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향교
1. 개요
제천 청풍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을 교육하고 교화하던 지방 국립 교육 기관이다. 고려 충숙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조선 정조 3년에 교리로 이전했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이 남아 있으며,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교육 기능을 수행했으나, 갑오개혁 이후 제사 기능만 남았다. 1980년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명칭 | 제천 청풍향교 |
|---|---|
| 지정 종류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64 |
| 지정일 | 1980년 1월 9일 |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5번지 |
| 시대 | 고려 시대 |
| 수량 | 5동 |
| 문화재청 ID | 21,00640000,33 |
|---|
| 종류 | 충청북도 기념물 |
|---|---|
| 번호 | 50 |
| 지정일 | 1980년 1월 9일 |
| 해제일 | 1988년 9월 30일 |
| 문화재청 ID | 23,00500000,33 |
-
해제된 충청북도의 기념물 -
의림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위치한 의림지는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로, 현재까지 관개 기능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제림과 주변 경관으로 뛰어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명승지이다. -
고려의 향교 -
의성향교
의성향교는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조선시대 향교로, 고려시대 공자묘에서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복원되어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의 기능과 건축적 특징을 보여준다. -
고려의 향교 -
경주향교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하며, 신라 국학 자리에 고려 시대 향학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했고, 임진왜란 이후 중건되었으며, 경상북도 내 최대 규모의 전묘후학 배치 형태를 갖춘 향교로 대성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
진천 농다리
진천 농다리는 고려 시대에 축조된 충청북도 진천군의 돌다리로, 28수에 따라 28칸으로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복원 사업을 통해 현재 28칸으로 보존되어 관광 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
영동 화수루
영동 화수루는 1546년에 옥계서당으로 건립되어 후손 교육을 위해 1804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 개칭되었으며 누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2. 연혁
제천 청풍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지방 국립 교육 기관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2.1. 건립과 이전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 1332∼1339) 때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원래 물태리에 있던 것을 조선 정조 3년(1779)에 교리로 옮겼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교육 공간을 이루고 있다. 뒤쪽으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제사 공간을 이루고 있다.
2.2. 문화재 지정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50호 청풍향교(淸風鄕校)로 지정되었다. 1988년 9월 30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재지정되었다. 2013년 1월 18일 제천 청풍향교(堤川 淸風鄕校)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3. 건물 배치
제천 청풍향교는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하고 있다. 뒤쪽으로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제사 공간을 이루고 있다.
4. 기능
제천 청풍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 기관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