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혜공
1. 개요
제 혜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제 환공의 아들이며, 위나라 출신 소위희를 어머니로 두었다. 제 환공 사후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하여 송나라에 패배하여 위나라로 망명했다가, 제 의공이 살해된 후 귀국하여 기원전 609년에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노나라와 분쟁을 벌이고 북적의 침입을 받기도 했으며, 기원전 599년에 사망하여 아들 제 경공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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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출생 -
아이소포스
아이소포스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화 작가이지만, 실존 여부, 출생지, 노예 생활, 웅변술, 징조 해석 능력, 여러 인물과의 교류, 아테네에서의 활동, 사망 경위, 저술 여부, 외모, 아프리카 기원 등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
기원전 7세기 출생 -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기원전 7세기 유다 왕국의 예언자로, 예루살렘 멸망과 바빌론 포로를 예언하며 고난을 겪어 "우는 예언자"라고도 불리며 그의 예언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주 경왕 (개)
주 경왕은 주 영왕의 손자이자 주 경왕의 아들로, 형인 도왕 사후 기원전 520년에 즉위하여 왕자조의 난 등을 겪고 성주로 천도했으며 기원전 476년에 사망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 사람 -
안영
안영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재상으로, 세 명의 군주를 섬기며 뛰어난 재치와 능력을 발휘하여 제나라 부흥에 기여했고, 그의 청렴함과 지혜는 여러 고사성어와 일화로 남아 춘추 시대 명재상으로 평가받지만,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
기원전 6세기 중국 사람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2. 즉위 전
제 환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위나라 출신 소위희이다. 제후 무궤, 공자 소, 공자 반, 공자 상인과 함께 제 환공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이들은 '다섯 공자'로 불렸다.
기원전 642년, 공자 원(훗날 제 혜공)은 제 효공의 즉위에 반대하여 송나라 군대와 싸웠으나, 연에서 패배했다. 이후 제나라 내란을 피해 어머니의 친정인 위나라로 망명했다.
기원전 609년 7월, 제나라 공자 상인이 제군 사를 살해했다. 상인은 공자 원을 왕위에 올리려 했으나,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공자 원은 상인에게 스스로 즉위할 것을 권했다. 상인(제 의공)이 즉위했지만, 공자 원은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부기씨'라고 불렀다.
3. 즉위 후
기원전 608년, 혜공 원년에 노 선공이 적장자인 자악을 죽이고 즉위하여 제나라에 뇌물로 제서(濟西)의 밭을 바쳤고, 제 혜공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기원전 607년, 혜공 2년에 북적(北狄)의 일종인 장적(長翟)이 쳐들어왔는데, 왕자 성보가 이들을 쳐서 죽이고 북문에 묻었다.
기원전 602년, 혜공 7년에 노나라와 함께 내(萊)를 공격했다.
기원전 599년, 혜공 10년에 노나라에 제서 땅을 돌려보냈다.
최저(崔杼)를 총애했다. 혜공 사후 제나라의 유력 가문인 고씨(高氏)와 곽씨(郭氏)가 최저를 몰아냈고, 최저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최저는 나중에 제나라로 돌아와 국가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4. 사망
惠公중국어은 10년 동안 재위하다가 기원전 599년에 사망했다. 기원전 599년 봄, 제서의 땅을 노나라에 반환했고, 같은 해 4월에 사망했다. 그의 아들 공자 무야(公子無野)가 뒤를 이어 경공이 되었다. 惠公중국어은 관료 최저를 총애했으나, 혜공 사후 제나라의 유력 가문인 고씨(高氏)와 곽씨(郭氏)가 최저를 몰아내 최저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최저는 나중에 제나라로 돌아와 국가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