를린
1998-99 시즌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강등되자 다이슬러는 헤르타 BSC 베를린으로 이적했다.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998년 오른쪽 다리의 반월판 부상과 1999년 십자 인대 파열 부상을 겪었지만, 다이슬러는 빠르게 헤르타 BSC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헤르타 BSC는 1999-2000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2001년 10월, 다이슬러는 오른쪽 무릎의 활액막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시즌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는 다이슬러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다이슬러는 2000만 마르크를 받고 2002-03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과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다이슬러는 헤르타 BSC의 감독 디터 회네스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헤르타 BSC에서 활약하는 동안, 다이슬러는 2001 DFB-리가포칼 우승에 기여했다.
2.3. FC 바이에른 뮌헨
다이슬러는 2002년 여름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고 5월에 부상당한 오른쪽 무릎을 수술했다. 2002년 7월, 다이슬러는 4년 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지만, 그 전 시즌에 오른쪽 무릎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이슬러는 부상으로 인해서 자주 선발 출장할 수 없었고, 주변의 압박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려 2003년 11월부터 10주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2003년에 복귀하여 주전 선수로 활약했지만, 주변의 기대에 따른 압박감, 부모님의 이혼, 임신한 연인의 건강상의 불안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우울증으로 인해 전선에서 이탈했다. 이는 축구계와 독일 국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몇개월 뒤 1군에 합류했으나 2004년 10월 우울증이 재발해 다시 치료를 받았다. 이후 우울증을 극복했다. 복귀에 성공하여 2004년 9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했다.
다이슬러는 2004-05 시즌에 1군에 합류할 수 있었고 2005년 경기의 대부분을 뛸 수 있었다. 미하엘 발락이 첼시 FC로 이적한 뒤 다이슬러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아가려 했으나 2006년 3월 다시 오른쪽 다리의 활액막이 파열되어 나머지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었고, 자국에서 열린 200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5경기 모두 출전하여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6년 월드컵은 바이에른에서의 훈련 중 다시 무릎 부상을 입어 본선 출전의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 해 11월 복귀했으나 오른쪽 다리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해 2007년 1월 16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 후에도 다시 우울증에 걸려 2007년 1월 16일 "더 이상 자신의 무릎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12월, 행방불명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수뇌진과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인 루디 푈러도 다이슬러와의 접촉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뮌헨에 있는 자택도 주거지로 사용된 흔적이 없어 "다이슬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면 다이슬러를 바이에른 뮌헨 육성 부문의 기술 코치로 맞이하고 싶다"라고 2007년 12월 FC 바이에른 뮌헨의 울리 회네스 단장이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후에도 다이슬러의 소식은 불명 상태였다.
이후 제2의 인생을 물리치료사(물리 치료사)로 걸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아들의 존재가 지금 그의 삶의 기쁨이 되고 있다고 한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다이슬러는 2000년 2월 23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UEFA 유로 2000에 출전했다. 2000년 9월 2일,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첫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2002년 FIFA 월드컵과 독일에서 개최된 2006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04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는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5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2006년 3월 1일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였다.
4. 은퇴 이후
다이슬러는 2007년 1월 16일, "더 이상 자신의 무릎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27세의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 2007년 12월, 한때 행방불명되어 바이에른 뮌헨의 울리 회네스 단장이 언론을 통해 다이슬러를 바이에른 뮌헨 육성 부문의 기술 코치로 맞이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후에도 그의 소식은 불명 상태였다. 이후 물리치료사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아들의 존재가 그의 삶의 기쁨이 되고 있다고 한다.
5. 개인 생활
다이슬러는 브라질 여성 에우니시 두스 산투스 산타나와 결혼해 아들 라파엘을 두었다.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취미로는 농구, 음식, 음악, 영화를 언급했다.
2007년 9월, 다이슬러는 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되었다. 현재 그는 프라이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6. 경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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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 시즌 | 국내 리그 | 국내 컵 | 유럽 클럽 대항전 | 합계 | ||||
|---|---|---|---|---|---|---|---|---|---|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98-99 | 17 | 1 | 2 | 0 | 0 | 0 | 19 | 1 |
| |98-99||17||1||2||0||0||0||19||1 | |||||||||
| 헤르타 BSC | 99-00 | 20 | 2 | 1 | 0 | 8 | 0 | 29 | 2 |
| 00-01 | 25 | 4 | 0 | 0 | 4 | 0 | 29 | 4 | |
| 01-02 | 11 | 3 | 1 | 0 | 1 | 0 | 13 | 3 | |
| |99-02||56||9||2||0||13||0||71||9 | |||||||||
| 바이에른 | 02-03 | 8 | 0 | 2 | 0 | 0 | 0 | 10 | 0 |
| 03-04 | 11 | 4 | 2 | 0 | 1 | 0 | 14 | 4 | |
| 04-05 | 23 | 4 | 4 | 0 | 5 | 0 | 32 | 4 | |
| 05-06 | 16 | 0 | 3 | 0 | 6 | 3 | 25 | 3 | |
| 06-07 | 4 | 0 | 0 | 0 | 1 | 0 | 5 | 0 | |
| |02-07||62||8||11||0||13||3||86||11 | |||||||||
| |98-07||135||18||15||0||26||3||176||21 | |||||||||
6.1. 클럽
제바스티안 다이슬러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8-99 시즌에 분데스리가 17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였다. 1999년 헤르타 BSC로 이적한 후, 1999-2000 시즌에 20경기 2골, 2000-01 시즌에 25경기 4골, 2001-02 시즌에 11경기 3골을 기록하며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2002년, 다이슬러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2002-03 시즌에는 8경기 출전 무득점에 그쳤지만, 2003-04 시즌에는 11경기 4골을 기록하며 점차 팀에 적응해 나갔다. 2004-05 시즌에는 23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는 듯했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5-06 시즌에는 16경기 무득점, 2006-07 시즌에는 4경기 무득점에 그쳤다.
다이슬러는 바이에른 뮌헨 II 팀에서도 2003-04 시즌에 레기오날리가 쥐트 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6.2. 국가대표팀
| |연도||출전||득점 | |||
|---|---|---|---|
| 독일 | 2000 | 9 | 1 |
| 2001 | 7 | 1 | |
| 2002 | 3 | 1 | |
| 2003 | 1 | 0 | |
| 2004 | 2 | 0 | |
| 2005 | 13 | 0 | |
| 2006 | 1 | 0 | |
| 합계 | 36 | 3 |
:득점 및 결과는 독일의 득점 기록을 먼저 보여주며, 득점 열은 다이슬러의 각 득점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6.2.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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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상 내역
헤르타 BSC
* DFB-리가포칼: 2001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2002-03, 2004-05, 2005-06
* DFB-포칼: 2002-03, 2004-05, 2005-06
* DFB-리가포칼: 2004
독일 U-18
* UEFA U-18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98
독일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