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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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니 윈터는 1944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미국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이다. 1960년대 후반 《롤링 스톤》 잡지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얻었고, 1969년 데뷔 앨범 《Johnny Winter》를 발매하며 "100만 달러의 기타리스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8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머디 워터스의 앨범 프로듀싱을 통해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윈터는 2014년 사망하기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2015년 사후 앨범 《Step Back》으로 그래미 최우수 블루스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는 깁슨 파이어버드 기타를 즐겨 사용했으며, 여러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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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윈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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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조니 윈터 |
본명 | 존 도슨 윈터 3세 |
출생일 | 1944년 2월 23일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보몬트 |
사망일 | 2014년 7월 16일 |
사망지 | 스위스 취리히 근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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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정보 | |
직업 | 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 |
활동 악기 | 기타 보컬 |
활동 시기 | 1959년 - 2014년 |
장르 | 블루스 블루스 록 로큰롤 서던 록 컨트리 블루스 |
레이블 | 컬럼비아 블루 스카이 앨리게이터 포인트 블랭크 |
관련 활동 | 에드거 윈터 토미 섀넌 릭 데린저 머디 워터스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http://www.johnnywinter.net/ |
2. 생애
조니 윈터는 1944년 2월 23일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태어났다.[4] 아버지 존 도슨 윈터 주니어는 색소폰과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가였으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조니 윈터는 동생 에드거 윈터와 함께 알비니즘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4] 다섯 살 때부터 우쿨렐레, 클라리넷 등을 배웠으며,[51] 열 살 때, 두 형제는 지역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우쿨렐레를 연주했다.
15세에 밴드 조니 앤드 더 재머스를 결성하여 "스쿨 데이 블루스"를 발매하면서 녹음 경력을 시작했다.[4] 1962년, 에드거와 함께 첫 밴드인 조니 앤드 더 자머스를 결성하여 여러 지역 레이블에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했다. 초기에는 보몬트 지역에서 로이 헤드와 트레이츠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1967년에는 트레이츠와 함께 "트램프"와 "파치먼 팜"을 수록한 싱글을 발매했다. 1968년에는 소노비트 레코드에서 첫 번째 앨범인 ''프로그레시브 블루스 익스페리먼트''를 발매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알 쿠퍼와 마이크 블룸필드의 필모어 이스트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고, 이때의 라이브 녹음은 2003년에 앨범 『필모어 이스트의 기적』으로 발매되었다.[48]
1968년 《롤링 스톤》의 텍사스 특집 기사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51] 이듬해 1969년, CBS와 계약하고 앨범 《조니 윈터》를 발매하며, 당시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100만 달러의 기타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앨범은 윌리 딕슨, 월터 호튼 등 블루스 음악가들이 참여한 정통 블루스 앨범이었다. 또한 같은 해,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출연했다.[51]
조니 윈터는 1968년 《롤링 스톤》의 텍사스 특집 기사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51] 1969년 데뷔 음반 《Johnny Winter》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51] '굿모닝 리틀 스쿨걸' 같은 히트곡을 냈다.[51] 같은 해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이름을 널리 알렸다.[51][6] 1969년 내슈빌에서 두 번째 앨범 ''세컨드 윈터(Second Winter)''를 녹음했다.[7] 이 앨범은 2장짜리로 3면만 녹음되어 있고 4면은 비어있었으며, 척 베리의 "조니 B. 굿"과 밥 딜런의 "하이웨이 61 재방문"을 포함하여 윈터 콘서트의 주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7]
1968년 12월, 마이크 블룸필드의 초청으로 뉴욕 필모어 이스트에서 열린 앨 쿠퍼와의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면서 큰 기회를 얻었다.[4]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 관계자들이 콘서트에 있었는데, 윈터는 B.B. 킹의 "It's My Own Fault"를 연주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고, 며칠 안에 당시 음반 산업 역사상 가장 큰 선금인 60만 달러를 받고 계약을 맺었다.[4]
윈터의 첫 번째 컬럼비아 앨범인 ''조니 윈터''는 1969년에 녹음 및 발매되었다.[5] 이 앨범에는 토미 섀넌, 언클 존 터너, 에드가 윈터, 윌리 딕슨, 빅 월터 호튼 등이 참여했다.[5] 또한 "Dallas", 소니 보이 윌리엄슨 1세의 "굿 모닝 리틀 스쿨 걸", B.B. 킹의 "Be Careful with a Fool" 등 윈터의 시그니처곡이 된 몇몇 곡이 수록되었다.[5]
1970년, 형 에드가가 솔로 음반 ''Entrance''을 발매하고 에드가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를 결성하면서 원래 트리오는 해체되었다.[6] 그 후 조니 윈터는 더 매코이스의 잔여 멤버들인 릭 데린저, 랜디 조 홉스, 랜디 Z와 함께 새로운 밴드 "조니 윈터 앤드"를 결성했다.[4] 이 밴드의 첫 번째 음반에는 릭 데린저의 "Rock and Roll, Hoochie Koo"가 포함되어 있으며, 윈터의 음악적 방향이 록 중심으로 바뀌었음을 알렸다.[9] 조니 윈터 앤드가 투어를 시작할 때, 랜디 Z는 바비 캘드웰로 교체되었다.[4] 새로운 록 곡들과 윈터의 블루스 곡들의 혼합은 라이브 음반 ''Live Johnny Winter And''에 담겼다. 여기에는 윈터를 콜럼비아 레코드에 알리게 된 곡인 "It's My Own Fault"의 새로운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4]
조니 윈터 앤드 시절, 헤로인 중독으로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중독 치료를 받고 회복한 후, 1973년 ''Still Alive and Well''을 발매하며 음악계에 복귀했다.[4] 1974년 발매된 ''Saints & Sinners''와 ''John Dawson Winter III'' 두 장의 음반은 같은 방향을 유지한다.[10] 1976년 발매된 두 번째 라이브 음반인 ''Captured Live!''에는 "Highway 61 Revisited"의 확장된 연주가 수록되어 있다.[12]
윈터는 머디 워터스와 함께 작업하며, 블루 스카이 레코드 레이블을 통해 ''하드 어게인''을 녹음했다.[13] 앨범 프로듀싱 외에도 윈터는 제임스 코튼과 함께 기타를 연주했다.[13] 윈터는 워터스를 위해 ''아이엠 레디'', ''킹 비'', 그리고 라이브 앨범 ''머디 "미시시피" 워터스 – 라이브'' 등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더 제작했다.[13] 이 파트너십은 워터스에게 세 개의 그래미상을, 그리고 윈터 자신의 ''낫씽 벗 더 블루스''에는 추가적인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13]
블루 스카이 레코드와의 활동 이후 윈터는 앨리게이터, 포인트 블랭크, 버진 등 여러 레이블에서 블루스 중심의 음악을 발표했다.[4] 1980년대에 들어서 조니는 얼리게이터 레코드(Alligator Records)와 계약후 3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블루스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기 때문인지 모든 작품이 블루스 색채가 짙은 내용이었다. MCA 산하의 보이저 레이블(Voyager Records)에서 발매한 『더 윈터 오브 '88(The Winter Of '88)』(1988년) 이후, 포인트 블랭크 레코드(Point Blank Records)와 계약한 조니는 『렛 미 인(Let Me In)』(1991년)을 시작으로 3장의 작품을 발매했지만,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 연주 활동에서 멀어져 갔다. 한편으로는 애용하던 깁슨(Gibson)社의 깁슨 파이어버드(Firebird)를 혼자 힘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고, 시력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
2004년에는 그의 앨범 ''I'm a Bluesman''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4] 2004년, 무려 12년 만에 스튜디오 앨범 『영원의 블루스맨(I'm A Bluesman)』을 발매했다. 그 "낡은" 연주에 마지막 앨범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7년 후인 2011년에 블루스 커버를 새로 녹음한 『루츠(Roots)』를 발매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7년부터는 ''라이브 부틀렉 시리즈''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 시리즈와 라이브 DVD가 모두 빌보드 블루스 차트 톱 10에 진입했다. 2009년에는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윈터가 연주한 8곡을 담은 ''더 우드스톡 익스피리언스'' 앨범이 발매되었다. 2011년에는 메가포스 레코드를 통해 ''루츠''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윈터가 해석한 초기 블루스와 록앤롤 명곡 11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빈스 길, 소니 랜드레스, 수잔 테데스치, 에드가 윈터, 워렌 헤인즈, 데릭 트럭스 등 여러 게스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스텝 백'' (조 보나마사, 에릭 클랩턴, 빌리 기본스, 레슬리 웨스트, 브라이언 세처, 닥터 존, 폴 넬슨, 벤 하퍼, 조 페리가 참여)은 2014년 9월 2일에 발매되었다. 넬슨과 윈터는 2015년 ''스텝 백''으로 최고 블루스 앨범 부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넬슨은 윈터가 이 앨범이 수상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윈터는 그에게 "만약 우리가 이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쳤어."라고 말했다고 한다.[17]
윈터는 북미와 유럽 전역의 페스티벌을 포함하여 계속해서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다. 그는 뉴올리언스 재즈 & 헤리티지 페스티벌,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2009년 스웨덴 록 페스티벌, 워렌 헤인즈 크리스마스 잼, 록팔라스트와 같은 권위 있는 행사의 헤드라이너로 활동했다. 또한 뉴욕시 비컨 극장에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올맨 브라더스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2007년과 2010년에는 에릭 클랩턴의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체리 레인 뮤직과 할 레너드 코퍼레이션이 두 개의 기타 강좌 DVD를 제작했다. 깁슨 기타 회사는 내슈빌에서 열린 행사에서 슬래시가 시상하는 조니 윈터 시그니처 깁슨 파이어버드 기타를 출시했다.
1993년 윈터는 수전 워퍼드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2019년에 사망했다.[20][21][22]
윈터는 스위스 취리히(Zürich) 근교에서 2014년 7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23] 그는 프랑스 카오르(Cahors) 블루스 페스티벌(Cahors Blues Festival)에서 마지막 공연 이틀 후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24] 윈터의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25] 그의 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폴 넬슨(Paul Nelson)에 따르면, 윈터는 폐기종(emphysema)과 폐렴(pneumonia)으로 사망했다.[26]
윈터의 사망 후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에 글을 기고한 데이비드 마르체세는 "윈터는 최초의 블루스 록 기타 거장 중 한 명으로,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일련의 인기 있고 열정적인 앨범을 발매하여 아레나급 콘서트를 매진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 [그는] "블루스를 연주하며 상징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27]
윈터는 코네티컷주 이스턴에 있는 유니온 묘지(Union Cemetery (Easton, Connecticut))에 묻혔다.[28]
2014년 7월 16일, 스위스 취리히(Zürich)에서 사망했다.[49] 같은 해 9월에 발매된 유작 『스텝 백~루츠2(Step Back~Roots 2)』는 2015년 2월 제57회 그래미상(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블루스 앨범상을 수상하며 윈터는 처음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동생 에드거가 대신 트로피를 받았다.[50]
2. 1. 초기 생애 (1944-1968)
조니 윈터는 1944년 2월 23일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태어났다.[4] 아버지 존 도슨 윈터 주니어는 색소폰과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가였으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조니 윈터는 동생 에드거 윈터와 함께 알비니즘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4] 다섯 살 때부터 우쿨렐레, 클라리넷 등을 배웠으며,[51] 열 살 때, 두 형제는 지역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우쿨렐레를 연주했다.15세에 밴드 조니 앤드 더 재머스를 결성하여 "스쿨 데이 블루스"를 발매하면서 녹음 경력을 시작했다.[4] 1962년, 에드거와 함께 첫 밴드인 조니 앤드 더 자머스를 결성하여 여러 지역 레이블에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했다. 초기에는 보몬트 지역에서 로이 헤드와 트레이츠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1967년에는 트레이츠와 함께 "트램프"와 "파치먼 팜"을 수록한 싱글을 발매했다. 1968년에는 소노비트 레코드에서 첫 번째 앨범인 ''프로그레시브 블루스 익스페리먼트''를 발매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알 쿠퍼와 마이크 블룸필드의 필모어 이스트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고, 이때의 라이브 녹음은 2003년에 앨범 『필모어 이스트의 기적』으로 발매되었다.[48]
1968년 《롤링 스톤》의 텍사스 특집 기사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51] 이듬해 1969년, CBS와 계약하고 앨범 《조니 윈터》를 발매하며, 당시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100만 달러의 기타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앨범은 윌리 딕슨, 월터 호튼 등 블루스 음악가들이 참여한 정통 블루스 앨범이었다. 또한 같은 해,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출연했다.[51]
2. 2. 전성기 (1969-1980)
조니 윈터는 1968년 《롤링 스톤》의 텍사스 특집 기사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51] 1969년 데뷔 음반 《Johnny Winter》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51] '굿모닝 리틀 스쿨걸' 같은 히트곡을 냈다.[51] 같은 해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이름을 널리 알렸다.[51][6] 1969년 내슈빌에서 두 번째 앨범 ''세컨드 윈터(Second Winter)''를 녹음했다.[7] 이 앨범은 2장짜리로 3면만 녹음되어 있고 4면은 비어있었으며, 척 베리의 "조니 B. 굿"과 밥 딜런의 "하이웨이 61 재방문"을 포함하여 윈터 콘서트의 주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7]1968년 12월, 마이크 블룸필드의 초청으로 뉴욕 필모어 이스트에서 열린 앨 쿠퍼와의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면서 큰 기회를 얻었다.[4]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 관계자들이 콘서트에 있었는데, 윈터는 B.B. 킹의 "It's My Own Fault"를 연주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고, 며칠 안에 당시 음반 산업 역사상 가장 큰 선금인 60만 달러를 받고 계약을 맺었다.[4]
윈터의 첫 번째 컬럼비아 앨범인 ''조니 윈터''는 1969년에 녹음 및 발매되었다.[5] 이 앨범에는 토미 섀넌, 언클 존 터너, 에드가 윈터, 윌리 딕슨, 빅 월터 호튼 등이 참여했다.[5] 또한 "Dallas", 소니 보이 윌리엄슨 1세의 "굿 모닝 리틀 스쿨 걸", B.B. 킹의 "Be Careful with a Fool" 등 윈터의 시그니처곡이 된 몇몇 곡이 수록되었다.[5]
1970년, 형 에드가가 솔로 음반 ''Entrance''을 발매하고 에드가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를 결성하면서 원래 트리오는 해체되었다.[6] 그 후 조니 윈터는 더 매코이스의 잔여 멤버들인 릭 데린저, 랜디 조 홉스, 랜디 Z와 함께 새로운 밴드 "조니 윈터 앤드"를 결성했다.[4] 이 밴드의 첫 번째 음반에는 릭 데린저의 "Rock and Roll, Hoochie Koo"가 포함되어 있으며, 윈터의 음악적 방향이 록 중심으로 바뀌었음을 알렸다.[9] 조니 윈터 앤드가 투어를 시작할 때, 랜디 Z는 바비 캘드웰로 교체되었다.[4] 새로운 록 곡들과 윈터의 블루스 곡들의 혼합은 라이브 음반 ''Live Johnny Winter And''에 담겼다. 여기에는 윈터를 콜럼비아 레코드에 알리게 된 곡인 "It's My Own Fault"의 새로운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4]
조니 윈터 앤드 시절, 헤로인 중독으로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중독 치료를 받고 회복한 후, 1973년 ''Still Alive and Well''을 발매하며 음악계에 복귀했다.[4] 1974년 발매된 ''Saints & Sinners''와 ''John Dawson Winter III'' 두 장의 음반은 같은 방향을 유지한다.[10] 1976년 발매된 두 번째 라이브 음반인 ''Captured Live!''에는 "Highway 61 Revisited"의 확장된 연주가 수록되어 있다.[12]
윈터는 머디 워터스와 함께 작업하며, 블루 스카이 레코드 레이블을 통해 ''하드 어게인''을 녹음했다.[13] 앨범 프로듀싱 외에도 윈터는 제임스 코튼과 함께 기타를 연주했다.[13] 윈터는 워터스를 위해 ''아이엠 레디'', ''킹 비'', 그리고 라이브 앨범 ''머디 "미시시피" 워터스 – 라이브'' 등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더 제작했다.[13] 이 파트너십은 워터스에게 세 개의 그래미상을, 그리고 윈터 자신의 ''낫씽 벗 더 블루스''에는 추가적인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13]
2. 3. 후기 활동 및 사망 (1981-2014)
블루 스카이 레코드와의 활동 이후 윈터는 앨리게이터, 포인트 블랭크, 버진 등 여러 레이블에서 블루스 중심의 음악을 발표했다.[4] 1980년대에 들어서 조니는 얼리게이터 레코드(Alligator Records)와 계약후 3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블루스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기 때문인지 모든 작품이 블루스 색채가 짙은 내용이었다. MCA 산하의 보이저 레이블(Voyager Records)에서 발매한 『더 윈터 오브 '88(The Winter Of '88)』(1988년) 이후, 포인트 블랭크 레코드(Point Blank Records)와 계약한 조니는 『렛 미 인(Let Me In)』(1991년)을 시작으로 3장의 작품을 발매했지만,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 연주 활동에서 멀어져 갔다. 한편으로는 애용하던 깁슨(Gibson)社의 깁슨 파이어버드(Firebird)를 혼자 힘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고, 시력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2004년에는 그의 앨범 ''I'm a Bluesman''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4] 2004년, 무려 12년 만에 스튜디오 앨범 『영원의 블루스맨(I'm A Bluesman)』을 발매했다. 그 "낡은" 연주에 마지막 앨범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7년 후인 2011년에 블루스 커버를 새로 녹음한 『루츠(Roots)』를 발매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7년부터는 ''라이브 부틀렉 시리즈''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 시리즈와 라이브 DVD가 모두 빌보드 블루스 차트 톱 10에 진입했다. 2009년에는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윈터가 연주한 8곡을 담은 ''더 우드스톡 익스피리언스'' 앨범이 발매되었다. 2011년에는 메가포스 레코드를 통해 ''루츠''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윈터가 해석한 초기 블루스와 록앤롤 명곡 11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빈스 길, 소니 랜드레스, 수잔 테데스치, 에드가 윈터, 워렌 헤인즈, 데릭 트럭스 등 여러 게스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스텝 백'' (조 보나마사, 에릭 클랩턴, 빌리 기본스, 레슬리 웨스트, 브라이언 세처, 닥터 존, 폴 넬슨, 벤 하퍼, 조 페리가 참여)은 2014년 9월 2일에 발매되었다. 넬슨과 윈터는 2015년 ''스텝 백''으로 최고 블루스 앨범 부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넬슨은 윈터가 이 앨범이 수상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윈터는 그에게 "만약 우리가 이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쳤어."라고 말했다고 한다.[17]
윈터는 북미와 유럽 전역의 페스티벌을 포함하여 계속해서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다. 그는 뉴올리언스 재즈 & 헤리티지 페스티벌,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2009년 스웨덴 록 페스티벌, 워렌 헤인즈 크리스마스 잼, 록팔라스트와 같은 권위 있는 행사의 헤드라이너로 활동했다. 또한 뉴욕시 비컨 극장에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올맨 브라더스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2007년과 2010년에는 에릭 클랩턴의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체리 레인 뮤직과 할 레너드 코퍼레이션이 두 개의 기타 강좌 DVD를 제작했다. 깁슨 기타 회사는 내슈빌에서 열린 행사에서 슬래시가 시상하는 조니 윈터 시그니처 깁슨 파이어버드 기타를 출시했다.
1993년 윈터는 수전 워퍼드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2019년에 사망했다.[20][21][22]
윈터는 스위스 취리히(Zürich) 근교에서 2014년 7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23] 그는 프랑스 카오르(Cahors) 블루스 페스티벌(Cahors Blues Festival)에서 마지막 공연 이틀 후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24] 윈터의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25] 그의 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폴 넬슨(Paul Nelson)에 따르면, 윈터는 폐기종(emphysema)과 폐렴(pneumonia)으로 사망했다.[26]
윈터의 사망 후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에 글을 기고한 데이비드 마르체세는 "윈터는 최초의 블루스 록 기타 거장 중 한 명으로,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일련의 인기 있고 열정적인 앨범을 발매하여 아레나급 콘서트를 매진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 [그는] "블루스를 연주하며 상징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27]
윈터는 코네티컷주 이스턴에 있는 유니온 묘지(Union Cemetery (Easton, Connecticut))에 묻혔다.[28]
2014년 7월 16일, 스위스 취리히(Zürich)에서 사망했다.[49] 같은 해 9월에 발매된 유작 『스텝 백~루츠2(Step Back~Roots 2)』는 2015년 2월 제57회 그래미상(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블루스 앨범상을 수상하며 윈터는 처음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동생 에드거가 대신 트로피를 받았다.[50]
3. 음악 스타일
윈터는 그의 경력 동안 다양한 기타를 연주했지만, 깁슨 파이어버드(Gibson Firebird) 사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43][44][45] 그는 여러 대를 소유했지만, 그중에서도 1963년 파이어버드 V 모델을 가장 좋아했다. 윈터는 "제가 처음 샀던 [1963년산] 기타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오랫동안 연주해 왔고, 그 기타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모두 소리가 다르지만, 그 기타 소리가 제일 좋습니다. 목이 얇고 좋습니다… 못하는 게 없습니다. 정말 훌륭한 기타입니다."라고 설명했다.[45]
오리지널 파이어버드는 깁슨의 전통적인 구성과 달리, 회사의 표준 크기 PAF 험버커 또는 P-90 싱글 코일 픽업 모델 대신 파이어버드 "사이드와인더" 픽업을 사용했다.[44] 파이어버드 픽업은 디자인상 미니 험버커보다 밝은 소리를 낸다. 2014년 인터뷰에서 윈터는 "파이어버드는 최고의 기타입니다. 깁슨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깁슨 기타들보다 펜더에 더 가까운 소리를 냅니다. 저는 험버커 픽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파이어버드의 미니 험버커는 더 강렬하고 고음이 좋습니다." 라며 음색을 설명했다.[46]
2008년, 깁슨 커스텀 샵은 내슈빌에서 슬래시가 시상식에서 시상하는 가운데 조니 윈터 시그니처 파이어버드 V를 출시했다.[4]
1984년, 악기 제작자(luthier) 마크 얼라윈은 레이저 일렉트릭 기타를 윈터에게 선보였다. 윈터는 "처음 플러그를 꽂았을 때,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날 밤 공연에서 사용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46] 그는 스트랫처럼 들리고 깁슨처럼 느껴지는 것에 가장 가까운 기타라고 평했다. 하지만 슬라이드 곡에서는 파이어버드가 더 좋은 소리가 난다고 덧붙였다.[4]
윈터가 소유하고 연주했던 다른 기타로는 깁슨 ES-125(Gibson ES-125)(그의 첫 번째 일렉트릭 기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깁슨 레스폴(Gibson Les Paul)/SG 커스텀, 펜더 머스탱(Fender Mustang), P-90 픽업이 장착된 깁슨 레스폴 골드탑(Gibson Les Paul Goldtop), 깁슨 플라잉 V(Gibson Flying V), 에피폰(Epiphone) 윌셔, 깁슨 블랙 뷰티, 펜더 일렉트릭 XII(Fender Electric XII)(6개의 현만 장착), 그리고 어쿠스틱 National Resonator)가 있다.[4][43][45]
윈터는 엄지 픽과 손가락으로 연주했다.[4] 그의 피킹 스타일은 쳇 애킨스(Chet Atkins)와 머리 트래비스(Merle Travis)에게 영향을 받았고, 그는 플랫 픽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4][47] 윈터는 깁슨에서 판매하는 플라스틱 엄지 픽[43]과 스틸 핑키 슬라이드를 선호했는데, 나중에 던롭에서 판매했다.[4] 그의 연주는 테크니컬하고 빠른 리프가 많으며, 디스토션이 걸린 헤비한 음색이 특징이다. 대표곡으로는 "Be Careful with a Fool" 등이 있다.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할 때는 특히 오픈 E나 오픈 A를 선호하지만, 그 외에도 오픈 D나 오픈 G도 사용한다. 슬라이드 기타를 들을 수 있는 대표곡은 "TV Mama"나 "Dallas" 등이다. 슬라이드 바는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공사장에서 주워 온 금속 파이프를 자신의 손가락에 맞춰 잘라낸 것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
3. 1. 깁슨 파이어버드
윈터는 그의 경력 동안 다양한 기타를 연주했지만, 깁슨 파이어버드(Gibson Firebird) 사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43][44][45] 그는 여러 대를 소유했지만, 그중에서도 1963년 파이어버드 V 모델을 가장 좋아했다. 윈터는 "제가 처음 샀던 [1963년산] 기타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오랫동안 연주해 왔고, 그 기타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모두 소리가 다르지만, 그 기타 소리가 제일 좋습니다. 목이 얇고 좋습니다… 못하는 게 없습니다. 정말 훌륭한 기타입니다."라고 설명했다.[45]오리지널 파이어버드는 깁슨의 전통적인 구성과 달리, 회사의 표준 크기 PAF 험버커 또는 P-90 싱글 코일 픽업 모델 대신 파이어버드 "사이드와인더" 픽업을 사용했다.[44] 파이어버드 픽업은 디자인상 미니 험버커보다 밝은 소리를 낸다. 2014년 인터뷰에서 윈터는 "파이어버드는 최고의 기타입니다. 깁슨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깁슨 기타들보다 펜더에 더 가까운 소리를 냅니다. 저는 험버커 픽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파이어버드의 미니 험버커는 더 강렬하고 고음이 좋습니다." 라며 음색을 설명했다.[46]
2008년, 깁슨 커스텀 샵은 내슈빌에서 슬래시가 시상식에서 시상하는 가운데 조니 윈터 시그니처 파이어버드 V를 출시했다.[4]
1984년, 악기 제작자(luthier) 마크 얼라윈은 레이저 일렉트릭 기타를 윈터에게 선보였다. 윈터는 "처음 플러그를 꽂았을 때,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날 밤 공연에서 사용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46] 그는 스트랫처럼 들리고 깁슨처럼 느껴지는 것에 가장 가까운 기타라고 평했다.[4]
윈터가 소유하고 연주했던 다른 기타로는 깁슨 ES-125(Gibson ES-125)(그의 첫 번째 일렉트릭 기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깁슨 레스폴(Gibson Les Paul)/SG 커스텀, 펜더 머스탱(Fender Mustang), P-90 픽업이 장착된 깁슨 레스폴 골드탑(Gibson Les Paul Goldtop), 깁슨 플라잉 V(Gibson Flying V), 에피폰(Epiphone) 윌셔, 깁슨 블랙 뷰티, 펜더 일렉트릭 XII(Fender Electric XII)(6개의 현만 장착), 그리고 어쿠스틱 National Resonator)가 있다.[4][43][45]
윈터는 엄지 픽과 손가락으로 연주했다.[4] 그의 피킹 스타일은 쳇 애킨스(Chet Atkins)와 머리 트래비스(Merle Travis)에게 영향을 받았고, 그는 플랫 픽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4][47] 윈터는 깁슨에서 판매하는 플라스틱 엄지 픽[43]과 스틸 핑키 슬라이드를 선호했는데, 나중에 던롭에서 판매했다.[4]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할 때는 특히 오픈 E나 오픈 A를 선호하지만, 그 외에도 오픈 D나 오픈 G도 사용한다. 슬라이드 바는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공사장에서 주워 온 금속 파이프를 자신의 손가락에 맞춰 잘라낸 것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
3. 2. 슬라이드 기타
윈터는 다양한 기타를 연주했지만, 깁슨 파이어버드(Gibson Firebird) 사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43][44][45] 그는 여러 대를 소유했지만, 1963년 파이어버드 V 모델을 가장 좋아했다.[45] 윈터는 1963년산 파이어버드가 목이 얇고 소리가 제일 좋으며, 못하는 게 없는 훌륭한 기타라고 설명했다.[45]오리지널 파이어버드는 깁슨의 전통적인 구성과 달리 파이어버드 "사이드와인더" 픽업을 사용했다.[44] 후기 파이어버드는 다른 디자인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윈터가 1963년산을 선호하는 이유일 수 있다. 파이어버드 픽업은 깁슨의 미니 험버커보다 밝은 소리를 낸다. 윈터는 파이어버드가 깁슨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깁슨 기타들보다 펜더에 더 가까운 소리를 내며, 미니 험버커는 더 강렬하고 고음이 좋다고 설명했다.[46]
1984년, 악기 제작자(luthier) 마크 얼라윈은 레이저 일렉트릭 기타를 윈터에게 선보였다.[46] 윈터는 레이저 기타가 스트랫처럼 들리고 깁슨처럼 느껴지는 것에 가장 가까우며, 파이어버드보다 연주하기가 조금 더 쉽다고 말했다.[4] 하지만 슬라이드 곡에서는 파이어버드가 더 좋은 소리가 난다고 덧붙였다.[4]
윈터가 소유하고 연주했던 다른 기타로는 깁슨 ES-125(Gibson ES-125),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깁슨 레스폴(Gibson Les Paul)/SG 커스텀, 펜더 머스탱(Fender Mustang), P-90 픽업이 장착된 깁슨 레스폴 골드탑(Gibson Les Paul Goldtop), 깁슨 플라잉 V(Gibson Flying V), 에피폰(Epiphone) 윌셔, 깁슨 블랙 뷰티, 펜더 일렉트릭 XII(Fender Electric XII)(6개의 현만 장착), 그리고 어쿠스틱 National Resonator)가 있다.[4][43][45]
윈터는 엄지 픽과 손가락으로 연주했으며, 그의 피킹 스타일은 쳇 애킨스(Chet Atkins)와 머리 트래비스(Merle Travis)에게 영향을 받았다.[4][47] 그는 플랫 픽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4][47] 윈터는 깁슨에서 판매하는 플라스틱 엄지 픽[43]과 스틸 핑키 슬라이드를 선호했는데, 나중에 던롭에서 판매했다.[4] 그의 연주는 테크니컬하고 빠른 리프가 많으며, 디스토션이 걸린 헤비한 음색이 특징이다.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할 때는 오픈 E나 오픈 A를 선호하지만, 오픈 D나 오픈 G도 사용했다. 슬라이드 바는 기성품 대신 금속 파이프를 잘라 사용했다.
4. 유산 및 영향
윈터는 머디 워터스의 그래미상 수상 앨범 3장, 《하드 어게인》(Hard Again, 1977), 《아이엠 레디》(I'm Ready, 1978), 《머디 "미시시피" 워터스 – 라이브》(Muddy "Mississippi" Waters – Live, 1979)를 제작했다.[29] 윈터 자신의 앨범들 중 《기타 슬링거》(Guitar Slinger, 1984)와 《시리어스 비즈니스》(Serious Business, 1985)는 최고의 전통 블루스 음반 부문,[30] 《렛 미 인》(Let Me In, 1991)과 《아이엠 어 블루스맨》(I'm a Bluesman, 2004)은 최고의 현대 블루스 음반 부문에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2015년에는 사후에 《스텝 백》(Step Back)으로 최고의 블루스 음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30] 이 앨범은 2015년 최고의 록 블루스 음반 부문 블루스 음악상도 수상했다.[31] 2015년 제18회 메이플 블루스 어워드에서 윈터는 사후에 B.B. 킹 국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32]
1980년, 윈터는 《기타 월드》(Guitar World) 초판 표지를 장식했다. 1988년에는 블루스 명예의 전당(Blue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닌 최초의 헌액자였다.[33]
조 페리(Joe Perry),[34][35] 프랭크 마리노(Frank Marino),[36] 마이클 쉔커(Michael Schenker),[37] 에이드리언 스미스(Adrian Smith),[38]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39] 빌리 코건(Billy Corgan)[40] 등 여러 기타리스트들이 윈터를 자신의 영향으로 언급했으며, 코건의 밴드인 더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는 "Johnny"라는 제목의 헌정곡을 발표했다.
코미디언이자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의 창립 멤버인 라레인 뉴먼(Laraine Newman)은 자신의 오디오북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A Memoir, 2021)에서 1960년대 후반 17세의 나이에 조니 윈터와 첫 경험을 했다는 내용을 회고했다.[41]
2008년 조니 윈터는 (형제 에드가 윈터(Edgar Winter)와 함께) 벤자민 미드(Benjamin Meade)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뮤직: 오프 더 레코드》(American Music: Off the Record)에 출연했다.[42]
4. 1. 수상 경력
윈터는 머디 워터스의 그래미상 수상 앨범 3장, 《하드 어게인》(Hard Again, 1977), 《아이엠 레디》(I'm Ready, 1978), 《머디 "미시시피" 워터스 – 라이브》(Muddy "Mississippi" Waters – Live, 1979)를 제작했다.[29] 윈터 자신의 앨범들 중 《기타 슬링거》(Guitar Slinger, 1984)와 《시리어스 비즈니스》(Serious Business, 1985)는 최고의 전통 블루스 음반 부문,[30] 《렛 미 인》(Let Me In, 1991)과 《아이엠 어 블루스맨》(I'm a Bluesman, 2004)은 최고의 현대 블루스 음반 부문에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2015년에는 사후에 《스텝 백》(Step Back)으로 최고의 블루스 음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30] 이 앨범은 2015년 최고의 록 블루스 음반 부문 블루스 음악상도 수상했다.[31] 2015년 제18회 메이플 블루스 어워드에서 윈터는 사후에 B.B. 킹 국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32]1980년, 윈터는 《기타 월드》(Guitar World) 초판 표지를 장식했다. 1988년에는 블루스 명예의 전당(Blue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닌 최초의 헌액자였다.[33]
조 페리(Joe Perry),[34][35] 프랭크 마리노(Frank Marino),[36] 마이클 쉔커(Michael Schenker),[37] 에이드리언 스미스(Adrian Smith),[38]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39] 빌리 코건(Billy Corgan)[40] 등 여러 기타리스트들이 윈터를 자신의 영향으로 언급했으며, 코건의 밴드인 더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는 "Johnny"라는 제목의 헌정곡을 발표했다.
코미디언이자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의 창립 멤버인 라레인 뉴먼(Laraine Newman)은 자신의 오디오북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A Memoir, 2021)에서 1960년대 후반 17세의 나이에 조니 윈터와 첫 경험을 했다는 내용을 회고했다.[41]
2008년 조니 윈터는 (형제 에드가 윈터(Edgar Winter)와 함께) 벤자민 미드(Benjamin Meade)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뮤직: 오프 더 레코드》(American Music: Off the Record)에 출연했다.[42]
5. 논란
1996년, 조니 윈터와 그의 형 에드가는 DC 코믹스와 ''조나 헥스: 웜과 그 밖의 것들을 타는 자들''(Jonah Hex: Riders of the Worm and Such) 리미티드 시리즈 제작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15] 그들은 시리즈에 등장하는 조니와 에드가 오텀이라는 두 인물이 윈터 형제와 매우 흡사하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형제는 해당 만화책이 그들을 "사악하고, 타락하고, 어리석고, 비겁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쾌락을 위해 무분별한 폭력, 살인, 수간을 저지르는 자들이며 죽임을 당해야 마땅한 자들"로 허위 묘사했다고 주장했다.[15]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만화책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여 DC 코믹스의 편을 들었다.[16]
테디 슬래터스가 윈터의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1984년~2005년) 슬래터스가 권력을 남용하고 윈터에게 메타돈을 계속 투여하여 급여를 요구하지 못하게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8][19] 2005년 폴 넬슨이 윈터의 매니저를 맡기 전까지 조니는 거의 말도 제대로 못하고 연주도 할 수 없었다. 넬슨은 그를 마약, 알코올, 그리고 흡연으로부터 서서히 떼어놓았다.[18][19]
6. 음반 목록
'''스튜디오 음반'''
- ''The Progressive Blues Experiment'' (Sonobeat 1968, UA/Imperial 1969 재발매)
- ''Johnny Winter'' (Columbia 1969)
- ''Second Winter'' (Columbia 1969)
- ''Johnny Winter And'' (Columbia 1970)
- ''Still Alive and Well'' (Columbia 1973)
- ''Saints & Sinners'' (Columbia 1974)
- ''John Dawson Winter III'' (Columbia 1974)
- ''Nothin' but the Blues'' (Blue Sky 1977)
- ''White, Hot and Blue'' (Blue Sky 1978)
- ''Raisin' Cain'' (Blue Sky 1980)
- ''Guitar Slinger'' (Alligator 1984)
- ''Serious Business'' (Alligator 1985)
- ''Third Degree'' (Alligator 1986)
- ''The Winter of '88'' (MCA/Voyager 1988)
- ''Let Me In'' (Point Blank 1991)
- ''Hey, Where's Your Brother?'' (Point Blank 1992)
- ''I'm a Bluesman'' (Virgin 2004)
- ''Roots'' (Megaforce 2011)
- ''Step Back'' (Megaforce 2014)
'''라이브 음반'''
- ''Live Johnny Winter And'' (Columbia 1971)
- ''Captured Live!'' (Blue Sky 1976)
- ''Together'' (Blue Sky 1976) – 에드거 윈터와 함께
- ''Live in NYC '97'' (Virgin 1998)
- ''The Woodstock Experience'' (Sony/Legacy 2009)
- ''Live at the Fillmore East 10/3/70'' (Collectors' Choice 2010)
6. 1. 스튜디오 앨범
- ''The Progressive Blues Experiment'' (Sonobeat 1968, UA/Imperial 1969 재발매)
- ''Johnny Winter'' (Columbia 1969)
- ''Second Winter'' (Columbia 1969)
- ''Johnny Winter And'' (Columbia 1970)
- ''Still Alive and Well'' (Columbia 1973)
- ''Saints & Sinners'' (Columbia 1974)
- ''John Dawson Winter III'' (Columbia 1974)
- ''Nothin' but the Blues'' (Blue Sky 1977)
- ''White, Hot and Blue'' (Blue Sky 1978)
- ''Raisin' Cain'' (Blue Sky 1980)
- ''Guitar Slinger'' (Alligator 1984)
- ''Serious Business'' (Alligator 1985)
- ''Third Degree'' (Alligator 1986)
- ''The Winter of '88'' (MCA/Voyager 1988)
- ''Let Me In'' (Point Blank 1991)
- ''Hey, Where's Your Brother?'' (Point Blank 1992)
- ''I'm a Bluesman'' (Virgin 2004)
- ''Roots'' (Megaforce 2011)
- ''Step Back'' (Megaforce 2014)
6. 2. 라이브 앨범
- ''Live Johnny Winter And'' (Columbia 1971)
- ''Captured Live!'' (Blue Sky 1976)
- ''Together'' (Blue Sky 1976) – 에드거 윈터와 함께
- ''Live in NYC '97'' (Virgin 1998)
- ''The Woodstock Experience'' (Sony/Legacy 2009)
- ''Live at the Fillmore East 10/3/70'' (Collectors' Choice 2010)
- 1971년 라이브 - ''Johnny Winter And Live'' (CBS)
- 1976년 광란의 라이브 - ''Captured Live'' (Blue Sky)
- 1976년 투게더 - ''Together'' (CBS) ※에드거 윈터와의 공연
- 1997년 라이브 인 뉴욕 '97 - ''Live In NYC '97'' (Point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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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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