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1차 개조)
1. 개요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1차 개조)는 1973년 11월 25일부터 1974년 11월 11일까지 존속한 일본의 내각이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았으며, 미키 다케오가 부총리 겸 환경청 장관을 역임했다. 주요 각료로는 오히라 마사요시(외무대신, 대장대신 겸임), 후쿠다 다케오(대장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통상산업대신) 등이 있었다. 내각은 1974년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패배와 주요 각료들의 사임으로 위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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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일본 -
수도권 국전 폭동
1973년 4월 24일 일본 수도권 국철 노조의 준법 투쟁으로 인한 열차 지연과 혼잡으로 오미야, 아카바네, 우에노, 신주쿠 등 38개 역에서 3만 2천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여 시설 파손, 방화, 약탈 등의 행위로 천만 엔 이상의 재산 피해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도권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
1973년 일본 -
김대중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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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가쿠에이 -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2차 개조)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2차 개조)은 1974년 11월 11일에 출범하여 록히드 사건 등 정치 스캔들로 인해 개조 후 28일 만인 12월 9일에 총사퇴한 일본의 내각이다. -
다나카 가쿠에이 -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은 다나카 가쿠에이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이루었으나, 정치자금 비리 의혹, 환경 문제, 사회적 불평등 심화, 석유파동 등으로 비판받으며 다나카의 퇴진으로 막을 내렸다. -
1974년 일본 -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2차 개조)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2차 개조)은 1974년 11월 11일에 출범하여 록히드 사건 등 정치 스캔들로 인해 개조 후 28일 만인 12월 9일에 총사퇴한 일본의 내각이다. -
1974년 일본 -
미쓰비시중공 폭파사건
미쓰비시중공 폭파사건은 1974년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설치한 시한폭탄 테러로 8명이 사망하고 376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며, 일본 전후 최악의 폭탄 테러로 기록되었다.
2. 배경
1973년 10월에 제4차 중동 전쟁으로 인한 오일 쇼크가 발생하여 일본 국내에 에너지 위기와 물가 급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23일 아이치 기이치 대장대신이 현직에서 급서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경제 정책 전환을 위해 주요 각료들을 교체하는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이듬해 1974년 제10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자 미키, 후쿠다, 호리 세 사람이 잇달아 각료직을 사임하였고, 다나카는 다시 개조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내각은 붕괴하였다.
2.1. 욤키푸르 전쟁과 오일 쇼크
1973년 10월에 제4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오일 쇼크가 발생하여 일본 국내에서 에너지 위기와 물가 급등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23일 아이치 기이치 대장대신이 현직에서 급서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경제 정책 전환을 위해 아이치의 후임 대장대신으로 후쿠다 다케오 행정관리청 장관을 기용하는 등 자민당의 주요 인물들을 내각에 배치하여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고자 했다.
2.2. 아이치 기이치 대장대신의 급서
1973년 10월에 제4차 중동 전쟁과 그로 인한 오일 쇼크으로 일본 국내에 에너지 위기와 물가 급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23일 대장대신 아이치 기이치가 현직인 채로 급서했다.
아이치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경제 정책 전환을 위해 행정관리청 장관 후쿠다 다케오를 아이치의 후임 대장대신으로 기용했다. 또한 자유민주당의 실력자들을 주요 각료에 배치하는 강력한 포진으로 국가 위기에 대처하고자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3. 내각 구성 (1973년 11월 25일 ~ 1974년 11월 11일)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제1차 개조)은 1973년 11월 25일에 출범하여 1974년 11월 11일까지 존속했다.
| 직책 | 성명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 | 다나카 가쿠에이 |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 부총리 겸 환경청 장관 | 미키 다케오 | 자유민주당 (미키파), 1974년 7월 12일 해임 |
| 법무대신 | 나카무라 우메키치 |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 외무대신 | 오히라 마사요시 |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1974년 7월 16일 해임 |
| 기무라 도시오 | 자유민주당 (무파벌), 1974년 7월 16일 임명 | |
| 대장대신 | 후쿠다 다케오 |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1974년 7월 16일 해임 |
| 오히라 마사요시 |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1974년 7월 16일 내각 내 이동 | |
| 문부대신 | 오쿠노 세이스케 | 자유민주당 (무파벌) |
| 후생대신 | 사이토 구니키치 |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 농림대신 | 구라이시 다다오 |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 통상산업대신 | 나카소네 야스히로 |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 운수대신 | 도쿠나가 마사토시 |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 우정대신 | 하라다 겐 | 자유민주당 (미즈타파) |
| 노동대신 | 하세가와 다카시 | 자유민주당 (무파벌) |
| 건설대신, 긴키권 정비 장관, 주부권 개발 정비 장관, 수도권 정비위원회 위원장 | 가메오카 다카오 |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마치무라 긴고 | 자유민주당 |
| 내각관방장관 | 니카이도 스스무 |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 총리부 총무장관,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 | 고사카 도쿠사부로 | 자유민주당 (무파벌) |
| 행정관리청 장관 | 호리 시게루 |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1974년 7월 16일 해임 |
| 호소다 기치조 |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1974년 7월 16일 임명 | |
| 국무대신 (~1974년 6월 25일) 국토청 장관 (1974년 6월 26일~) | 니시무라 에이이치 |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 방위청 장관 | 야마나카 사다노리 |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 경제기획청 장관 | 우치다 쓰네오 |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 과학기술청 장관 | 모리야마 긴지 | 자유민주당 (미키파) |
| 환경청 장관 | 미키 다케오 | 자유민주당 (미키파), 1974년 7월 12일 해임 |
| 모리 마쓰헤이 | 자유민주당 (미키파), 1974년 7월 12일 임명 |
* 긴키권 정비 본부, 주부권 개발 정비 본부, 수도권 정비 위원회는 1974년 6월 26일에 폐지되었다.
* 미키 다케오는 부총리로 지명되었으며, 국무대신으로서의 서열도 맨 앞에 있었다.
| 부처 | 직책 | 이름 | 비고 |
|---|---|---|---|
| 법무성 | 정무 차관 | 다카하시 분고로 | 1974년 7월 12일부터 다카하시 구니오 |
| 외무성 | 정무 차관 | 야마다 히사나리 | |
| 대장성 | 정무 차관 | 나카가와 이치로, 야나기다 모모타로 | |
| 문부성 | 정무 차관 | 후지나미 다카오 | |
| 후생성 | 정무 차관 | 이시모토 시게루 | |
| 농림성 | 정무 차관 | 와타나베 미치오, 야마모토 모이치로 | |
| 통상산업성 | 정무 차관 | 모리시타 모토하루, 구스노키 마사토시 | |
| 운수성 | 정무 차관 | 마스오카 히로유키 | |
| 우정성 | 정무 차관 | 미쓰바야시 야타로 | |
| 노동성 | 정무 차관 | 스가나미 시게루 | |
| 건설성 | 정무 차관 | 우쓰미 히데오 | |
| 자치성 | 정무 차관 | 후루야 도루 | |
| 행정관리청 | 정무 차관 | 오자와 다로 | |
| 홋카이도 개발청 | 정무 차관 | 와카바야시 마사타케 | |
| 방위청 | 정무 차관 | 기노 하루오 | |
| 경제기획청 | 정무 차관 | 다케우치 레이이치 | |
| 과학기술청 | 정무 차관 | 나가야 시게루 | 1974년 7월 12일부터 나카무라 테이지 |
| 환경청 | 정무 차관 | 후지모토 다카오 | |
| 오키나와 개발청 | 정무 차관 | 니시메 준지 | |
| 국토청 | 정무 차관 | 야마우치 이치로 | 1974년 6월 26일 신설 |
3.1. 국무대신
| 직책 | 성명 | 사진 | 출신 및 소속 정당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 | 다나카 가쿠에이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자유민주당 총재 유임 |
| 부총리 환경청 장관 | 미키 다케오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미키파) | 1974년 7월 12일 해임 |
| 법무대신 | 나카무라 우메키치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재입각 |
| 외무대신 | 오히라 마사요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유임 1974년 7월 16일 해임 | |
| 기무라 도시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재입각 1974년 7월 16일 임명 | ||
| 대장대신 | 후쿠다 다케오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유임 1974년 7월 16일 해임 |
| 오히라 마사요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1974년 7월 16일 임명 (내각 내 이동) | ||
| 문부대신 | 오쿠노 세이스케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유임 |
| 후생대신 | 사이토 구니키치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유임 | |
| 농림대신 | 구라이시 다다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재입각 | |
| 통상산업대신 | 나카소네 야스히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유임 | |
| 운수대신 | 도쿠나가 마사토시 | 참의원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초임각 | |
| 우정대신 | 하라다 겐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미즈타파) | 재입각 |
| 노동대신 | 하세가와 다카시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초임각 |
| 건설대신 긴키권 정비 장관 주부권 개발 정비 장관 수도권 정비위원회 위원장 | 가메오카 다카오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초임각 |
|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마치무라 긴고 | 참의원 자유민주당 | 초임각 | |
| 내각관방장관 | 니카이도 스스무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유임 | |
| 총리부 총무장관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 | 고사카 도쿠사부로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초임각 |
| 행정관리청 장관 | 호리 시게루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재입각 1974년 7월 16일 해임 |
| 호소다 기치조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초임각 1974년 7월 16일 임명 | |
| 국무대신 (~1974년 6월 25일) 국토청 장관 (1974년 6월 26일~) | 니시무라 에이이치 | 중의원 자유민주당 (후쿠다파) | 재입각 | |
| 방위청 장관 | 야마나카 사다노리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 유임 |
| 경제기획청 장관 | 우치다 쓰네오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오히라파) | 재입각 |
| 과학기술청 장관 | 모리야마 긴지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미키파) | 초임각 |
| 환경청 장관 | 미키 다케오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미키파) | 유임 1974년 7월 12일 해임 |
| 모리 마쓰헤이 | -- | 중의원 자유민주당 (미키파) | 초임각 1974년 7월 12일 임명 |
* 긴키권 정비 본부, 주부권 개발 정비 본부, 수도권 정비 위원회는 1974년 6월 26일에 폐지되었다.
* 미키 다케오는 개조 전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조각 당시 부총리로 지명되었으며, 당시 인증관 임명식 및 관보 게재 명령에서 국무대신으로서의 서열도 맨 앞에 있었다.
3.2. 내각관방부장관·내각법제국 장관·총리부 총무부장관
| 직명 | 이름 | 출신 등 | 비고 |
|---|---|---|---|
| 내각관방부장관 (정무 담당) | 오무라 조지(大村襄治) | 중의원/자유민주당 | |
| 내각관방부장관 (사무 담당) | 가와시마 히로모리(川島廣守) | 관료 | |
| 내각법제국 장관 | 요시쿠니 이치로(吉國一郎) | 관료 | |
| 총리부 총무부장관 (정무 담당) |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 중의원/자유민주당 | |
| 총리부 총무부장관 (사무 담당) | 미야자키 기요후미(宮崎清文) | 관료 |
3.3. 정무 차관
| | 직책 || 이름 || 비고 | |||
|---|---|---|---|
| 법무성 | 정무 차관 | 다카하시 분고로 | 1974년 7월 12일부터 다카하시 구니오 |
| 외무성 | 정무 차관 | 야마다 히사나리 | |
| 대장성 | 정무 차관 | 나카가와 이치로, 야나기다 모모타로 | |
| 문부성 | 정무 차관 | 후지나미 다카오 | |
| 후생성 | 정무 차관 | 이시모토 시게루 | |
| 농림성 | 정무 차관 | 와타나베 미치오, 야마모토 모이치로 | |
| 통상산업성 | 정무 차관 | 모리시타 모토하루, 구스노키 마사토시 | |
| 운수성 | 정무 차관 | 마스오카 히로유키 | |
| 우정성 | 정무 차관 | 미쓰바야시 야타로 | |
| 노동성 | 정무 차관 | 스가나미 시게루 | |
| 건설성 | 정무 차관 | 우쓰미 히데오 | |
| 자치성 | 정무 차관 | 후루야 도루 | |
| 행정관리청 | 정무 차관 | 오자와 다로 | |
| 홋카이도 개발청 | 정무 차관 | 와카바야시 마사타케 | |
| 방위청 | 정무 차관 | 기노 하루오 | |
| 경제기획청 | 정무 차관 | 다케우치 레이이치 | |
| 과학기술청 | 정무 차관 | 나가야 시게루 | 1974년 7월 12일부터 나카무라 테이지 |
| 환경청 | 정무 차관 | 후지모토 다카오 | |
| 오키나와 개발청 | 정무 차관 | 니시메 준지 | |
| 국토청 | 정무 차관 | 야마우치 이치로 | 1974년 6월 26일 신설 |
4. 1974년 참의원 선거와 내각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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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과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 발발로 인한 석유 파동으로 일본 국내 에너지 위기와 급격한 물가 상승 문제에 대처할 필요성이 생겼다. 11월 23일 대장대신 아이치 구이치가 현직에서 급서하였다.
내각총리대신 다나카 가쿠에이는 경제 정책 전환을 도모하여, 아이치의 후임 대장대신으로 행정관리청장관 후쿠다 다케오를 기용하였다. 또한 자민당 실력자를 중요 각료에 배치하는 강력한 진용으로 국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내각 개조를 단행하였다.
이듬해인 1974년 제10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자, 미키, 후쿠다, 호리 세 사람이 잇달아 각료직을 사임하며 다나카를 압박하였다. 다나카는 재차 개조를 통해 재건을 도모했지만, 결국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은 붕괴하였다.
6. 평가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 발발로 인한 석유 파동으로 일본 국내 에너지 위기와 급격한 물가 상승 문제가 발생했다. 11월 23일 대장대신 아이치 구이치가 현직에서 급서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총리대신은 경제 정책 전환을 위해 아이치의 후임 대장대신으로 행정관리청장관 후쿠다 다케오를 기용하는 등 자민당 실력자들을 주요 각료로 배치, 국가 위기에 대처하고자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1974년 제10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자 미키, 후쿠다, 호리 등이 각료직을 사임했다. 다나카는 재개조로 재건을 꾀했으나, 결국 내각은 붕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