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프 마리아 푸스테
1. 개요
조세프 마리아 푸스테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FC 바르셀로나에서 1958년부터 1972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65-66년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우승, 3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또한,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64년 유럽 네이션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 본명 | 조제프 마리아 푸스테 블랑크 |
|---|---|
| 출생일 | 1941년 4월 15일 |
| 사망일 | 2023년 4월 20일 (향년 82세) |
| 사망 장소 | 바르셀로나, 스페인 |
| 신장 | 1.74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리뇰라 바르셀로나 (1958–1960) |
|---|
| 클럽 | 바르셀로나 (1960–1972) |
|---|---|
| 출장 | 197 |
| 득점 | 47 |
| 클럽 (임대) | 오사수나 (1960–1962) |
| 출장 (임대) | 26 |
| 득점 (임대) | 10 |
| 클럽 | 에르쿨레스 (1972–1973) |
| 출장 | 27 |
| 득점 | 2 |
| 총 출장 | 250 |
| 총 득점 | 59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B (1961) |
|---|---|
| 출장 | 1 |
| 득점 | 0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1964–1969) |
| 출장 | 8 |
| 득점 | 3 |
| 대회 | 유럽 네이션스컵 |
|---|---|
| 우승 | 1964 스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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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두르젤 출신 -
라몬 모야
라몬 모야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선수 생활을 짧게 마감한 후 RCD 에스파뇰 유소년팀 감독을 시작으로 CE 루스피탈레트, 짐나스틱 데 타라고나, RCD 에스파뇰 1군 등 여러 클럽을 거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고, CE 사바델을 테르세라 디비시온에서 세군다 디비시온 B로 승격시킨 바 있다. -
2023년 사망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미디어셋 설립, 포르차 이탈리아 창당, 친미 외교 정책, 탈세 및 성 스캔들 등 여러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렸다. -
202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 클럽 경력
푸스테는 바르셀로나와 에르쿨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966년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우승, 1968년과 1971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71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는 교체 투입되어 만회골을 넣으며 팀의 4-3 역전승에 기여했다. 1972년에는 세군다 디비시온의 에르쿨레스로 이적하여 1년간 활약했다.
2.1. FC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지방 례이다 도 리뇰라 출신인 푸스테는 1958년에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후 오사수나로 임대되었다. 그는 오사수나 임대 시절인 1961년 9월 3일에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는데, 2-2로 비긴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을 올렸다. 그는 바르셀로나 1군 선수로 10년을 활약하면서, 4번의 라 리가 준우승을 일구어냈지만 우승을 거둔 적은 없다. 그러나,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바르셀로나는 여러 컵 대회에서 성과를 올렸다.
1962년, 푸스테는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 2차전에 출전하여 유럽대항전 결승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바르셀로나는 이 경기에서 1-1로 비겨, 합계 3-7로 발렌시아에 패하였다. 1966년, 그는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에 또 출전했는데, 이번에는 바르셀로나가 사라고사를 4-3으로 꺾고 우승할 수 있게 도왔다. 1968년, 그는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긴 선수단의 주역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이듬해 컵대회 우승 자격으로 UEFA 컵위너스컵에 참가해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슬로반 브라티슬라바에 2-3으로 패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1971년, 푸스테는 바르셀로나의 또다른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을 견인했다. 1970-71 시즌,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 우승을 간발의 차로 놓쳤는데, 이 시즌에 우승을 거둔 발렌시아와의 승점차는 단 1점이었다. 두 구단은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도 격돌했다. 발렌시아가 처음에 이 경기에서 2-0으로 앞서나갔는데, 푸스테는 이 결승전에서 교체로 들어가 바르셀로나의 만회골을 넣어 연장전까지 이어진 4-3 대역전극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2년, 라 리가 197경기에 출전해 47골을 기록한 푸스테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 속해 있던 에르쿨레스에서 1년을 보냈다.
2.3. 은퇴 이후
현역 은퇴 후, 푸스테는 바르셀로나 퇴역 선수단의 일원이 되었고, 2000년에 완전히 은퇴하기 전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퇴역 선수단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푸스테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8번 출전하여 3골을 넣었다. 호세 비얄롱가 감독은 1964년 3월 11일, 아일랜드와의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8강전에서 푸스테를 국가대표팀에 데뷔시켰다. 그는 스페인이 5-1로 이긴 이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며 스페인의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1966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조별 리그 서독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였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스코어와 결과는 스페인의 득점을 먼저 나열하며, 스코어 열은 푸스테의 각 득점 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4. 수상 내역
| 구분 | | 우승 | |
|---|---|---|
| 클럽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1965-66 |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트로피 플레이오프 | 1971 | |
| 스페인 컵 | 1962–63, 1967–68, 1970–71 | |
| 국가대표 | 유럽 선수권 대회 | 1964 |
4.1. 클럽
조세프 마리아 푸스테스페인어는 FC 바르셀로나에서 10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여러 컵 대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라리가 우승은 없었지만,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2회 (1965-66, 1972) 우승과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3회 (1962-63, 1967-68, 1970-71) 우승을 차지했다.
1966년 페어스컵 결승전에 출전해 FC 바르셀로나가 레알 사라고사를 합계 4-3으로 이기는 데 기여했다. 1968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1-0으로 꺾었으며, 1971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는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FC 바르셀로나의 첫 골을 기록, 연장전 끝에 4-3 승리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