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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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점술은 고대 로마에서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새의 징조를 관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로마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로마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조점술은 새의 종류, 비행 방식, 먹이를 먹는 행위 등을 통해 징조를 해석했으며, 조점관은 이러한 징조를 해석하고 공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조점술은 임페라티바(요청된 징조)와 오블라티바(예상치 못한 징조)로 분류되었으며, 새의 종류에 따라 오시네스와 알리테스로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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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점술 | |
---|---|
개요 | |
학문 분야 | 주술 |
종류 | 점술 |
어원 | |
라틴어 | auspicium (아우스피키움) |
상세 내용 | |
설명 | 로마의 조점술은 새의 비행을 관찰하여 신의 뜻을 해석하는 것으로, 공공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조점술가는 특정한 장소(templum)에서 특정한 새(aves)의 움직임과 소리를 관찰하여 징조를 해석했다. 징조는 긍정적(auspicium impetrativum)이거나 부정적(auspicium oblativo)일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무효화될 수도 있었다. |
역할 | 로마의 정치 및 군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 선거, 법률 제정 등 모든 중요한 결정 전에 조점술을 시행했다. 조점술은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졌다. |
방법 | 새의 종류, 숫자, 비행 방향, 소리, 먹이를 먹는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징조를 해석했다. 특히 독수리와 까마귀는 중요한 징조를 나타내는 새로 여겨졌다. |
관련 용어 | 아우구르: 조점술을 행하는 사제 templum (템플룸): 조점술을 위한 신성한 장소 aves (아베스): 징조를 나타내는 새 |
기타 문화 | 다양한 문화권에서 유사한 형태의 조점술이 존재했으며, 새를 신의 메신저로 여기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
2. 역사
고대 자료에 따르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은 로마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라틴족과 초기 로마 시민과 관련이 있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조짐을 관찰하는 행위를 에트루리아인과 연관시키지만, 키케로는 저서 ''예언에 관하여''에서 로마의 조점술과 신의 뜻을 해석하는 에트루리아 시스템 간의 몇 가지 차이점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또한 로마처럼 날아가는 새의 패턴에 신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에트루리아인에 대해 논의할 때는 이 관행을 언급하지 않은 다른 여러 민족을 언급했다.[7]
로마 이전에도 조짐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로마 건국과 관련된 것과 조짐 판독에 대한 규칙을 세워 로마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종종 조점술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스토아학파는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을 보살핀다면 그들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8] 심지어 필리스티아인도 기원전 740년과 기원전 686년경에 구약성서 이사야 2:6에 의해 선언된 대로 조점술을 행했다. 그러나 조점술은 유대인 백과사전에 따르면 처음으로 칼데아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기원전 300년까지는 귀족만이 조점관이 될 수 있었다. 평민 회의는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따라서 특정 법, 전쟁 또는 축제가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조점관이기도 했던 키케로는 귀족의 독점이 ''민중파''의 침해에 대한 유용한 장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16] 기원전 300년의 렉스 오굴니아 법은 조점관의 수를 4명에서 9명으로 늘리고, 그 중 5명은 평민이 되도록 요구하여, 처음으로 하위 계급에게 신들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 새로운 권력으로 평민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신들의 뜻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불공정한 해석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2. 1. 고대 로마의 조점술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 임명과 취임, 민회 결정, 군사 작전 진행에는 항상 긍정적인 '조짐(auspicium)'이 필요했다.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43년에 첫 집정관직을 수행할 때, 긍정적인 '조짐'으로 로물루스처럼 12마리의 독수리를 발견했다.[9] 그리스에서는 신탁이 신들의 메신저 역할을 했지만, 로마에서는 새를 통해 유피테르의 뜻을 해석했다.[10][11] 조짐은 로마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으며, 신의 뜻 외에 다른 설명은 없었다. 조짐 없이는 공적인 행위 수행이 어려웠다.점을 치는 자가 징후('비티아(vitia)')를 잘못 해석하면 신들을 불쾌하게 하고, 수정하지 않으면 재앙을 초래한다고 여겨졌다.[12]
; ex avibus ('새로부터'): 조점술은 주로 새의 징조를 사용했지만, 모든 새가 신의 의지를 상징하지는 않았다. 새는 노래로 징조를 보이는 오시네스와 날갯짓으로 징조를 보이는 알리테스로 나뉘었다.[17] 오시네스에는 까마귀, 갈가마귀, 올빼미, 암탉 등이 포함되었고, 점술가가 지정한 구역 어느 쪽에 나타나는지에 따라 길조(''auspicium ratum'')나 흉조를 나타냈다.[18] 알리테스에는 독수리, 대머리수리, ''avis sanqualis'', ossifraga, immussulus 등이 있었다.[19] 피쿠스 마르티우스, 페로니우스, 파르라 등은 오시네스와 알리테스에 모두 포함될 수 있었다. 새들의 움직임과 소리는 상황과 연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다.
; ex tripudiīs ('"춤"에서 (먹이를 먹는 새들의)'): 군사 원정에는 닭의 식습관을 해석하는 조짐이 사용되었다. 키케로는 한때 모든 새가 ''tripudium''[20] (신성한 춤)을 할 수 있었지만, 닭만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밝혔다. 닭은 ''풀라리우스''(닭을 키우는 사람)가 우리에 가두어 관리했으며, 빵이나 케이크를 던져주어 징조를 확인했다. 닭이 나오지 않거나, 먹지 않거나, 울부짖거나, 날갯짓하거나, 날아가면 좋지 않은 징조였다.[21] 반대로, 닭이 나와 먹이를 먹고 입에서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면 ''tripudium solistimum''이라 불리는 좋은 징조였다.
'''새의 비행'''
로마인에게 새의 높은 비행(''praepes'')은 길조였고, 낮은 비행(''infera'')은 흉조였다.[22]
2. 1. 1. 기원과 발전
고대 자료에 따르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은 로마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라틴족과 초기 로마 시민과 관련이 있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조짐을 관찰하는 행위를 에트루리아인과 연관시키지만, 키케로는 저서 ''예언에 관하여''에서 로마의 조점술과 신의 뜻을 해석하는 에트루리아 시스템 간의 몇 가지 차이점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또한 로마처럼 날아가는 새의 패턴에 신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에트루리아인에 대해 논의할 때는 이 관행을 언급하지 않은 다른 여러 민족을 언급했다.[7]로마 이전에도 조짐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로마의 건국과 관련된 것과 조짐 판독에 대한 규칙을 세워 로마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종종 조점술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스토아학파는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을 보살핀다면 그들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8] 심지어 필리스티아인도 기원전 740년과 기원전 686년경에 구약성서 이사야 2:6에 의해 선언된 대로 조짐술을 행했다. 그러나 조짐술은 유대인 백과사전에 따르면 처음으로 칼데아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2. 1. 2. 로마 건국 신화와의 연관성
고대 자료에 따르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은 로마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라틴족과 초기 로마 시민과 관련이 있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조짐을 관찰하는 행위를 에트루리아인과 연관시키지만, 키케로는 저서 ''예언에 관하여''에서 로마의 조점술과 신의 뜻을 해석하는 에트루리아 시스템 간의 몇 가지 차이점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또한 로마처럼 날아가는 새의 패턴에 신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에트루리아인에 대해 논의할 때는 이 관행을 언급하지 않은 다른 여러 민족을 언급했다.[7]로마 이전에도 조짐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로마의 건국과 관련된 것과 조짐 판독에 대한 규칙을 세워 로마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종종 조점술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스토아학파는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을 보살핀다면 그들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8] 심지어 필리스티아인도 기원전 740년과 기원전 686년경에 구약성서 이사야 2:6에 의해 선언된 대로 조짐술을 행했다. 그러나 조짐술은 유대인 백과사전에 따르면 처음으로 칼데아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2. 1. 3. 조점관의 지위와 역할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의 임명과 취임, 민회의 결정, 그리고 군사 작전의 진행은 항상 긍정적인 '조짐(auspicium)'을 필요로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43년에 첫 번째 집정관직을 수행할 때, 긍정적인 '조짐'은 로물루스와 마찬가지로 12마리의 독수리를 발견하는 것과 일치했다.[9] 신탁이 신들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새를 통해 유피테르의 뜻을 해석했다.[10][11] 조짐은 로마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신들의 뜻이라는 것 외에는 결정에 대한 설명은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조짐을 상의하지 않고 공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점을 치는 자가 징후, 즉 '비티아(vitia)'를 해석하는 데 오류를 범하면 신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으로 여겨졌고, 수정하지 않으면 재앙을 초래한다고 여겨졌다.[12] 따라서 선거, 법률 통과, 전쟁 시작은 모두 사람들이 신들이 그들의 행동에 동의한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보류되었다. 신들의 뜻을 드러내는 이러한 징후를 해석하는 사람들을 '''조점관'''이라고 불렀다. 조점관들은 법원 판례 기록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징후, 필요한 의식, 기도, 그리고 특히 통치 귀족 구성원인 다른 조점관들이 조점술의 기본을 이해하도록 돕는 기타 자료들을 기록한 책을 보관했다.[13]
비록 조점관들은 징후를 해석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그에 따른 결정을 실행하거나, 미래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논쟁하는 것은 집정관의 책임이었다.[14] 집정관들은 또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때마다 조짐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므로 기본적인 해석을 이해해야 했다.[15]
기원전 300년까지는 귀족만이 조점관이 될 수 있었다. 평민 회의는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따라서 특정 법, 전쟁 또는 축제가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조점관이기도 했던 키케로는 귀족의 독점이 ''민중파''의 침해에 대한 유용한 장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16] 그러나 기원전 300년에 새로운 법 ''렉스 오굴니아''는 조점관의 수를 4명에서 9명으로 늘리고, 그 중 5명은 평민이 되도록 요구하여, 처음으로 하위 계급에게 신들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 새로운 권력으로 평민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신들의 뜻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불공정한 해석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2. 2. 고대 다른 문명의 조점술
고대 자료에 따르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점술을 사용하는 것은 로마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라틴족과 초기 로마 시민과 관련이 있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조짐을 관찰하는 행위를 에트루리아인과 연관시키지만, 키케로는 저서 ''예언에 관하여''에서 로마의 조점술과 신의 뜻을 해석하는 에트루리아 시스템 간의 몇 가지 차이점을 설명한다. 키케로는 또한 로마처럼 날아가는 새의 패턴에 신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에트루리아인에 대해 논의할 때는 이 관행을 언급하지 않은 다른 여러 민족을 언급했다.[7]로마 이전에도 조짐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로마의 건국과 관련된 것과 조짐 판독에 대한 규칙을 세워 로마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종종 조점술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스토아학파는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을 보살핀다면 그들의 뜻을 나타내는 징후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8] 심지어 필리스티아인도 기원전 740년과 기원전 686년경에 구약성서 이사야 2:6에 의해 선언된 대로 조짐술을 행했다. 그러나 조짐술은 유대인 백과사전에 따르면 처음으로 칼데아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3. 조점술의 종류
조점술은 크게 새의 종류, 징조를 얻는 방법, 그리고 특별한 조점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 ex tripudiīs ['"춤"에서 (먹이를 먹는 새들의)'']: 닭의 식습관을 해석하여 징조를 읽는 방법으로, 주로 군사 원정에 사용되었다. 키케로는 한때 모든 새가 ''tripudium''[20] [신성한 춤]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닭만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밝혔다. 닭은 ''풀라리우스''(닭을 키우는 사람)가 관리하며, 우리에 가두었다가 빵이나 케이크를 던져주어 풀려나게 했다. 닭이 나오지 않거나, 먹이를 거부하거나, 울거나, 날갯짓을 하거나, 날아가면 흉조로 간주되었다.[21] 반대로 닭이 우리를 나와서 먹이를 먹다가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땅에 떨어지면 길조(''tripudium solistimum'')로 여겨졌다.
고대 로마 점술에는 임페라티바 (''impetrativa'', 구하거나 요청한 징조)와 오블라티바 (''oblativa'', 원하지 않았거나 제공된 징조) 두 가지 분류가 있었다. 임페라티바는 점술가가 점괘를 해석한 결과로 나타나는 징조였다.[15] 오블라티바는 집정관이 점괘를 관찰하는 중에 또는 그 의미를 숙고하는 중에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구하지 않은 징조였다.[15]
3. 1. 새의 종류에 따른 분류
조점술에서는 전형적으로 새의 징조를 사용했지만, 하늘에 있는 모든 새가 신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노래를 통해 조짐을 보이는 오시네스와 날갯짓을 통해 조짐을 보이는 알리테스가 있었다.[17]종류 | 특징 | 해당 조류 |
---|---|---|
오시네스(Oscines) | 노래 | 까마귀, 갈가마귀, 올빼미, 암탉 등 |
알리테스(Alites) | 날갯짓 | 독수리, 대머리수리, avis sanqualis, ossifraga, immussulus 또는 immusculus |
피쿠스 마르티우스, 페로니우스, 파르라와 같은 일부 새는 오시네스와 알리테스에 모두 포함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새들이 내는 모든 움직임과 소리는 관찰되는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와 해석을 지녔다.
3. 1. 1. 오시네스(Oscines)
조점술에서 오시네스는 노래를 통해 조짐을 보이는 새를 말한다. 까마귀, 갈가마귀, 올빼미, 암탉 등이 오시네스에 포함되었으며, 점술가가 지정한 구역의 어느 쪽에 나타나느냐에 따라 길조(''auspicium ratum'')나 흉조를 나타냈다.[18]3. 1. 2. 알리테스(Alites)
오시네스가 노래를 통해 조짐을 보인 반면, 알리테스는 날갯짓을 통해 조짐을 보였다.[17] 알리테스에 해당하는 새는 독수리, 대머리수리, ''avis sanqualis'', ossifraga라고도 불리는 새, immussulus 또는 immusculus였다.[19] 피쿠스 마르티우스, 페로니우스, 파르라와 같은 일부 새는 오시네스와 알리테스에 모두 포함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새들이 내는 모든 움직임과 소리는 관찰되는 상황이나 연도에 따라 다른 의미와 해석을 지녔다.로마인에게 새의 높은 비행(''praepes'')은 길조였고, 낮은 비행은 덜 행복한 징조(''infera'')였다.[22]
3. 2. 징조 획득 방법에 따른 분류
조점술은 징조를 얻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새의 노래나 날갯짓으로 징조를 얻는 방법(''ex avibus'')과 닭의 먹이 섭취 행동으로 징조를 얻는 방법(''ex tripudiīs'')이다.- '''ex avibus''' (새로부터): 새의 노래나 날갯짓으로 징조를 판별한다.
- 오시네스: 노래로 조짐을 보이는 새로, 까마귀, 갈가마귀, 올빼미, 암탉 등이 있다. 어느 쪽에 나타나는지에 따라 길흉이 결정된다.[17][18]
- 알리테스: 날갯짓으로 조짐을 보이는 새로, 독수리, 대머리수리, ''avis sanqualis'', ossifraga, immussulus 등이 있다.[19]
- 피쿠스 마르티우스 등 일부 새는 오시네스와 알리테스 모두에 포함될 수 있다.
- '''ex tripudiīs''' (춤에서, 먹이를 먹는 새들의): 닭의 먹이 섭취 행동을 관찰하여 징조를 판별하며, 주로 군사 원정에 사용되었다.
- 닭은 ''풀라리우스''(닭을 키우는 사람)가 관리하며, 우리에 갇혀 있다가 빵이나 케이크를 던져주면 풀려난다.
- 닭이 나오지 않거나, 먹이를 거부하거나, 울부짖거나, 날갯짓을 하면 흉조로 간주된다.[21]
- 닭이 나와서 먹이를 먹다가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땅에 떨어지면 길조(''tripudium solistimum'')로 여겨진다.
로마인에게 새의 높은 비행(''praepes'')은 길조, 낮은 비행(''infera'')은 흉조였다.[22]
고대 로마 점술은 징조를 구했는지 여부에 따라 임페라티바(Impetrativa)와 오블라티바(Oblativa)로 나뉜다.
3. 2. 1. 임페라티바(Impetrativa)
고대 로마 점술에는 임페라티바(구하거나 요청한 징조)와 오블라티바(원하지 않았거나 제공된 징조)의 두 가지 분류가 있었다. 임페라티바는 점술가가 점괘를 해석한 결과로 나타나는 징조였다.[15]3. 2. 2. 오블라티바(Oblativa)
오블라티바( ''oblativa'')는 집정관이 점괘를 관찰하는 중에 또는 그 의미를 숙고하는 중에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구하지 않은 징조였다.[15]3. 3. 특별한 조점술
조점술에는 특별한 방법들이 있었다. '엑스 트리푸디스'는 닭의 먹이 습관을 통해 징조를 읽는 것으로, 주로 군사 원정에 사용되었다.3. 3. 1. 엑스 트리푸디스(Ex tripudiis)
조점술에서 '엑스 트리푸디스'는 닭의 식습관을 해석하여 징조를 읽는 방법으로, 주로 군사 원정에 사용되었다. 키케로는 원래 모든 새가 '트리푸디움'[20](신성한 춤)을 출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닭만 사용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풀라리우스'(닭을 키우는 사람)가 닭을 우리에 가두어 관리하다가, 필요할 때 닭을 풀어 빵이나 케이크를 던져주었다. 닭이 나오지 않거나, 먹이를 거부하거나, 울거나, 날갯짓을 하거나, 날아가 버리면 나쁜 징조로 여겼다.[21] 반대로 닭이 우리에서 나와 먹이를 먹다가 입에서 먹이가 떨어져 땅에 떨어지면, 이를 '트리푸디움 솔리스티뭄'(또는 고대 작가에 따르면 '트리푸디움 콰시 테리파비움 솔리스티뭄' ['땅'을 의미하는 '솔룸'에서])이라 불렀고, 좋은 징조로 해석했다. 닭을 굶겨서 나중에 점술이 관련된 사람들의 소망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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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pic-, auspec- + (Latin: to look, to observe in order to make a prediction; to see omens; from ''auspex'' [genitive form ''auspicis''] ''avi-'', stem of ''avis'', "bird" plus ''-spex'', "observer", from ''spec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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